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하다 보면 ‘제일 좋아하는 건축물’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지금까지 답사한 곳 중 가장 좋았던 곳이나, 추천하는 건축물을 말해 달라고 한다. 나는 항상 두 가지 답변을 준비해놓고 있다. ‘지금까지 가 본 곳 중에 가장 좋았던 건축’은 루이스 칸의 ‘솔크 연구소’, 그 반대의 느낌을 받은 것은 안도 타다오의 ‘물의 절’이었다고 대답한다. 흥미롭게도 이 두 곳 모두 굉장한 우여곡절 끝에 찾아갔었고, 추운 1월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동경하던 건축이 실망의 덩어리로 다가올 수 있다는 생각은 스물 세 살에 떠난 일본 건축기행에서의 경험이다. 처음으로 혼자 한 배낭여행이기도 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도쿄의 제일 큰 서점으로 가 TOTO 출판사의 <建築MAP> 시리즈 도쿄, 교토·오사카 편을 샀다.(인터넷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내 손에는 PC통신 건축동호회에서 수집해서 정리해온 A4 몇 장과 잡지에서 베껴 적은 주소가 전부였다.)
도쿄기행을 마치고 교토를 내려왔다. 간사이 권역으로 들어온 목적은 단연코 안도 타다오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였다. 1990년대 중반 안도 타다오는 우리나라 건축학과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외국 건축가였고 나 역시 그랬다. 그해 일본 기행의 목적은 안도 타다오 탐방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나는 특히 그의 ‘물의 절’에 꼭 가 보고 싶었다. 사찰의 본래 이름은 ‘혼푸쿠지 미즈미도(本福寺水御堂)’이지만, 지붕을 덮은 연꽃 연못의 잔잔한 이미지를 강조하여 <물의 절>이라는 작품명으로 통용된다.
그런데 <신건축>에 실린 건물 주소 하나만 들고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주소에 ‘효고현’이라고 적혀있으니 무조건 효고역에 내려서 물어보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곳은 효고현, 하고도 ‘아와지시마’. 선편도 자주 들어오지 않는 작은 섬이었다. 물어물어 배를 타고 또 택시를 타고 겨우 답사지에 도착했다. 저 멀리 밝은 회색의 노출 콘크리트가 눈에 들어왔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사찰 앞에 도착했을 때의 실망감을 잊을 수 없다. 작품집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연꽃 연못 지붕은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흙탕물 범벅의 웅덩이뿐이었다. ‘물의 절’은 지상에서 지하에 이르는 간결한 진입로와 그 위를 덮는 연못 지붕이 곧 아이덴티티인 건물이다. 얕은 수공간으로 만들어진 지붕이 밝은 햇살 아래 반짝이고 있어야 했고 연분홍색 연꽃이 탐스럽게 피어있기를 바랬건만, 상상했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다. 연꽃은 모두 시들어 마른 잎사귀와 가지만 남았고, 연못은 온통 흙탕물이었다. 법당에 이르는 진입로를 내려가면 펼쳐질 것이라 기대했던 ‘붉은 빛이 확 들어오는 본당’의 공간은 없었다. 불상을 모신 주불전 창문은 그만큼의 광량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모든 것은 사진에만 존재했다.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뉴욕에서 공부하던 시절, 나는 짧은 겨울방학을 이용해 서쪽으로 건축기행을 떠났다. 첫 번째 목적지였던 시카고를 지나 로스 앤젤레스를 거쳐 샌디에고로 갔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루이스 칸에 집중한 여행이었다. 라호야 역에서 솔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네다섯 시 경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은 공식적인 건물 투어 프로그램도 없었고(솔크는 루이스 칸의 워낙 유명한 작품인지라 센터에서 정규 건축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모두가 퇴근한 토요일 늦은 오후의 연구소는 너무도 고요했다.
그곳은 정말 상상했던 이미지 그대로였다. 어쩌면 그 이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에서 읽었던 루이스 칸의 설명이 마치 내레이션처럼 울려퍼지는 듯했다. ‘트레버틴 대리석은 원목의 티크가 빛바래져 갈수록 우아한 아름다움을 발할 것’이라는 그의 말은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바다를 향해 뻗은 광장의 물줄기는 정말 태평양을 향해 날아가는 듯 반짝거렸다. 조금 돌아보고 있자니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했다. 해변과 바로 맞닿아 있는 곳이라 서쪽 수평선 너머로 지는 햇살이 아주 강렬하게 광장을 비추었다. 바람은차가웠지만 햇빛은 강했고, 몸은 추웠지만 마음은 따뜻했던 경험이었다.
지금껏 다녀본 곳 중 좋아하는 건축물을 하나만 꼽는다는 것은 너무 어렵다. 대부분은 학문적 가치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므로, 모든 답사는 감동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가 학생들에게 이 두 건물을 항상 짝지어 들려주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장식 없이 당당할 수 있는 건축을 하라는 것. 건축은 종종 사진과 글로 포장되기 때문이다. 우직하게 공간을 만들고사람과 행위로 채워가는 것이 건축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건축은 생각만큼 간단히 지어지지도 또 자연스럽게 작동하지도 않는다. 쉽게는 건축을 예술이라 말하지만, 동시에 ‘효율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점에서 건축은 예술이 아니다. 현대 건축은 이미 고고한 예술의 세계를 벗어났으며 오히려 상업의 영역에 가깝다. 그 상업성을 뒷받침하는 것이 사진과 글인 것이다. 건축가는 건축잡지에 자신의 작품을 실으며 가장 좋은 날씨, 가장 좋은 색감, 형이상학적인 글들로 이미지를 포장한다.
물론 이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박제된 이미지와 실제의 그것이 철저히 다른 경우라면 과연 진실된 건축이라 할 수 있을까. 대중에게 전달되는 건축의 이미지는 쉽게 조작되기 마련이라지만, 별다른 화장이 없어도 언제나 당당할 수 있는 건축의 자신감을 따라갈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민낯이 부끄럽지 않은 건축’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어느 순간, 어느 계절, 어느 날 찾아가도 언제나 꾸밈이 없는 건축을 만날 수 있다면, 잊어버리지 않도록 꼭 마음에 품어두라고 당부한다. 설계를 그만두고 연구자의 길을 택한 지금도, 나는 가끔 솔크의 감동을 떠올린다.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은 아니다. 민낯에 당당할 수 있는 학문을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낡은 도면과 두꺼운 책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