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동지를 믿고 속아라 #4/10

4화. 6대 사업 방략 발표

by 은명

4화. 6대 사업 방략 발표


1920년 1월 3일. 통합내각 노동총판으로 물러난 안창호는 1920년 경신년 새해를 맞아 교민단 사무소에서 내무총장 당시부터 구상해 오던 생각을 발표했다. 신년하례회 자리. 이날은 정부 요인들도 대부분 참석한 자리였다. 안창호는 직위에 연연하지 않고 생각을 피력할 수 있어서 홀가분하기까지 했다. 안창호는 확신에 찬 듯 강한 어조로 연설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안창호의 연설은 주변 상황에 대한 정보 제공에서 출발해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연설의 핵심은 공산주의 혁명사상의 도전과 일본군의 연해주, 북만주, 시베리아 침략에 대비한 우리의 대동단결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안창호는 ‘힘은 건전한 인격과 신성한 단결에서 나온다’ 라는 것을 강조했다. 우리가 수립한 최고기관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단결하되, 6개 분야 세부 사업을 제시하고 각 처방전을 내놓았다. 처방전에는 안창호의 독립을 위한 신념과 철학, 경륜이 집약되어 있었다.


군사, 외교, 교육, 사법, 재정, 통일 분야의 6대 사업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군사 분야이다. 일본군은 현재 러시아 공산화 방해를 목적으로 연해주와 북만주, 시베리아를 점령하고 있다. 국가상실 이후 우리는 간도와 연해주에서 꾸준히 군사력을 키워왔다. 북간도 대한독립군단에 홍범도, 북로군정서에는 김좌진과 서일, 서로군정서에는 김동삼, 지청천, 그리고 남만주지역에 광복군사령부 등을 중심단체로 하여 크고 작은 독립군부대들이 산재해 있다. 이들은 산발적으로 일본군에 저항하고 있다. 우리가 군사력을 통일한다면 더 큰 무력을 보여줄 수 있다. 올해 경신년은 북만주와 시베리아에서 ‘독립전쟁의 해’가 될 것이다. 때가 임박하면 임시정부는 언제든 최고 통수권의 명령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상해에 육군 무관 장교학교 설치와 광복군총영 설치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 준비를 해야만 한다. 군사력은 무기와 기술, 훈련, 단결이 생명이다. 노백린 군무총장은 현재 북미 캘리포니아 윌로스 시에 가 있다. 그곳에는 미주 국민회의 노력으로 비행학교가 설립될 것이고 이미 6명의 비행사가 레드우드 비행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윌로스 비행학교 훈련 교관으로 대기 중이다. 막대한 군자금이 필요한 일이지만, 미주 한인사회는 현대화된 육해공 사관 양성의 필요성에 절감하여 독립전쟁 준비를 위해 자금을 모으고 있다. 이는 모범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러니 준비하고 있다가 이동휘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전시체제로 대동단결해야 한다. 군수통치자 대통령 이승만이 아직 상해로 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외교 분야의 지속적인 노력이다. 외교는 국제 교류와 선전 활동이다. 유럽 제1차 대전 이후 세계는 크게 갈라졌다. 미국 영향력의 확대와 소련의 등장이다. 우리는 양대 세력 사이에서 일본과 대적하고 있다. 중국 정세도 그 처지는 우리와 비슷하다. 파리평화회의 무대는 국제연맹으로 이관되었다. 우리 대표단이 당한 설움을 기억하자. 나라가 일본으로 합병되었으니 회원국의 자격도 상실되었다. 김규식 총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큰 성과를 못 이룬 상태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위임통치설을 이유로 우리의 단결이 무너지고 있다. 그분이 주장하는 절대 독립을 우리가 지키면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분열을 누가 가장 좋아하겠는가? 게다가 일본은 은밀히 자치론을 고조시키고 있다. 내가 외교를 중시하자고 하는 것은, 독립전쟁 준비 전략의 하나이다. 유사시 한 나라라도 우리 편으로 연합하게 하는 전략, 또는 유사시 우리 독립을 위해 연합국 일원이 되는 것. 여기에는 국제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지력과 언어 구사 능력을 갖춘 인재양성이 시급하다. 우리는 미국, 소련, 중국과 긴밀한 교류가 필요하다.


세 번째는 교육사업이다. 10여 년 전, 신민회 때부터 우리는 교육구국운동을 해 왔다. 만주나 연해주에서는 이주하거나 정착한 교민들을 위해 학교를 먼저 세우고 꾸준하게 민족교육을 해 오고 있다. 이는 미주나 하와이, 멕시코 이민 동포들도 마찬가지다. 상해도 이미 신규식 총장이 박달학원을 세워 민족교육을 해 왔고, 여운형 등 청년들이 세운 인성학교가 현재 초등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앞으로는 중등교육 기관도 설립해야 하고 교사양성을 위한 사범학교도 설립해야 한다. 임시정부는 이제 공교육을 제도화하여 국민 의무교육을 실행해야 한다. 국내외 동포 누구나 독립정신을 위한 민족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 교육 평등 제도 확립을 국내외 최고기관 임시정부가 담당해야 한다. 인성학교를 공립소학교로 개편하자. 교과서를 편찬하여 가르치자. 외국어나 직업 기술교육 등 분야별 특수 학교도 설립해 나가자.


네 번째는 사법제도 확립이다. 헌법 정신을 기리고 정해 놓은 법률을 지키자. 아직 각 부문에서 우리의 세밀한 법 조항은 없지만, 법률체계를 수립할 때까지는 임시법을 정해서라도 법에 복종하게 하여 신성한 기강을 수립하자. 국민은 누구나 공론형성에 참여하고 복종의 법을 제정하여 정치에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확립하자. 의로운 남녀에게는 상을 주고 적의 매나 개가 되는 자는 엄벌해야 한다. 예컨대, 일제가 원하는 대로 자치나 참정권을 운운하는 사람들은 모두 역적이다. 또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식구를 끌고 적국으로 떠나는 자를 그냥 두어야 할까? 아니다. 일벌백계해야 한다. 지금 법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에는 반대다. 모든 국민이 복종할 수 있는 신성한 법을 만들자. 임시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다섯 번째는 재정 확립이다. 사법제도의 확립을 강조하는 중요한 이유는 세금 제도 확립에 있다. 또한, 유사시에 출병할 수 있는 국민개병제도다. 간도 일대에서는 생산활동과 군사훈련을 동시에 하는 둔전병 제도를 자치 규정으로 두고 있다. 미주와 하와이, 멕시코 등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돈을 만들고 병력을 키우고 있다. 병역과 납세의무에 관한 법. 이는 독립전쟁 준비를 위한 제도 확립이다. 돈이 있어야 독립전쟁을 할 수 있다. 상해의 경우, 정부를 두고 있으니 정부 운영이 잘되려면 돈이 필요하다. 현재는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공채 판매나 애국금을 모으기 위해 자리를 비우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관련하여 상해 국민이 개납의 법을 지키려면 놀지 말고 일해서 돈을 벌게 해야 한다. 정부는 국민이 돈을 벌 수 있도록 노동주선소 운영이나 기술교육 등을 실시할 수 있는 기관을 설치하여 경제 평등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정치, 경제, 교육 부문에서 기회의 평등을 위한 민주적 제도를 마련하고 국민의 개병, 개납, 개업의 세 가지를 의무 규정으로 정해 나가자.


여섯 번째는 통일이다. 3.1운동은 민족단결로 이루어진 대한민국의 위대한 저항운동이었다. 3.1운동에 편당심이 있었는가? 3.1운동에 지방열이 작용되었는가? 아니다. 이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통일된 힘으로 독립전쟁을 치를 때가 왔다. 우리 국민은 통일 대한국민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통일을 말하는 이유는 무슨 까닭인가? 우리의 분열을 누가 가장 좋아하겠는가? 적, 일본이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통일 단결이다. 단결의 힘은 무섭기 때문이다. 적들은 밀정을 여기저기 파견하여 정탐과 이간질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우리가 적의 지배 논리에 추종해야 하는가? 생각해 보면 지방열이니 편당심이니 하는 문제는 공과 사를 분명히 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른 생각이나 주장이 공론의 장에서 토론이 되고 의사 결정이 된다면 이는 발전이 아닌가? 이것이 공화제도이고 민주발전이다. 이해관계를 떠나 대한독립의 공의를 위해서 통일하자. 대통령 이승만과 국무총리 이동휘를 중심으로 단결하고 통일해서 독립전쟁 준비의 힘을 기르자.


1920년 1월 19일. 통합내각 이동녕 내무총장은 이동휘 국무총리의 인준을 받아 안창호에게 내무부 선전위원장 자리를 맡겼다. 박용만 외무총장이 취임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대내외 외교 총괄 업무를 위임한 것이다. 다만 외무총장의 직무는 이동휘 총리가 겸하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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