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를 탈출하는 사람들 (3)

기업이 떠나간 자리를 채우는 것들

by 도시관측소

Written by 김세훈



“이게 정말 문제일까요?”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슈퍼스타 도시에서 인구와 기업이 빠져나가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요. 수요가 줄면 자연스럽게 부동산 가격과 물가도 안정되고, 고물가로 고통받던 서민들의 삶은 더 나아질 것입니다. 때가 되면 기업들도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도시의 중간계층이 담당하던 일자리의 허리가 사라진다는 점입니다.

슈퍼스타 도시에서 한번 치솟았던 인건비와 첨단기술 중심의 고용시장은 그 지역을 고소득 전문직과 이들을 뒷받침하는 저임금 혹은 비정규직으로 양분시킵니다. 중간이 사라지는 것이죠.


그에 따라 중산층 일반직이나 저숙련 노동자들이 필요로 하는 안정적인 일자리는 자취를 감춥니다. 관련 산업 생태계가 소멸한 상태로 불황이 지속되죠. 이렇게 한번 비틀린 노동 구조는 좀처럼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더 우려되는 점은 기업과 근로자가 떠난 빈자리에 각종 사회 문제가 뿌리내리는 모습입니다.


지금 샌프란시스코 거리에는 약 1만 명의 노숙자가 있고, 그 수는 매년 가파르게 늘고 있습니다. 2024년 조사를 보면 새로 늘어난 노숙자의 40퍼센트가 다른 지역에서 흘러들어왔다고 합니다. 근로자와 기업은 떠나고 노숙자와 마약 중독자가 몰려드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입니다.


시 정부의 대응도 실망스럽습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이라 불리던 도시가 이제는 노숙자들을 도심 쉼터로 인도하는 대신, 그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버스표를 지원하겠다고 합니다. 엄청난 세금을 거두면서도 도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떠넘기는 꼴입니다.


요즘 샌프란시스코의 소매점들이 문을 닫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매출 감소보다 더 심각한 것이 절도나 가게털이 같은 범죄의 급증입니다. 직원과 쇼핑객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죠.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강력 범죄와 절도가 늘어나는 추세고, 대마초 합법화 이후 마약 사용도 더 널리 퍼졌습니다. 특히 950달러 미만의 절도는 불기소하는 관용 정책이 오히려 범죄를 부추기는 역효과를 낳고 있습니다.



“한국은 다르지 않나요?”


물론 저도 공감합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수준 높은 치안과 준수한 시민의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밤거리는 아직 안전한 편이고, 카페에 노트북을 두고 나가도 도난당하지 않는 세계 몇 안 되는 나라임에 자부심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계 혁신의 심장부에서 벌어지는 일은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승자독식 도시에서 집값과 물가가 치솟고, 기업과 근로자가 떠나고, 범죄 문제까지 겹치면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은 순식간에 도시를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구축(驅逐)’은 쌓는다가 아니라 축출한다는 뜻입니다. 나쁜 일 하나가 긍정적인 일 열 가지를 몰아내는 것이죠.


도시가 지나치게 비싸지고 일자리의 허리가 사라지면 그 부담은 결국 구성원에게 돌아옵니다. 모두가 패자가 되는 게임이죠.


다시 생각해 보면, 도시의 본질은 사람, 자본, 인프라가 모여 활발하게 상호작용하면서 새로운 가치와 경험을 만들어 내는 데 있습니다. 과도한 물가와 외식비, 높은 임대료와 세금, 범죄에 대한 관용은 도시를 도시답게 만드는 모든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의 아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도시’라는 타이틀을 달고 번영을 지속할 수 있는 도시는 없습니다.


한국의 도시들은 이미 집값과 생활비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탈-캘리포니아’가 주는 교훈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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