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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로 Sep 22. 2020

그녀의 디자인

호 (好)

내 친구 호에 대해 써보고 싶다. 호는 고등학교 동창 중 한 명이다. 그녀를 호라고 부르는 건 그녀의 이름에 호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mbti로 성격을 분류하곤 하던데, 그녀는 극 I형에 가깝다. 까무잡잡한 피부, 마른 몸과 낮은 톤의 목소리를 가진 그녀는 어딜 가도 튀는 법이 없다. 고등학교 때, 뜻하지 않은 갈등 상황에서도 그녀는 ‘걔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는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고 무던하고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호는 디자이너다. 5년 동안 디자이너로 일했던 그녀는 지금은 백수로 살고 있다. 그녀가 회사를 막 그만두고 만났을 때, 그녀는 불안감으로 가득했다. 언제나 무던하고 걱정 없어 보이던 그녀는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 가득한 사람만이 남아있었다. 코로나가 극심해지면서 프리랜서로 일할 자리조차 사라져 그녀의 불안감은 더 커졌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 잠깐 쉬어간다고 생각해. 5년 동안 고생 많았잖아.

디자이너로 일했던 5년 동안 클라이언트, 직장 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로 힘들어했던 걸 알았던 나는 불안한 그녀를 위로했다. 사실 내 위로가 그녀에게 닿을지 의문이었다. 첫 직장을 잡아 따박따박 월급 받는 생활을 하고 있는 내가. 그녀의 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지, 부족한 위로를 건네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지난주 토요일엔 저녁 약속이 있었다. 호와의 만남은 아니었지만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가기 무서워 호의 집에서 잤다. 오랜만에 만난 호와 나는 새벽 2시까지 대화를 했다. 만나지 못했던 동안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느라 쉽게 잠들지 못했다. 호에게 편한 옷을 빌린 나는 옷을 갈아입었다. 그녀가 내 옷에 얼룩을 발견했다. 본인이 빨아주겠다면서 늦은 시각에 손빨래를 해주는 호였다.


호의 자취방은 5층이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은 있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 보면 펼쳐지는 서울의 풍경이 아름답다. 집의 양 옆에 있는 창 덕분에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이 함께하는 훌륭한 집이다. 푹자고 따뜻한 햇살 덕분에 잠에서 깬 우리는 간단히 밥을 먹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사 왔다. 코로나 때문에 근사한 음악과 어수선한 분위기의 카페에 머물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집은 카페 못지않은 좋은 분위기였다. 적당히 쌀쌀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집에서의 커피 한잔은 힐링 그 자체였다.

  - 요즘은 어때?

  - 좋아. 일할 때는 가을이 오는지 가는지도 몰랐는데, 가을은 이런 날씨구나. 좋다.   

호는 계절의 변화를 만끽하고 있었다. 호를 닮은 따스한 햇살을 품은 집에서 그녀는 백수이자 프리랜서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그녀만의 행복을 디자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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