제6장. 동지를 믿고 속아라 #3/10

3화. 상해 육군무관학교 설립

by 은명

3화. 상해 육군무관학교 설립


1919년 11월 하순. 명덕리 사무실로 안정근과 김구, 이탁이 찾아왔다. 안정근은 지난 9월 내무총장 안창호의 명령을 받고 서간도로 파견 갔다가 돌아왔다. 서간도는 4월에 신흥무관 출신들과 백서농장팀이 합해서 한족회를 발족하고 서로군정서를 두었다. 안정근의 선전 활동으로 김동삼의 한족회가 1919년 11월 17일 임시정부 산하 교민단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서로군정서는 연통제 총감부를 설치했다. 총감 이상룡, 부총감 여준, 정무청장 이탁, 군정청장 양재훈, 내무사장 곽문, 법무사장 김응섭, 재무사장 남정섭, 학무사장 김형식, 참모부장 김동삼, 사령관 지청천으로 구성되었다.


안정근은 안창호를 보자마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안부를 물었다.

“형님, 무척 수척해지셨습니다. 몸은 회복되셨습니까? 다시 떠나기 전에 인사드리려고요.”

안창호는 이들을 보자 친형제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창호는 김구를 향해서 미소지었다.

“오, 형님은 이 아우가 걱정되셨습니까? 이탁이 자네도?”

김구가 낮은 소리로 안창호의 말을 받았다. “도산, 도산이 아프면 우리 모두 걱정입니다. 도산은 아플 자격이 없어요.”

이탁이 김구의 말을 거들었다. “옳습니다. 선생님의 건강은 대한민국의 건강입니다. 임시정부의 건강이기도 하고요.”

안창호는 웃었다. “그래서 체력은 국력입니다. 여하튼 죄송합니다. 모두에게 걱정을 끼쳤습니다.”

안정근도 표정이 밝아졌다. “지력과 덕력도 국력입니다. 형님께서 늘 말씀하셨죠. 덕, 체, 지를 길러야 한다고!”

이탁이 정근을 보면서 웃었다. “선생님은 ‘국력은 통일과 단결에서 꽃을 피운다.’라고도 말씀하셨지요. 건전인격과 신성단결에서 힘이 나는 것이라고.”

김구가 이들의 말을 듣더니 한마디 추임을 넣었다. “국민은 각자 수양과 교육에 힘쓴다지만 통일과 단결은 임시정부 지도자들이 해야 할 터인데, 지금은 그 앞이 안 보이니 큰일이오.”

안창호가 힘없이 말했다. “형님, 그래도 이동휘 총리나 이동녕, 이시영 영감 모두 10년 전 신민회 중앙 핵심 지도자들로 대동단결했던 경험이 있지요. 어느 한 분도 나랏일에 편을 가르거나 개인적인 야심은 없었습니다. 이 어른들이 임시정부를 지키고 있는 한 반드시 한마음으로 통일정부를 수습해 나갈 것입니다.”

김구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승만과 이동휘 이야기를 하는 거요. 두 사람은 너무 멀리 갔어요. 나라 잃은 10년 세월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이동휘를 보세요. 많이 변했소. 사회주의! 나는 그런 거에 반대요.”

안정근이 김구의 말에 끼어들었다. “큰 형님, 연해주 사정이 러시아 혁명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었던 거지요. 결국, 연해주도 독립운동 방법을 놓고 문창범 진영과 이동휘 진영, 이렇게 양 갈래로 나뉘고.... 갈등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입니다. 레닌이 약소국 해방을 지원한다고 선언했으니, 자금 갈등을 피해 갈 수는 없을 듯합니다.”

이탁이 화제를 돌렸다. “형님들, 외교는 그렇다 치고, 군통합은 어떻게 합니까?”

안창호가 말을 받았다. “맞소, 가장 중요한 문제요. 우리 독립운동의 핵심은 독립전쟁이요. 10년 전에는 힘이 부족해서 의병 청년들이 많이 희생되었소. 그래서 신민회가 강조한 것이 독립전쟁 준비였소. 지금은 어떻소? 그 넓은 지역 간도 땅만 하더라도 북간도, 동간도, 서간도에 많은 무장세력이 형성되었소. 이들의 통합은 바로 임시정부의 역할에 있소. 자주적인 통수권을 가지려면 군사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안정근이 말했다. “이동휘 총리를 모시고 온 남공선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1918년 3월 일본군 시베리아 출병은 간도 독립군 소탕에 목적이 있었답니다. 이에 대비한 통일된 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자신은 나자구 무관학교에서 활동하다가 이동휘 명령을 받고 상해로 왔답니다. 그도 군사통일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고 했습니다.”

안창호가 조심스럽게 이 말을 받았다.

“세계정세에 비추어 독립군 통일이 필요한 시점이니 임시정부에서 안을 제시하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이동휘 총리가 통수권을 갖고 군사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내년 초 임시정부가 ‘독립전쟁의 해’를 선포하고 간도와 연해주 군사통일에 박차를 가하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임시정부 내부 단결을 도모하는 기회도 될 것 아니겠소?”

안정근이 말했다. “당장 북간도 군사 통일이 중요합니다. 이제라도 정부에 군사연구부라도 설치해야 할 듯합니다.”

김구가 안정근의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그 말은 맞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소. 간도에 있는 무장세력 대표들 회합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오?”

안창호가 이탁에게 당부했다. “이탁, 자네는 이번에 남만주로 가면 대한청년단연합회를 잘 챙기게. 안병찬 어른이 연통제로 안동에서 체포되셨다니 마음이 아프다네. 노구에 잘 견디셔야 할 텐데....”

안정근이 말했다. “형님, 제가 의주를 들러 안병찬 어른을 면회하고 황해도 신천으로 가보려고 합니다. 연통제 비밀활동 삼아서요. 사정을 살피고 오겠습니다.”

안창호는 안정근이 매번 앞장을 서줘서 무척 고마웠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소. 연통제 비밀활동. 선전위원의 첫걸음이오. 몸조심하세요. 안동교통국을 거치게 되면 선우혁에게 안부도 전해주세요.”

이탁이 말했다. “저는 남만주 군사통합기관 광복군사령부 설치를 타진하고 임시정부 산하에 둘 것을 추진하겠습니다.”

안창호가 말했다. “정부 내 군사연구부 설치는 제가 국무총리와 총장들께 의논하겠습니다. 남만주에 광복군사령부가 설치되면 군사연구부는 광복군총영이 되겠지요. 소통과 명령체계를 위함이요, 정부의 지시와 명령에 따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지요.”

김구가 말했다. “그러니까 대통령의 국군통수권이 중요하다는 말씀이군요.”

안창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군사연구부 설치는 백범 형님도 같이 하셔야 합니다. 사실, 형님이 치안을 맡고 계시지만 우리 투쟁의 목표는 독립전쟁임을 되새겨야 합니다. 노백린 군무총장은 현재 하와이 활동을 접고 북미로 갔습니다. 북미에서 곧 비행학교가 설립될 것입니다. 북미는 간도 같지 않고 먼 곳이라 공군력을 독립전쟁 준비 전략으로 수립한 것입니다.”

김구가 감탄했다. “오, 대단하오. 우리가 비행군사력을 준비할 수 있다니. 진정한 독립전쟁 준비로군!”

“그렇습니다. 미래를 위한 도전이지요. 제1차 유럽 대전을 보면 육, 해, 공의 전쟁이더이다. 우리도 미리 준비해 놓으면 언젠가 연합국 일원으로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전국이 될 수 있겠지요. 우리 단독의 힘으로는 부족하니 외교도 중요합니다. 젊은이들이 그래서 세계로 뻗어 나가 훈련받아야 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독립 국가를 번영시켜 나갈 인재 양성이 필요합니다.” 안창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오, 도산 선생! 그대의 생각은 참으로 넓고 깊소. 노백린 총장을 대신해서라도 나는 상해 구국모험단 청년들의 안전과 훈련을 잘 살피겠소. 정부의 광복군총영 설치는 이탁 동지가 있으니 안심되오.” 김구가 말했다.

안창호가 김구에게 속을 털어 놓았다. “형님, 임시정부에도 무관학교를 설립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대한제국 시절 군장교 양성 기관처럼 임시정부도 군장교 양성이 필요합니다. 예로 구국모험단 청년들이 체계적인 군사교육을 받는다면, 광복군총영 간부로 키우는 것이죠.”

이탁이 무릎을 치며 좋아했다. “오, 선생님, 꼭 필요한 일입니다. 더 늦지 않게 구체화 시켜야 합니다.”

안창호가 말했다. “아까 정근 아우님이 군사연구부 이야기를 꺼내기에 무관학교 설립을 추진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사실은 관오 이춘숙 군무 차장에게 임시육군무관조례안을 만들어 보라고 얘기한 바가 있습니다.”

안정근이 말했다. “형님, 통합정부 노백린 총장은 현재 미주에 계시고, 김희선 선배가 차장으로 계시는데, 함께 의논해야 하지 않을까요?”

안창호가 대답했다. “물론 그렇긴 하오. 그러나 나는 이 구상을 백범 형님과 의논하고 싶었다오. 괜한 오해와 악평을 피하기 위함이라오.”

김구가 말했다. “도산의 처지가 이해됩니다. 그렇다면 내가 김희선과 의논하겠소. 육군무관학교를 설립합시다. 이춘숙 차장이 작성한 조례안 기초를 가지고 말이오.”

안창호가 김구에게 물었다. “참, 형님의 측근 도인권도 제국 무관학교 출신이지요?”

“맞소, 도인권이 있었지. 교관 자격이 충분하고 말고. 현재는 내 밑으로 군사국장직에 있지. 내가 김희선과 도인권을 앞세워 육군무관학교를 설립하도록 추진해 보겠소.” 김구는 자신감이 넘쳤다. “도산이 그런 일들을 소리 내지 않고 맡겨주니 고맙소.”

안창호는 도인권이 황해도 재령 일대에서 민족교육을 하다가 안악사건으로 6년간 옥고를 치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도인권은 용강이 고향이지만 다행히 김구 사람이었다.

“형님, 그러면 올해를 넘기지 말고 육군무관학교를 시작합시다. 알음알음 청년들을 모집해서 시작하고 체계가 잡히는 대로 내년쯤 개교식을 하면 좋겠다 싶군요.”

김구가 신중하게 말했다. “그렇게 합시다. 우선 조례부터 살펴야겠소.”

이탁이 말했다. “그렇다면 저는 무관학교 부지와 돈을 알아보겠습니다.”

안창호는 이탁을 보면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구는 행동파답게 즉각 움직였다. 김철, 이춘숙, 김태연, 도인권 등을 불러 구국모험단 청년들의 면면을 살피고, 비밀리에 육군무관학교 장교 훈련 6개월 속성과정에 불을 붙였다. 「임시육군무관조례」는 전문 27조와 부칙 2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중등이상의 학력 소지자로 19세에서 30세의 대한민국 남자가 입학할 수 있었고, 수학 기간은 초급장교에 필요한 12개월(속성과 6개월)이며 졸업하면 참위에 임관되어 대한광복군총영에 배치되었다. 군무총장 직속으로 교장과 부관 각1명, 교관 약간명, 학도대장 1명, 학도대부관 1명 등으로 구성했다.

임시정부 육군무관학교는 1920년 3월 20일 상해 하비로 강녕리에서 입학생 40명을 모집하여 공식적으로 개교식을 했다. 그리고 5월 8일 제1회 속성과 졸업생 19명이 초급장교로 임관되었다. 첫 졸업생들은 대부분 구국모험단 청년들이었다. 노백린 군무총장이 미주 윌로스 비행학교 개교식에 참석하느라 상해로 부임하기 전이었다. 통합임시정부 내각에서 노백린을 보좌하는 차장 김희선이 대리로 나서 육군무관학교 교장에 취임하였다. 1920년 12월 24일에는 제2회 졸업생 22명이 배출되었다. 이때 도인권이 제2대 교장 겸 생도 대장을 맡았고, 교관 겸 생도 중대장은 김철이었다. 이날 졸업식에는 안창호와 김구를 비롯해 마침 상해에 도착한 이승만 대통령과 이동휘 국무총리, 손정도 의정원 의장 등이 참석하고 교민 300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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