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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필 Aug 27. 2020

유럽에서 가장 힙한곳, 베를린으로

시계방향으로 동유럽 훑기 첫 번째 도시, 베를린


예상치 못한 방학





베를린 열기구, Berlin Love You


독일의 겨울 학기는 10월에 시작해 3월에 끝나나 학기 중간에 크리스마스와 새해까지 약 2주간의 방학 기간을 가진다. "갑자기 약 2주간에 방학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시간이 갑자기 주어진 거라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수업을 같이 듣는 다른 친구들에게 물으니 고향이 가까운 유럽 친구들은 각자 고향에 가서 가족들이랑 크리스마스를 보내거나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갈 거라고 했다. 고향이 가까운 곳에 있다니 정말 부러웠다. 자르브뤼켄에 가족도 친구도 없는 나는 꼼짝없이 혼자서 보내야 할판인데. 보나 마나 독일에 가게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이라는 핑계로 다 문을 닫을 테고. 내 아까운 교환학생 시간 중 2주를 아무것도 안 하고 기숙사 내에서 보내기엔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나도 여행을 가기로 했다. 2주간의 긴 여행이라면 돈도 많이들 테지만 그래도 여행하면서 얻는 무언가도 있을 테니까. 2주 동안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고 바로 기나긴 여행경로를 짜기 시작했다.   


동유럽! 시계방향으로 훑기


유럽의 여행루트는 2개로 나뉜다. 바로 서유럽과 동유럽. 영국, 베네룩스 3국, 프랑스 등 서유럽을 가자니 자르브뤼켄과 너무 가까워서 2주라는 시간을 다 쓰지 못할 거 같았다. 그래서 동유럽으로 가기로 했다.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등 아직 서유럽보다 상대적으로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기도 했고 물가도 싸다고 한다.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트리에스테(이태리),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로 동유럽을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쭉 훑고 오기로 결정했다. 특히 가장 기대되는 곳은 바로 트리에스테! 거긴 진짜로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 항구도시였다. 아드리아해 앞에서 젤라토를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 기분이 좋아졌다. 문제는 자르브뤼켄에서 체코까지 가야 하는데 너무 멀다. 아마 체코 근처 독일 내에서 하룻밤 묵어야 될 텐데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됐다.


유럽에서 가장 힙한곳?


"독일에서 가장 힙한 곳이 어디야?". 독일에서 묵을 도시를 고르기 위해 독일인 친구에게 물어봤다. "당연히 베를린이지! 독일이 아니라 현재 유럽에서 가장 핫한 장소야!". 친구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유럽에서 가장 핫하다고? 거긴 파리 아니야?". 유럽에서 가장 핫한 도시가 노잼 독일에 있다니 이게 뭔 소리람? "오 마이 갓, 그건 한 10년 전 이야기야. 요새 모든 예술인들은 다 베를린으로 모인다고! 한번 가봐! 파리는 한물갔지.". 옆에 있던 독일어 교수님도 거들었다. 교수님까지 이렇게 말하다니 뭔가 신성 있어졌다. 그래 이번 동유럽여행의 시작은 베를린으로 정했다! 체코랑 위치상으로 가까운 독일 동쪽에 위치해 있고 독일 교환학생으로서 한 번쯤을 가봐야 할 독일의 수도니 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바로 베를린행 고속열차를 예매했다.


베를린으로 가는 여정


학교에서 방학 전에 하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끝내고 다음날 부랴부랴 짐을 챙겨 자르브뤼켄 중앙역으로 출발했다. 자르브뤼켄에서 베를린까지는 열차로 약 9시간. 독일의 남서쪽 끝에서 북동쪽 끝을 가는 긴 여정이었다.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밖에 없는 베를린 직행 ICE 열차를 예매하지 못해 우선 만하임으로 가서 베를린행 고속열차로 갈아타기로 했다. 2주간 여행할 거지만 짐은 윗옷 2벌, 잠옷 한벌만 작은 캐리어에 넣어서 챙겼다. 어차피 옷은 많이 챙겨도 다 입지도 못할 거고 여행 갈 때는 가볍게 다니는 게 최고니까.


사색에 잠기기 딱 좋은 독일 열차 여행


베를린행 9시간 열차는 굉장히 지루했다. 정말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게다가 예나(Jena)쯤 가자 열차에 문제가 생겨 1시간쯤 정체됐다. 열차 안에서 잠 도자고, 밥도 먹고 다했는데도 열차는 아직 베를린을 향해 가고 있다. 독일에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기찻길은 약 2백 년 전 지어진 거라 너무 오래돼 고장이 잦았고 이런 기찻길에서 달리기 위해 열차 속도는 시속 200km/h를 넘지 않으니까. 이래서 독일인들이 아무나 붙잡고 수다 떠는 걸 좋아하나 보다. 긴 시간을 보내기엔 수다만큼 좋은 방법은 없으니깐. 혹은 이래서 독일인들이 사색을 즐기는 거일 수도 있다. 창밖에 보이는 독일의 풍경과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열차 좌석, 정말 사색을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었다. 나도 창밖을 보며 생각했다. "아... 비행기 탈걸..".


예전 독일을 엿볼 수 있는 호텔


예전 수련회 용도로 사용했던 Dormitory


베를린 남역에 내려서 바로 예약해둔 호텔로 달려갔다. 호텔은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 수학여행 같은 곳에 가면 자는 곳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dormitory를 호텔로 개조해 만든 곳이었다. dormitory를 할 때 쓰던 3개의 2층 침대와 커다란 화장실이 남아있는 방을 호텔방처럼 사용했다. 1층 로비에 적힌 호텔 이력을 읽어보니 아주 오래전 독일 학교에서 사용하던 수련회 건물을 개조한 거라고 적혀있었다. "독일도 한국처럼 수련회라는 단체 활동이 있었구나.". 하긴 유럽에서 공동체 의식이 강한 전체주의 정권이 들어섰던 국가니까. 공동체 의식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단체생활이 가장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독일은 서유럽 국가 중 비교적 최근까지도 징병제를 하고 있던 국가다. 즉, 우리가 보통 유럽 생각하면 자유로운 생각과 개인주의를 떠오르는데 이것들이 독일에 들어온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호텔 방안에 남아있는 2층 침대와 단체생활의 흔적들을 보며 독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독일 분단의 상징, 체크포인트 찰리


베를린 지하철역에 새겨진 그라피티


호텔에서 아주 짧은 사색을 마치고 베를린 시내로 나왔다. 독일의 행정수도이자 3대 도시 안에 드는 곳. 독일의 경제도시 프랑크푸르트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프랑크푸르트는 깔끔하고 현대적인 도시임에 반해 베를린은 좀 더 낡고 우중충하면서도 그 우중충 안에서 나타나는 힙함이 느껴졌다. 지하철역과 거리 곳곳마다 그려진 그라피티와 길거리 연주가들이 이곳이 유럽에서 가장 힙한 곳임을 뽐내고 있었다. 베를린의 특유한 우중충한 느낌은 아마 서독과 동독으로 나눠졌던 역사 때문일 거다. 게다가 사회주의 정권인 동독의 경우 도시를 예쁘고 밝게 짓는다기 보단 획일화돼있고 효율성 있게 짓는 문화였으니깐. 동독과 서독이 재통일된 이유도 굉장히 재밌는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우리나라 통일 문제와 더불어 다시 적어봐야겠다. 독일의 분단 역사를 생각하며 양 독일의 검문소였던 체크포인트 찰리로 향했다.


체크포인트 찰리, 검문소 하나만 남아있다


체크포인트 찰리는 연합국, 외국인, 외교관, 여행객 등이 동 베를린과 서 베를린으로 이동하기 위해 거치는 일종의 검문소였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판문점 정도?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난 뒤 1990년 폐쇄됐으며 현재는 작은 검문소 건물 하나만 중앙 도로에 덩그러니 남아있고 양옆으로 높은 빌딩들이 들어서 있다.


베를린 장벽 조각을 기념품으로 판매한다


체크포인트 양옆 빌딩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들어서 있는데 여기서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바로 베를린 장벽 조각! 예전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구분 짓던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후 남은 장벽 잔해들을 모두 주워 기념품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우연으로 이뤄진 독일 재통일 처럼 베를린 장벽을 소지하고 있으면 행운이 온다고 한다. 그냥 장벽 돌덩어리였으면 잘 안 팔렸을 텐데 색깔이 에쁘기 까지 하다. 정말 머리도 좋다. 나도 우리나라가 통일하면 판문점 근처 철조망 조각들을 주워서 팔아야 하나? 재밌는 상상을 해본다.


독일의 개선문, 브란덴부르크 토어(Brandenburger Tor)


브란덴부르크 토어, 엄청 거대하다


체크포인트 찰리를 구경하고 걸어서 브란덴부르크 토어(Brandenburger Tor)로 향했다. 브란덴부르크 토어는 독일의 개선문이다. 예전 독일 연방에 한 주였던 프로이센의 막강한 군사력을 상징하는 건물로 문 위에는 콰드리가 조각상이 새워져 있다. 콰드리가는 4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를 탄 여신을 뜻한다.


브란덴부르크 토어 앞에 광장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 위한 파티가 한창이다. 저 멀리 뛰어져 있는 베를린 열기구와 음악에 맞춰 춤추는 사람들. 그리고 광장 양옆에 있는 가로수와 상점들이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떠오르게 한다. 음악에 맞춰 춤추는 사람들 사이사이로 방송국 직원들이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정말 베를린이 유럽에서 가장 힙한곳이 맞긴 하나보다.


유대인을 기리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안으로 들어갈수록 미로가 된다


브란덴부르크 토어 옆에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있다. 여기는 예전 나치 독일 시대 때 학살된 유대인들을 기리는 장소이다. 검은색 대리석들이 서로 다른 높이로 빼곡히 위치해있다. 대리석 배치도 딱딱 맞춰진 일직선이 아닌 미로처럼 여기저기 흩트려 놓는 상태로 배치돼있다. 이렇게 배치한 이유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안을 걸으며 나치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들의 마음을 느껴보기 위한 의도이다. 실제로 들어가면 이 대리석들에 의해 길을 잃게 된다. 그리고 나보다 더 큰 검은 대리석들 사이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갑갑한 마음을 느끼게 된다.


홀로코스트 메모리얼까지 보고 호텔로 돌아왔다. 좀 더 보고 싶었지만 베를린은 동유럽에 가기 위해 하룻밤 묵어가는 곳이니까. 9시간의 기차여행 때문에 피곤함이 쌓인 이유도 있다. 아직 남은 관광지가 많았지만 나중에 시간이 되면 베를린과 옆 폴란드 땅의 슈체친을 따로 보러 오기로 했다. 어서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 동유럽여행의 필수 국가 체코를 향해 출발하기로 한다.


베를린에 가면 꼭 가보세요! 박물관섬


베를린 박물관 섬


베를린에는 약 5개의 박물관이 모여있는 박물관 섬이 있다. 같은 수업을 듣는 콜롬비아 친구가 꼭 들러야 된다며 말해줬는데 시간이 없어서 들리지 못했다. 페르가몬 박물관, 구 박물관, 신 박물관, 보데 박물관, 구국립 박물관 모두를 뮤지엄 패스 하나면 모두 통과가 된다 하니 나중에라도 꼭 와봐야겠다. 콜롬비아 친구가 말해준 건데 사람들은 영국과 프랑스가 제국주의 시절 약탈한 유물들로 박물관을 만들은걸 비난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독일은 비난하지 않는다고 한다. 독일도 다른 국가와 똑같이 이 박물관 섬에 약탈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아마 독일의 제국주의 시절 만행들에 대한 지속된 사과 덕분일까? 콜롬비아 친구가 거기 한국에서 가져온 유물들도 있었다고 귀띔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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