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난민이 된 나이 든 어머니
Written by 이종선 / 아이티에스뱅크
어느 날, 마트가 사라졌다. 집도 있고 돈도 있는데, 쓸 곳이 사라진 것이다.
나의 노모가 사시는 아파트 건너편에는 제법 규모가 있는 마트가 있었다. 정문 앞 횡단보도만 건너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반찬거리와 생필품을 2만 4천 원 이상 사면 배달도 해주니, 걷기도 들기도 힘든 노년에게는 생활의 중심 같은 공간이었다. 필요한 만큼만 자주 사는 생활이 가능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트가 사라졌다. 그 자리에 요양병원이 들어선다고 했다. 마트 옆에 있던 24시간 편의점도 함께 문을 닫았다. 이제 파 한 단, 콩나물 한 봉지를 사려면 300미터를 걸어야 한다. 중간에 작은 구멍가게가 하나 있긴 하지만 가격은 비싸고 채소의 신선도도 떨어져 급한 경우가 아니면 그냥 지나친다고 하신다. 배달은 가능하지만 3만 원 이상을 사야 한다. 필요하지 않아도 억지로 더 사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생각해 보면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집이 없는 것도,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돈을 쓸 대상과 공간이 사라졌다. 이 상황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마트난민일까, 쇼핑난민일까. 요즘 말로 식품 사막화(food desert)라고 한다.
난민이라 하면 내란이나 외란으로 국가가 붕괴돼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도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오늘날의 노년은 다른 형태의 난민이 되고 있다. 경제는 생산과 소비가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데, 그 고리 중 하나가 사라졌다. 문제의 본질은 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의 장소와 접근성이 먼저 무너지고 있다는 데 있다.
그런데 앞으로 살아야 할 시간이 20년, 30년이나 남아 있다. 그 긴 시간을 이런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원래 노년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공통된 희망이다. 자식들을 키워 독립시키고, 부부가 함께 여행도 다니며 이웃과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삶. 우리는 그것을 당연한 미래처럼 생각해 왔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수명은 늘어났지만, 노년의 삶을 떠받치는 생활 인프라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이런 풍경은 내게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군 복무 시절, 전방견적지 훈련을 위해 일주일가량 휴전선 인근에서 근무하는 보병들과 함께 생활한 적이 있다. 김신조 침투로를 따라 매복과 침투, 전투 훈련을 진행하며 그들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그곳에서는 일주일이나 보름에 한 번 부식을 실은 차량이 부대에 들어왔다. 병사들은 그것을 '구름마차'라고 불렀다. 이등병 몇 명이 커다란 버블백을 메고 나와 고참들과 소대에서 필요한 물품을 대신 사 왔다. 그날만큼은 부대 전체가 유난히 분주하고 들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 또한 소비의 자유를 잃은, 또 다른 형태의 쇼핑난민이었다.
이런 문제는 비단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올해 일본에서는 식료품 가격 급등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고령화로 농촌 생산 인구가 줄었고, 기후 이상까지 겹쳐 생산량이 급감했다. 오죽하면 한국에 관광 와서 쌀을 사고 인증 사진을 올릴 정도다. 이는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우리는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배달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전제는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야 하다는 것이다. 손이 떨리고 시력이 흐려지며 기억력이 감퇴하는 노년에게 그 편리함은 또 다른 장벽이 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다시 도시로, 더 큰 도시로 몰린다. 젊은이든 노인이든 빽빽하게 모여 숨 막히게 살아간다. 삶이 깔때기처럼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모습이다.
쇼핑난민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노년의 삶을 개인의 적응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로 다시 들여다봐야 할 때다.
* 이 글은 2025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