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건축사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얼그레이스콘 Mar 16. 2021

역사 공부에서의 '철수와 영희'

#건축사색 01.

나는 대학에서 건축을 가르친다. 겸임교수라는 허울 좋은 직함을 달았지만 정년을 보장받지 않은 강사의 신분이다. 담당 과목은 건축사와 건축계획. 학기에 따라 대학원 수업을 하기도 하지만, 건축학과 2학년의 역사 수업에 가장 공을 들인다. 대학 1년 동안 고등학생 티를 조금 벗은 아이들이 ‘대학 생활이란 말이야’라는 듯한 다소 건방진 표정으로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다. 학기 초의 어색함이 풀려갈 무렵이면, 뒷자리에서 턱을 괴고 껄렁껄렁 대던 녀석들이 슬금슬금 맨 앞자리로 옮겨와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기도 한다. 나는 신이 나서 더욱 목소리를 높인다. 나의 묵은 지식도 이렇게 파릇한 이들과 함께라면 언제나 싱그러울 것만 같다.    

 

그러나 내 수업에서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다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라는 나의 전달방식이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켈란젤로를 성기 르네상스 건축가로 볼 것인가, 아니면 후기, 혹은 매너리즘의 시작으로 볼 것인가, 16세기 후반 ‘일 제수 성당’은 후기 르네상스 건축인가 바로크 건축인가, 라는 문제 등이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지, 무슨 수업이 그렇냐’고 따지지만 않을 뿐, 정답을 얻어내지 못한 아이들의 표정에는 반감이 가득하다. 대학에 들어오기까지 항상 요점이 요약된 공부만 해왔으니, 이런 수업은 원망스럽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요약서를 만들어주진 않는다. 될수록 많은 사례를 보고, 적어보고, 만들어보고 그래서 생각할 것을 권한다.      


미안하게도 역사 공부에서 ‘절대 진실’이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지만 그것은 또 기록한 자의 의견을 담기 마련이라고 설명해준다. 그리고 이것이 후세에 전달되는 방식은 다시 사람에 의한 것이므로, 결국 우린 여러 가지 ‘해석’을 전해듣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 공부에서 “네! 아니오!”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선생으로서 내가 전달해주는 지식이란 그저 학생들보다 좀 더 읽고 생각한 입장에서 나온 의견이며 대답으로서의 대략적 바운더리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내 말을 백 퍼센트의 진실로 듣지 말라고, 부디 다른 책을 더 찾아보고 의심하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해주어도 불만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싶을 때, 나는 ‘철수와 영희’를 소환한다.     


철수와 영희가 있다. 이 둘은 같은 학과 3학년이고 얼마 전 엠티를 다녀왔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이 둘이 사귄다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친구들의 반응은 이러했다.     

A:“야, 둘이 언제부터 사겼대?”

B: “그 지난번 엠티 마지막날 밤에, 철수가 영희한테 고백했대.”

C: “아냐, 철수가 입학식 날 영희 딱 보고 그때부터 좋아했다던데?”

D: “그건 영희 얘기 아닌가? 영희가 평소에도 철수 꽤 신경쓰는 것 같던데?”

... 그러자 옆에서 영희의 고등학교 친구라는 E가 말한다. 

E: “아냐, 걔네 고등 때 같은 학원 다녔었어. 원래 알던 사이야.”

철수의 절친인 F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F: “얘네 뭘 모르네. 철수, 영희네 부모님들끼리 친구잖아. ”    

 


등의 대화가 일어났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철수와 영희가 사귀게 된 것’이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고, 누군가가 이들의 대화를 기록한다면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B의 경우가 가장 객관적으로 서술될 수는 있겠다. 먼저, 엠티의 마지막 날을 특정하여 “그들의 사랑은 2021년 2월 9일부터 시작되었다.”라고 쓸 수 있다. 그렇다면 C는 입학식을 기준으로 하여 “철수와 영희는 2019년 3월 2일 운명적으로 만났다”가 될 것이며, E의 말은 “철수와 영희의 만남은 그들이 대학을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라고 전해질지도 모른다. 반면 F의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는 “철수와 영희의 사랑은,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운명처럼 정해져 있었다”라고 미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개인의 역사도 이리 ‘왜곡(?)’되기 십상인데, 하물며 몇천 년 몇백 년 전의 역사는 어떨까. 역사만큼 신화화되기 좋은 소재는 없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에 백 퍼센트의 ‘사실’이란 그 누구도 보장할 수 없으며, 하물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도 교육에 따라 같은 사건을 두고 다르게 배운다. 나와 우리 아이가 배우는 한국사 용어가 크게 달라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이다. 애석하지만 역사 수업이 순도 백 퍼센트의 진실일 것이라 기대하는 건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다. 만약 ‘반드시, 분명히 그러하다’라고 주장하는 역사 선생이 있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이거나 배움이 짧은 것이다.  

   

얼마 전 tvN의 프로그램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가 큰 논란이 된 적이 있다. 2회 이집트 편이 역사 왜곡의 비판을 받았고 그 프로그램에 자문해주었던 교수들마저 전체 내용을 외면해버린 것이다. 설민석 강사는 이내 부족함을 인정하고 앞으로 더 잘할 것을 약속했지만, 연이어 석사논문 표절 기사가 터지면서 완전히 방송을 하차하게 되었다.     


설민석 씨의 행보는 원래 좀 위태위태했다. 평소에도 ‘팩트, 팩트’라고 외치는 부분이 늘 위험해 보였다. 아무리 지식 소매상이 대세인 시대라지만, 애초에 세계사를 단 한 명의 선생이 담당한다는 것부터가 무리한 시도였다. 옆에서 도와주는 별도의 연구팀이 있다고 해도, 결국 어디서든 오류가 터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난 4회 방송에 대해 서울대학교 박흥식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진정한 문제는 강사가 아니라 그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진인지도 모른다. 제작진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의 생각이 역사에 대한 일반적 오해를 대변한다. 역사에 반드시 ‘진실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잘못된 인식이 오히려 프로그램의 신뢰도를 추락시켰다. 다시 말하지만 역사는 절대불변의 고정된 진리가 아니다. 어떤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추정이 존재할 뿐, 시대를 거듭하며 기록하는 자에 따라, 전달해주는 이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얼굴로 존재할 수 있다.   

  

건축사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동굴 아래 모닥불을 피워 정주공간을 누리기 시작한 것에서부터 건축을 가늠하자면, 건축의 역사는 만년이 훨씬 넘는다. 그리고 천년, 백년 단위로 발견되는 건축의 역사를 어떻게 무 자르듯 정확하게 재단하고 정의할 수 있을까. 그런 기대를 가졌다면 애초에 역사를 만만하게 본 것이다. 그러니 나는 학생들에게 부디 많이 공부하라고 말한다. 아니 같이 ‘공부하자’고 말한다. “A일 수도 B일 수도 있다”라는 말이 야속하게 들린다면 반드시 ‘철수와 영희’를 생각해 볼 것. 그 둘 사이에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당사자들만 아는 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