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악마는 천사의 미소를 띠고 나타난다.

나마스떼

by 채채씨


나마스떼.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나눈다. 비로소 요가가 시작된다.

요가원에서 수업시작 전과 후에 약속처럼 이 인사를 나눈다.


“내 안의 신성한 빛이 당신 안의 신성한 빛에 경배합니다.”


당신과 나를 신성한 존재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뜻이다. 이 짧은 인사를 건네고 도반분들과 눈을 마주치면 요가원은 이내 따스하고 선한 기운으로 채워진다. 인사는 이렇게나 중요한 것이다. 관계의 시작이자 약속이니까.


나에게도 첫인상이 너무 좋았던 그녀 K가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나보다 먼저 다가와 좋은 말을 건넸다. 내가 사람에게 치여 있을 때, 그녀의 무한한 긍정과 위로는 가뭄의 단비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너무 고마움을 느껴지만 한편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다.


“언니가 아끼는 건데 너한테만 주는 거야.”

그녀는 만날 때마다 내게 무언가를 안겨주였다.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건네는 스카프, 쓰다 만 명품 브랜드의 립스틱, 읽고 너무 좋았다며 내 품에 억지로 떠 안기듯 밀어 넣은 책들까지.


부담스러워서 거절하려 하면 “너 생각해서 챙겨 온 언니 마음을 무시하는 거니?”라며 오히려 서운한 내색을 비쳤다. 나는 처음에는 나를 향한 지극한 애정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에서 이렇게 나를 살뜰히 챙겨주는 ‘언니’가 생겼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먼저 우리는 베프(베스트 프렌드) 라며 팔짱을 꼈고 우리는 금세 가까워졌다. 그때 그녀는 내게 천사였다.

하지만 그 천사 같은 미소에 속아 경계심을 무장해제 했던 어느 날, 그녀는 불쑥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너는 다 좋은데, 가끔 표정이 너무 쎄해”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정색하며 내 표정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자기가 아는 누군가도 그런 표정을 짓다가 결국 안 좋은 일을 겪었다는 악담까지 덧붙이면서.

“내가 너랑 베프니까, 너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다른 사람들은 이런 얘기 절대 안 해줘.”


그날 집으로 돌아와 내 표정이 어땠는지 곱씹느라 그날 하루를 온통 망쳤다.


이상하게 그날 이후로부터는 모든 것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약속 장소는 점점 그녀의 집 앞으로, 시간은 그녀가 편한 때로 고정되었다. 내가 제안하는 것은 교묘하게 무시했고, 정신을 차려보면 늘 그녀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지적을 당한 뒤부터는 나는 그녀 앞에서 고장 난 로봇처럼 굴었다.

‘내가 또 말실수했나?’

말을 뱉기도 전에 스스로를 검열했고, 그러다 보니 입을 닫고 듣기만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분명 동등한 친구 사이였는데 어느새 주도권은 완전히 그녀에게 넘어가 있었다. 내가 어렵게 입을 떼면 그녀는 여지없이 면박을 주었다.


”너는 꼭 너만 일하는 것처럼 말하더라? “

전혀 그런 맥락이 아니었는데. 나는 그녀가 던진 말의 의도를 파악하느라 머릿속에 버퍼링이 걸려 더듬거렸다. 내 억울함을 설명하려 할수록 나는 점점 더 바보가 되어갔다. 대화가 넌 그렇더라? 난 아닌데? 이런 식의 소모적인 공방만 이어져갔다. 나는 늘 변명만 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때 깨달았다. 천사는 온데간데없고, 내 말을 검열하고 나의 행동에 지적하고 내 감정을 조종하려는 악마만 남아 있다는 것을,

그녀는 나르시시스트였다. 나는 가스라이팅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우리는 카페에 앉아 달콤한 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이 카페도 역시 그녀가 정한 곳이었다.

입안에는 달고 단 디저트를 먹고 있는 중이지만 혀끝은 구토가 나올 만큼 썼다. 뱉어버리고 싶었다. 역겨웠다.


돌이켜보니 끊임없이 쏟아지는 선물은 호의가 아니었다. 나중에 몇 배로 되갚아야 부채감이었다. 마음을 터놓으라며 다정하게 굴었던 것도 결국 내 약점을 쥐고 흔들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그 후로 그녀와의 약속 이 다가오면 몸이 먼저 반응했다. 숨이 가빠오고, 이유 없이 열이 오르고, 체한 듯 명치가 답답했다. 내 몸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 관계가 독이라는 것을.


“숨을 깊이 내쉬세요”

“휴…”


사바아사나(송장 자세)를 끝내고,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켜 다시 편안하게 앉는다. (수카아사나). 선생님의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짧은 명상으로 들으며 오늘의 수련을 마무리한다.

우리는 처음과 똑같이 선생님과 그리고 옆자리의 도반들과 눈을 맞추며 인사한다.


“나마스떼”


처음과 끝이 같은 이 인사처럼 관계는 언제나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하고 끝내야 한다. 내 바운더리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내 사람’이라는 명분으로 함부로 조각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에게 고개 숙여 존중을 표하는 이 순간, 우리는 비로소 동등해진다.

내가 소중하듯 남들도 소중하다.

이 당연한 진리를 깨닫는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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