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색 03.
그 신기한 장면은 2008년 이른 봄, 어느 날 찾아왔다. 미국에서의 유학 마지막 학기, 우리 학교는 졸업 마지막 학기에 건축기행을 보내주는데, 제한된 돈 안에서 나라와 장소는 스튜디오별로 선택할 수 있다. 왕복 비행기 표와 숙소 정도를 끊을 수 있는 돈이다. 미국 내에서 머문다면 그 돈만으로 충분하지만, 보통은 사비를 좀 더 보태서 해외로 간다. 하이난 섬을 사이트로 설계하던 우리 스튜디오는 운좋게도 홍콩 출신 어느 디벨로퍼의 지원을 받아 그해 중국을 두 번 다녀올 수 있었다.
2008년 중국의 봄은 그야말로 올림픽 전야. 수도는 가는 곳마다 공사 중이었다. 메인 스타디움과 베이징 워터 큐브는 올림픽에 직접 쓰일 건물들이니 당연히 주목받는 공사였지만, 당시 건축계의 주인공은 준공을 목전에 둔 CCTV 헤드쿼터였다. 렘콜하스가 OMA와 다시 합작했던 설계로 2002년 발표 당시부터 인기가 뜨거웠던 계획안이다. CCTV 공사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3월의 악명높은 중국 황사가 온통 시야를 황토빛으로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CCTV의 웅장한 골조와 타워크레인의 삐죽삐죽한 광경은 마치 구름을 뚫고 올라온 듯 위풍당당했다. 또 하나 잊혀지지 않는 건 그 아래에서 바삐 움직이는 인부들의 모습이었다. 안전모는 갖추었으나 안전화까지는 마련하지 못한 그들의 모습이 마치 21세기 건축물을 만드는 20세기의 노력처럼 보였다. 서울의 건축과 도시가 88올림픽을 치르면서 한층 발전했던 것처럼, 2008년의 베이징도 그렇게 올림픽이라는 사명하에 탈피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느꼈다는 ‘신기한 광경’이 그러한 올림픽 이펙트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이면의 이야기이다. 랜드마크 선발대회라도 뽑는 듯한 요란한 디자인의 건축물들을 차례로 답사한 후 우리는 만리장성으로 이동했다. 마지막 일정이었다. 중국인 친구의 말을 듣자면 평생 돈을 모아 만리장성 한번 구경오는 게 소원인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그때가 무슨 명절 같은 기간이어서 유독 관광객이 많은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관광객에게 개방된 만리장성은 능선을 따라 굽이굽이 가파른 성벽을 따라 돌아오는 코스이다. 돌바닥과 손잡이는 관광 인파에 달아 온통 반질반질했다. 천년의 기념비이건만 별다른 감흥도 없었다. 세간에 알려진 만리장성의 모습은 모두 관광단지로 보수된 장소된 것이니, 역사적인 건축물이라고는 하나 옛 것의 권위는 없었다.
만리장성을 나와 택시를 타고 근처의 숙소로 갔다. 그날 우리가 머물 곳은 ‘코뮨 바이 더 그레이트 월 캠핀스키(Commune by the Great wall Kempinski)’. 원래는 ‘장성주택단지’라는 예술가 주택단지로 계획된 곳이었는데, 준공 이후 호텔 체인업체인 캠핀스키가 호텔 위탁 운영을 맡았다. 건축가 승효상 선생이 리셉션 하우스를 설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건축가 특유의 적벽돌 색깔 코르텐강 건물, 그곳에서 체크인을 마쳤다. 우리가 배정받았던 독채는 쿠마 켄고의 뱀부 하우스였다.
각자의 호들갑스러운 방 배정을 마치고 모두 산책로에 모였다. 중국인 친구가 말했다. ‘오리지널 만리장성’을 보러 가지 않겠냐고. 이곳의 산책로를 따라가면 아직 보수되지 않은 만리장성을 볼 수 있다는 것. 사실 ‘장성(長城)’의 반 이상은 소실 직전에 있다고 들었다. 그의 말을 따라 꼬불꼬불한 산길을 걸어갔다. 곧 거의 다 허물어져 가는 바윗길이 나왔는데, 한 눈에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허름한 만리장성을 만났다. 공교롭게도 해가 막 지려던 무렵이라 그 황량함도 배가 되었던 것 같다. 석양을 등지고 힘없이 앉은 노인처럼 보였다. 저 건너편까지 걸어가 볼 수도 있는데, 한발 내디뎠다간 꼭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우리 스튜디오에서 가장 어렸던 두 녀석은 벌써 성벽을 따라 저 멀리까지 가버렸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거의 한 시간을 그렇게 앉아있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첫인상은 분명 주저앉은 노인의 모습이었는데, 한참을 마주하고 앉아있다 보니 점점 화장기를 닦아낸 시골 소년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앞서 우리가 다녀온 만리장성이 관광지로서 한껏 멋을 낸 얼굴이었다면, 여기는 아직 손대지 않은 순수함이 수줍게 빛을 발했다.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Untouched...”
아무것도 손대지 않은 매력의 짜릿함을 도저히 어떻게 형언할 수 없었다.
‘시간을 이기는 힘은 없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때로는 도시 청년의 영민함이 세월을 오롯이 이겨낸 어느 촌로(村老)의 지혜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그해 봄 북경에서 벌어지고 있던 화려한 현대건축의 향연도 나를 그토록 숙연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나의 평범한 카메라와 손재주로 그날의 그 장면과 느낌을 온전히 카메라에 담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