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대신 나를 돌보는 시간
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해 본 적이 있다.
밥을 먹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불쑥 솟구치는 억울함에 당장이라도 뛰어 들어가 따져볼까 싶었다. 나를 함부로 대했던 그들의 말과 행동을 곱씹으면서 상상 속에서 수없이 그들과 싸웠다. 나도 복수할까? 만나면 비슷하게 쏘아붙여 볼까? 그러면 그 사람 표정은 어떨까? 그 언니는, 그 친구는 나에게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내가 그렇게 못났었나? 이런 생각 속에 빠져들었다.
글을 쓰고 싶었다. 그 사람들에 대해, 나르시시스트라는 단어로도 부족한 그 무례함에 대해 세상에 낱낱이 고발하고 싶었다. 이렇게 나쁜 사람들이 있다고, 나처럼 당하지 말라고. 하지만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릴 때마다 주저하게 되었다. 이 글은 결국 누군가를 향한 ‘뒷담화’가 되지 않을까? 그들을 욕하는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또다시 괴로웠던 기억 속에 갇히는 건 아닐까?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만으로는 내가 스스로 일어설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나는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타인을 미워하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소모적이다. 그 화살을 밖으로 쏘아대느라 정작 내 마음은 너덜너덜해지고 있었다. 되려 그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커져서 이유만 계속 만들어 내기만 하고 나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그들을 미워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자기 합리화에 빠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나는 방향을 틀기로 했다. 나의 에너지를 남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욕하는 대신, 나를 더 강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데 쓰기로.
그러다 문득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았다. 바로 요가 매트 위였다.
사람들은 요가를 ‘힐링’하고 ‘릴랙스’ 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잔잔한 음악, 향긋한 인센스, 우아한 동작… 나 역시 그런 평화를 얻기 위해 요가원을 찾았다.
하지만 요가는 생각보다 친절하지 않았다. 처절한 ‘버티기’였다.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팔의 근력은 얼마나 없는지 넘어지고 무너지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이 익숙해지고 가빠졌던 숨이 고르게 호흡하는 순간 머릿속을 시끄럽게 울리던 그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순간 고요해졌다.
“회원님,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마세요. 나에게 집중해서 호흡하세요. “
선생님의 그 말 한마디가 나를 깨웠다. 가쁜 숨을 고르며 곰곰이 생각했다. 도대체 왜, 나는 그런 인간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말려들었을까. 그들이 교묘했기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깊은 나를 들여다보니 인정하기 싫은 내 모습이 보였다. 바로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던 것이었다.
내 기분보다 남의 기분을 먼저 살폈고, 내 생각보다 타인의 평가에 신경을 썼다. “내가 맞나?”보다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저 사람 표정이 왜 안 좋지? 내가 한 말 때문인가?”를 중요하게 여겼던 나였기에, 그 빈틈을 파고드는 나르시시스트들에게 나는 너무 쉬운 상대였을지도 모른다. 나를 지키는 경계선이 희미했으니까.
요가 매트 위에서는 ‘남 눈치’가 통하지 않았다. 옆 사람을 신경 쓰느라 고개를 돌리면 내 중심이 무너져 비틀거렸고,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하겠다고 욕심부리면 어김없이 근육이 탈이 났다. 요가는 철저하게 내가 우선이어야 하는 세계였다.
60분의 요가 수련 시간. 그 시간만큼은 누구의 친구도, 누구의 딸도, 직장의 누구도 아닌 오로지 ’나‘로서 존재했다. 타인의 기분을 맞출 필요 없이, 오로지 내 몸의 정렬과 호흡에만 집중하면 되는 시간이었다.
유튜브나 책으로 ‘자존감 회복’을 찾아다녔지만 회복은커녕 오히려 떨어지기만 했다. ‘자존감’은 거창한 구호 속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몸의 바른 정렬과 다리 하나로 버티는 몸, 호흡에서 느끼는 내 몸의 에너지 흐름 안에 있었다.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 소중해질수록 신기하게도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의 존재감은 희미해졌다. 내 중심이 단단하게 잡히니,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예전만큼 휘청거리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 형편없는 인간들을 생각하기엔 지금 내 몸을 바로 세우는 이 시간이 너무나 아깝고 귀하다.
나는 여전히 비틀거리는 초보 요기니지만 이제는 알 것만 같다. 66cm x 180cm 매트 위에서 나를 바로 세우는 연습이 결국은 매트 밖의 무례한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힘이 된다는 것을.
나는 이제 하소연을 빌려 ‘뒷담화’를 하는 대신, 요가 매트 위에서 땀을 흘리며 나를 바로 세우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초보 요기니의 요가 수련기이자 나의 상처 극복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