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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필 Aug 21. 2020

외국 친구들과 떠나는 첫 여행

독일의 작은 베네치아와 가장 오래된 도시

외국 친구들과 떠나는 첫 여행




같은 수업을 듣는 콜롬비아 친구가 여행을 가자고 했다. 우리 학교는 ZIS-Treff라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독일 근교로 단체 여행을 떠나는 프로그램이 있다. 새로 독일에 온 국제학생들에게는 자르브뤼켄 이외의 독일 도시를 싼 가격에 갈 수 있고 유명한 관광지 이외에 진짜 독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라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이다. 역시! 학생들을 위한 복지가 빵빵한 독일이다!  하이델베르크, 슈투트가르트, 프랑스 멜씨 등 여러 목적지를 제공한다. 이번 여행은 트리어와 자부르크로 떠나기로 했다.


독일 라인란트팔트주의 트리어와 자부르크는 자르브뤼켄에서 완행열차로 1시간이면 갈 수 있다.    한 번에 두 도시를 돌아보려면 서둘러야 되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 아침 6시에 자르브뤼켄 중앙역에 나와달라고 했다. 덕분에 기숙사 친구들과 새벽 5시에 일어나 자르브뤼켄 중앙역으로 향했다. 중앙역에 도착하니 같은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들이 많이 나와있었다. 각 나라 학생들이 각자 통하는 언어에 따라 무리를 지어있었다. 나는 같은 언어가 통하는 한국인 친구는 없었지만 같이 떠나기로 한 같은 반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열차에 올라탔다.


독일인들이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이유?



독일의 열차들은 정말 느리다. 고속열차는 시속 200km 내외 완행열차는 100km 내외로 달린다. 아마 그래서 독일 사람들은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거일 수도 있다. 인터넷도, 핸드폰도 잘 터지지 않는 열차 안에서 시간을 때우려면 수다 떠는 거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일 사람들은 열차든, 버스든 옆에 앉은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걸 참 좋아한다. 덕분에  한국에서 조용한 성격에 속하던 나도 독일에 사는 동안 수다쟁이로 변하는 거 같았다. 어떤 친구는 아예 보드게임을 가져오기도 했다.


자부르크, 독일의 작은 베네치아


친구들과 한참 수다를 떨다 보니 자부르크에 도착했다. 자부르크는 자르 강을 바로 옆에 끼고 있는 독일의 시골 마을이다. 이 자르 강은 자르브뤼켄 까지 흐르는데 이 강 덕분에 자부르크는 독일의 작은 베네치아라고 불린다.


"와 평화롭다.". 자르 강 밑으로 펼쳐진 작은 마을과 마을을 둘러싼 포도밭 언덕 그리고 그위의 자부르크 성, 정말 전형적인 독일 시골 모습이다.


자부르크 마을, 물의 도시라 불릴만하다


여행은 자부르크 여행청에서 나오신 3분의 가이드에 따라 3팀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팀을 나누는 기준은 영어, 독일어, 영어+독일어가 가능한 가이드로 나뉘었다. 나는 영어와 독일어 둘 다 배워야 했기 때문에 영어+독일어팀에  참가했다.


가이드를 따라 마을 골목길을 속속히 탐험했다. 대체로 집들은 자르 강에서 갈라진 하천들 양 옆으로 지어졌고 마을 한가운데 시원한 폭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를 보고 독일의 베네치아라는 가이드의 설명에 감탄하려는 찰나 내 바로 옆에 있던 이탈리아 여학생이 베네치아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다며 내게 속삭였다. 하긴 베네치아는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여긴 강으로 둘러싸여 있으니깐. 그래도 굳이 베네치아라는 명칭이 없어도 충분히 매력적인 마을이다.


베네치아는 아니지만 매력 있어


마을 집들 중 특이한 점은 바로 건물들 모두 일정한 높이에서 색깔이 달라져있다. 1층, 2층으로 구분하기 위한 건 아닐 테고.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아주 오래전 강의 범람으로 인해 건물 색이 변한 거라고 했다. 제일 마지막으로 범람했던 건 약 300년 전이라는데. 그럼 이 건물들은 모두 최소 300년이 넘도록 사용된 건가. 역시 독일답다.


가이드 투어를 끝내고 1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같이 온 친구들과 자부르크 성에 갔다가 강하천에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자부르크 성


자부르크 성의(사실 성이라 부르기도 좀 그렇지만, 첨탑 하나만 남아 다) 첨탑에 올라가니 넓은 자르 강과 포도밭 언덕 그 사이에 예쁜 자부르크 마을이 보였다. "그래 사진을 찍기에는 높은 곳 만한 게 없지.". 곧 죽어도 사진이 먼저인 한국인인지라 어서 카메라부터 꺼냈다. "정말 평화롭다!". 친구가 외쳤다. 맞는 말이다. 지금껏 살면서 이렇게 평화롭게 느껴진 곳은 이곳이 처음이다. 이 평화로움을 더 만끽하고 싶었지만 우리의 여행지는 여기가 끝이 아니기에 서둘러 트리어로 가기 위해 중앙역으로 가기로 했다.

성에서 내려다본 자부르크 전경


트리어(Trier),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자부르크에서 트리어는 열차로 2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트리어는 정말 크다. 자칭 최소 주도인 자르브뤼켄에 있다가 트리어를 오니 정말 크게 느껴졌다. 여긴 지하철, 놀이공원, 아시안마트 등 없는 게 없다. 우선 가이드 투어를 마친 후 인도네시아와 중국인 친구와 아시안마트에 들리기로 했다. 여기서 그동안 못 먹었던 한국음식을 잔뜩 사가야지.


포르타 니그라(Porta Nigra), 고대 로마 유적이자 독일 내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투어는 트리어의 상징인 포르타 니그라(Porta Nigra)에서 시작됐다. 우선 말하자면 트리어는 공식 독일 내 가장 오래된 도시이다. 가장 오래된 도시라는 타이틀을 딸 수 있게 한 유적지가 바로 포르타 니그라인데 포르타 니그라는 고대 로마시대의 성문 중 남겨진 일부이다. 원래는 하얀색이었는데 천오백 년, 길게 잡으면 약 2천 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며 검게 변했다고 한다.


약 2천 년 전에 이태리 작은 도시에서 생겨난 국가가 알프스를 넘어 독일 중부인 이곳까지 정복하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이곳이 로마시대의 최전방 도시라 했으니까 아마 이 성문을 기준으로 로마제국과 게르만족의 거주지가 나뉘었을 것이다. 이 거대한 성문을 보며 로마제국의 지식들이 그대로 이어져 왔다면 인류가 훨씬 더 빨리 발전했을 거라는 상상을 했다.


공산주의 창시자의 고향


트리어의 또 다른 상징은 바로 칼 마르크스이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이론을 처음 생각해낸 공산주의의 창시자라 불린다. 마을 광장을 보면 마르크스의 동상을 찾아볼 수 있다.


아이러니 한건 칼 마르크스의 동상은 트리어 광장을 등지고 서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마르크스는 생전 고향인 트리어를 죽도록 싫어해 트리어를 떠난 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에 독일, 그중 서독지역이었던 트리어에서 동상을 세우기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그럼 대체 왜 마르크스 동상을 세운 건가? 가이드가 명쾌한 답을 했다. 바로 돈 때문이란다.


마을을 등지고 있는 마르크스 동상


칼 마르크스를 보기 위해 세상 모든 사회주의 중국인들이 트리어를 방문한다고 한다. 그래 중국인들이 많이 오면 돈이 되지. 오죽하면 중국인의 여행 빈도가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한다는 말도 있지 않나. 자유주의를 외치는 마을이지만 돈을 위해서라면 그깟 이념이 무슨 상관인가. 오히려 그게 더 자유주의답고 자본주의답달까. 이해가 간다.


트리어 투어를 마치고 서둘러 친구와 함께 아시안 마트로 같다. 만두, 카레, 김치, 김, 통조림 반찬 정말 없는 게 없다. 이것들 모두 사 가지고 가서 기숙사에서 아껴두고 먹어야겠다. 아아 가방을 큰 걸 가지고 올걸, 그럼 더 많이 사갈 수 있을 텐데. 아쉬웠지만 다음번 여행을 갈 때는 꼭 큰 가방을 들고 다니기로 했다.


내가 보낸 하루 중 가장 긴 하루


"지금 한국은 몇 시야?". 자르브뤼켄으로 돌아가던 열차에서 친구가 뜬금없이 물었다. 갑자기 왠 한국시간? 들어보니 오늘을 기준으로 서머타임이 끝났다고 한다. 그럼 이제 7시간이었던 시차가 8시간이네. 시차가 늘어남에 따라 한국과의 거리도 멀어진 거 같았다.


열차시간 내내 쉬지않고 수다를 떨어준 친구들


서머타임이 끝나는 날은 자정이 2시간으로 늘어난다. 즉 하루가 1시간 늘어나는 샘. 투어 때문에 일찍 일어나기도 했고, 실제 시간도 늘어나고. 오늘은 심적으로도 실제로도 내가 보낸 하루 중 가장 긴 하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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