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빠 미안, 나는 5년째 취업 중
나는 5년째 취업 중이다. 지난 2020년 독일에서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와 취업 전선 뛰어들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진 적은 없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우선 코로나로 독일에 복귀하려던 계획이 막혔다. 그리고 한국에 남아 단지 TV에 나오는 앵커가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아나운서를 내 첫 목표로 설정했다. 내 전공인 '생명공학'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었다. 이는 내 전공을 버린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나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요즘말로 따지면 '이세계'로 떨어졌다. 그것도 거창한 이유없이 제 발로. 아마 26살의 나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배울 수 있다는 패기가 있었나 보다. 그때는 내가 '이세계'를 이렇게까지 못 벗어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물론 5년 내내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내 첫 직장은 의외로 빠르게 찾아왔다. 나는 2020년 아나운서 학원을 수료한 직후 경기 성남의 어느 한 작은 인터넷 언론사에 프리랜서 앵커 겸 취재기자로 취직했다. 말이 프리랜서지 최저시급으로 한 달에 한 번 계약을 연장하는 '아르바이트'에 가까웠다. 이 회사는 네이버에 뜨지도 않고, 유튜브만 활용하는, 아무도 모르는 속칭 '유사언론'... 아니 정말 작은 소규모 언론사였지만 나름 배운 것은 많았다. 적은 인력(0)으로 내가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고, 카메라를 잡고, 내레이션과 앵커, 영상 편집까지 혼자 다 맡았다. 누가 보면 혹사시킨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덕분에 비교적 어린 나이에, 이쪽 일에 대해 어느 정도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다만 아르바이트에서 벗어나고자 난 다시 7개월 만에 취준생으로 돌아갔다.
이어 내 두 번째 직장은 몇 달이 지난 2021년 여름에 찾아왔다. 이번엔 모두가 알만한 회사, '연합뉴스'. 계약직이었지만 아마 내 인생에서 이런 기회가 찾아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운이 좋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가장 감사하며 되새길 시간이다. 연합뉴스에서 내가 맡은 업무는 유튜브 '크리에이터'였다. 직접 취재한 아이템들을 가지고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며 시청자들에게 알리는 역할이었다. 유튜브, 맡은 취재 분야 등 활동 당시에는 모든 게 처음이라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쪽 직군에서 '뉴미디어'를 직접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도 했다. 당시 조금 더 일을 하면서 배우라면 배울 수 있었겠지만 '20대 후반 진입 + 계약직'이라는 상황이 만든 조급함에 불을 붙혔다. 이어 그 좋은 기회를 발로 차고 6개월 만에 일을 그만뒀다. 더 이상 정규직을 찾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쫓긴 나는 다시 제대로 된 취준을 해보리란 마음으로 이세계에 제 발로 돌아갔다.
내 세 번째 직장은 또 몇 달이 지난 2023년 끝가을에 찾아왔다. 이번엔 대한약사회의 기관지이자 전문지 취재기자. 아마 이때부터 내 목표는 아나운서에서 취재기자로 전환된 것 같다. 그것도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말이다. 직장을 가졌던 그 사이사이 공백기에 나는 전국에 걸친 수많은 방송국에 채용 원서를 냈다. 아나운서와 기자 가리지 않고 말이다. 결론적으로는 두 분야 탈락한 경험이 많다. 하지만 내 서류합격 기준 결과는 취재기자가 아나운서 합격률보다 월등히 높았다. 28살이 끝나갈 나이에서 다시 생명공학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에 그나마 합격 경험이 있었던 취재기자로 뒤도 돌아보지않고 목표를 바꾼 것이다. 원래 깔끔한 이미지도 아니고, 맨날 츄리닝이나 입고 다니는 나 스스로도 아마 아나운서는 맞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약사회에서는 취재기자는 물론 조금 더 사회적인걸 배운 것 같다. 작은 규모였지만 만났던 사람들, 선배들 모두 20대 신입 애송이가 실수를 해도 봐주던 분이었다. 덕분에 조용하고 침착했던 성격인 내가 조금 더 자신 있게, 과감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약사회 생활은 8개월 만에 끝이 난다.
약사회에 이어 나는 공백기 없이 개국한 지 얼마 안 된 한 경제 TV에 방송기자로 입사하게 된다. 이것이 내 네 번째 직장이자 현재로선 마지막 직장이다. 다만 한 직장에 근속연수 1년을 못 채우는 저주가 걸렸는지 역시 몇 달 가진 못한다. 처음 입사했을 땐 정말 오래 다닐 거라고 확신했다. 직장 상사, 동기, 환경 모든 게 완벽했다. 그동안 다닌 직장들이 헛되진 않았는지 업무도 어느 정도 쉽다고 느껴졌다. 다만 위기는 무슨 심보가 있는지 늘 완벽할 때 찾아온다. 신생 회사라는 게 문제였는지 인사에 칼바람이 불었다. 내가 정말 완벽하고, 따르고 싶다고 생각했던 상사들이 다 나갔다. 그 자리엔 업계에 소문 흉흉한 사람이 들어왔다. 와중에 동기들도 예고 없이 3명이 잘렸다. 이것이 단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다. 물론 그 이면엔 내가 알지 못했던 것, 29살보다 더 어른들의 사정이 있었던게 분명하다. 다만 내 입장에서 봤을 때 이 회사는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는 회사가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그렇게 더 늦기 전에 제대로 된 직장을 꼭 갖겠다는 마음으로 난 다시 취준의 세계, 이세계로 발을 들였다.
여기까지가 내가 5년째 취업준비를 하게 된 계기, 아니 핑계다.
2025년 새해가 밝았다. 아마 대부분은 희망찬 한 해를 기대하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조금 우울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그래서 여기에 앞으로의 내 취준 과정을 적어보려고 한다. 나는 종교, 무속 등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것은 일절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글은 그 자체가 가진 기운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신기한 힘이 있는 것 같다. 부정적인 글로 남들한테 폐 끼치기 싫으니 여기에서라도 긍정을 끄적이려고 한다.
글을 끄적이다 보니 문득 무속을 믿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또 국가적으로 무속이 유행이니까... 2025년, 나에게는 삼재가 벗어나는 해, 앞자리가 바뀌어 아홉수를 벗어나는 해이다. 올해는 꼭 안정적인 직장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화이팅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