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다카마쓰
"나는 왜 한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했을까".
"나는 왜 이 바닥의 철새 같은 존재가 되었나"
곰곰이 생각하다 나는 이 원인을 '쉼'에서 찾았다. 보다 근본적이고 명확한 이유야 있겠지만은 취업-공부-취업-공부, 지난 5년간 제대로 쉬지 못한 것도 분명히 영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애석하게도 우리 한국인들은 취업을 하면 시간이 없고, 공부를 하면 돈이 없다. 그렇기에 본격적인 취업 준비에 뛰어들기 전 나는 이번엔 기필코, 하루라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나는 일본 소도시 다카마쓰로 떠났다.
다카마쓰를 선택한 이유는 단지 싸고, 가까워서였다. 여기에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일본 도시, 여행객이 적어 북적거리지 않는다는 이유도 크게 작용했다. 사실 이전까지 직업 특성상 사람들 만나는 게 일이었으니 일본에 있는 만큼은 철저히 '이방인'이 되고 싶었다.
다카마쓰는 일본 세토 내해에 '시코쿠'라고 불리는 섬에 존재한다. 도깨비(엄밀히 말하면 오니), 사누끼 우동의 고장이라고도 불린다. 아마 재작년부터였나, 이 도시에 인천발 직항 비행기가 생긴 것은 2년 도체 안 됐을 것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관광객이 많지는 않다. 그 흔한 캐릭터 샵도, 쇼핑할 거리도 없는, 하루면 도시 하나를 다 볼 수 있는 정말 작은 소도시다.
일본에 도착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공기가 맑다. 미세먼지가 하나도 없는 푸른 하늘이다. '일본=쓰나미 방파제, 한반도=미세먼지 필터기'라는 속된 밈이 절로 체감되는 하늘이다. 12월 중순 기준 날씨는 단풍이 만개한 딱 가을날씨였다.
계획 없이 그냥 쉬러 온 여행이었기에 일단 시내 거리를 걸었다. 골목골목 깨끗한 일본 특유의 길도 걸어보고, 걷다가 인스타 갬성의 카페도 들리고, 시내 미술관도 들렸다. 그냥 이렇게 쉬려고 온 여행이었는데... 가만히 있으면 병이라도 걸리는 건지, 아니면 정말 성인 ADHD인 건지, 이렇게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뭐라도 관광을 해야겠다 싶어 급하게 구글 지도를 펼쳤고, 인근 야시마 산이라는 곳에 올라가면 노을이 예쁜 전망대와 절이 있다길래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야시마산은 '고토텐 야시마'역에서 15분 정도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간다. 버스로 15분 거리면 걸어 올라갈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이는 경기도 오산이다. 경사가 완만한 일반 언덕 같은 산을 생각했는데 커다란 바위덩어리 산일줄 누가 알았겠는가. 버스가 없으면 절대 올라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렇게 역에서 나와 셔틀버스를 탑승했다. 참고로 이 고토텐 야시마 역은 일제강점기 때 지어져 100년이 거의 다 됐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정상에 올라오니 야시마절이 나왔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이 절은 일본 국가문화재로 754년 당나라 사람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야시마절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깔끔하게 조성된 건축물과 주위 야시마산의 자연환경이 잘 어우러졌다. 온 김에 올해 안에 제대로 된 직장을 달라고 기도도 했다. 이뤄지면 다시 찾아올 빌미를 남겼다.
야시마절도 예뻤지만 무엇보다 예쁜 것은 바로 야시마 절에서 바라보는 노을이었다. 절 안쪽으로 쭉 들어가다 보면 야시마 전망대가 나온다. 이 전망대에서 다카마쓰 시내, 세토 내해를 배경으로 지는 노을을 파노라마로 구경할 수 있다. 전망대에 자리를 잡고 해가 완전히 넘어갈 때까지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조용한 절에서 노을을 바라보니 퇴사하며 생긴 복잡한 생각들이 정리되는 것 같았다. 이번 다카마쓰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장소이다.
해가 지고도 한참을 다카마쓰 야경을 바라봤다. 절도 문을 닫고 직원들도 나갈 시간이었지만 가만히 앉아 최대한 눈에 담았다. 혼자 조용히 야경을 바라보니 아마 생각할 것이 많았나 보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절을 나왔는데 정말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셔틀버스가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