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를 읽고
“두려움도 아픔도 죄책감도 다 못 느꼈으면 좋겠어.”
눈물 섞인 목소리였다. 나는 조금 생각한 후에 입을 열었다.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야. 그러기엔 넌 너무 감정이 풍부하거든.
넌 차라리 화가나 음악가가 되는 편이 더 어울릴걸.”
책 <아몬드> 속,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윤재를 부러워하는 곤이처럼. 나도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던 때가 있었다. 과거의 나는 타인의 감정에 쉽게 동화되어 함께 울고 웃는 사람이었다. 가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다 지쳐 세상 혼자 사는게 편하겠노라.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가족의 비극적 죽음을 마주하는 주인공이 부러웠던 건 아니지만, 세상을 관조하듯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부러웠다. 태풍 속에 살던 나와 대조되기 때문인가.
어느덧 나는 세상을 관조하는 척 살고 있다. 타인의 감정에 쉽게 동화되지 않으려 외면하기도 하고,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빠지던 나는 스스로 제동을 걸어 절제한다. 민망함과 부끄러운 상황 속 붉게 물들던 얼굴은 아닌척 뻔뻔한 낯짝을 드러낼 줄 아는 어른아이가 되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해 괴물이라 불리던 윤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는 다는 것'에 의문을 가진다. 그리고 윤재는 곤이를 위해 희생한 뒤, 사람들이 왜 도망치지 않았냐는 물음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나는 제일 쉬운 일을 한것뿐이라고 말했다.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느낀대로 행동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타인에게 공감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이들에게 괴물이라 말할 수 없다. 나 또한 그 중 한사람으로서 사회에 적응해가며 익힌 사회 스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친구를 위해 희생하는 윤재의 모습은 감히 인간적이었다 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