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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필 Oct 19. 2020

우린 100번의 여름도 못 맞이한다

영원히 이대로 살고싶어


나는 제철과일을 잘 먹지 않는다.




이상하게 제철 과일은 잘 당기지 않는다. 제철 과일이 더 달고, 가격도 더 싼데 말이다. 오히려 나는 여름에 귤을 먹고 겨울에 수박을 먹는 것을 좋아한다.


대체 왜 그런진 나도 모른다. 그 계절에 잘 먹지 못하기 때문일까? 왜 그런 말도 있지 않나. 없을수록 더 당기기 마련이라고. 그래서 나는 여름에 항상 하우스 감귤을 사 먹는다.



이를 두고 아빠랑 실랑이가 벌어졌다. 귤은 겨울에 좀 쌀 때 먹고 지금은 수박을 먹자고. 원래 제철과일이 맛도 좋고, 영양도 좋고, 가격도 싸다고 한다. 래도 난 여름에 귤을 먹는 게 좋은데.


우린 평생 100번의 여름도 못 맞이한다더라


그걸 지켜보던 누나가 옆에서 말했다.

"누가 그러던데, 우린 평생 100번의 여름도 못 맞이 할 수 있다고". 순간 벙쪗다. 맞는 말이다. 우린 많아봐야 100년 정도밖에 못 살 테니까. 누가 말했는진 몰라도 인상 깊은 명언이다.


그럼 난 이제 스물다섯이니깐 많아봐야 75번 남은 거네. 생각이 많아졌다. 더운 날씨와 시원한 바닷가, 매미소리가 들리는 이 방학의 계절이 75번밖에 안 남았다니. 억울하다. 제철과일은 싫어도 여름은 좋은데.



옆에 있던 엄마는 자긴 50번도 안 남았다고 하신다. 이렇게 가족들이랑 보내는 여름방학이 그 정도밖에 안 남았다니 마음이 안 좋아졌다. 스물다섯에도 아직 와 닿지 못한 건 우리 가족은 내가 죽을 때까지 함께 할 거라는 건데. 무심코 던진 누군가의 명언이 이 점을 다시 상기시켜줬다.

 

100번의 여름이 아깝지 않게


왜 우린 100살 정도밖에 못 사는 걸까? 저 바다에 고래도, 거북이도 200살 넘게 사는 종이 있다던데. 부모님과의 남은 시간이 50년이라고 할 땐 잘 몰랐는데 50번의 여름이라 하니 어감상 더 짧게 느껴졌다. 안그래도 스물다섯이 된 이후 자주 느끼는건 부모님이 예전같지 않다는건데. 앞으로 부모님한테 더 잘해야겠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한테도 더 잘해줘야겠다. 우린 어차피 100번의 여름밖에 못 맞이하니깐. 우리나라는 유독 남녀 갈등, 수저 갈등, 지역갈등, 이념갈등 등 뭔 온 세상 갈등이란 갈등은 다 집합시킨 곳 같다. 이 좁아터진 나라에서 서로 편을 가로고, 층을 나눠 싸우고 혐오하기엔 100번의 여름이란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내가 조금 더 양보하고 더 배려하면 되는 것을. 우린 짧은 시간을 가졌기에 더 인상 깊은 세상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로 나도 여름 수박을 사서 먹어봐야겠다.

앞으로 75번의 여름 수박밖에 남지 않았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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