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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그레이스콘 Mar 16. 2021

소설을 읽어야겠다.

#마흔여섯 돌아보기 04.

소설을 잘 읽지 않았다. 어렸을 때 읽었던 전래동화집 이후로 내 독서목록에 ‘이야기’류는 좀처럼 없었다. 이십 대에는 잠깐 시를 즐겨 읽기도 했지만, 그건 순전히 국문과 친구 때문이었다. ‘일간 땡땡땡’처럼 한 구절씩 베껴 적은 시를 매일 아침 도서관 내 자리로 배달해줬다. 이메일도 문자도 없던 시절에, 손글씨 편지로 깨알같이 써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갔다. 넘치는 문학적 끼를 주체할 수 없었던 친구였다. 우리 둘 다 뒤늦은 사춘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지금까지 나의 독서 범위는 철저히 지식서 위주에 머물러왔다.      


나는 글을 그림처럼 상상하는 것이 항상 어렵다. 수필을 어려워했던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글로 묘사된 인물의 표정과 행동, 공간의 모습과 분위기가 좀처럼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주인공은 이러이러하다’라는 설정이 머릿속에 자리 잡아야 그다음 행보가 이해될 것인데, 그게 도무지 어려운 거다. 그래서 이 친구는 얼굴이 성격이 어떠하다는 것인지, 얼굴이 못생겼다는 건지 예쁘다는 건지, 등장 무대는 어디가 동인지 서인지, 읽다가 까먹기 일쑤였다. 한참을 읽다 보면 앞에서 한 얘기를 잊어버리거나, 앞에서부터 차곡차곡 읽어야지 다짐하면 이내 지루해진다. 그러고 보니 굳이 소설 한 권을 끝까지 독파하겠다고 노력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해리포터도 몇 번을 시도만 하다 결국 덮었다.      


사실 권수로만 치자면 나는 책을 꽤 읽고 사는 편이다. 그러나 하는 일이 그렇다 보니 읽는 책도 전공서와 학술서가 대부분이다. ‘객관적 사실을 더욱 객관적으로 나열해야 하는’ 그야말로 딱딱하기 그지없는 문구들의 조합이다. 내가 주로 쓰는 ‘글’은 객관성을 전제로 지식을 ‘논문’의 구성에 맞추는 것이라 언제나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다. 내 글에 감정을 얹는다는 것은, 그럴 틈도 없거니와 그래서도 안 된다는 방어가 늘 앞섰다. 절대 감성적으로 대해서는 안 될 ‘업무 대상’과도 같다. 나에게 글이란 긴장을 풀어서도, 경계를 늦추어서도, 그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되는 비정한 타인처럼 존재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몽글몽글 떠오르는 마음의 덩어리를, 어떻게든 무엇이든 적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다. 하지만 좀처럼 토해지지 않았다. 내 생각을 솔직히 써보겠다고 다가서면 ‘내가 이럴 시간이 있나’라는 두려움이 항상 스스로를 멈춰 세운다. 아이를 돌보며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어중간함 때문일 수도 있다. 아이와 일 사이에 ‘나’를 끼워 넣는 일을 사치로 치부하는 마음이 언제나 주변을 맴돈다. 억울하지만 늘 그렇다. 어쨌든 이러저러한 핑계는 차치하고 일단 한번 써보겠다 마음먹은 것이 벌써 여러 번인데, 에고 이거 어렵다.      


글쓰기가 자아성찰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건, 작년 연말에 학술서 하나를 발간하고 난 뒤였다. 공저는 내보았으나 단독 출판은 처음이었다. 각주 정보까지 정확해야 하는 학술서이다 보니 누구에게 교정을 통째로 맡길 수도 없었고, 교정기에 앉힌 후에도 스물한 번을 들여다보았다. 편집자가 오타를 봐주긴 하였으나 최종 책임은 저자에게 있었다. 책에 나오는 인물이나 이론의 한자, 스펠링 하나라도 틀리면 망신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등골이 서늘했다. 

     

신기한 것은 교정이 열일곱 번쯤 오갔을 때야 나의 글쓰기 버릇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가 극단적인 부사들을 많이 쓴다는 점. 오직, 오로지, 오히려, 단지, 지극히, 유독, 반드시 등. 그러고 보니 평소 말투도 그렇다. 속마음을 표정에 숨기지 못하고, 싫어하는 것을 괜찮다고 말하지 못하는 내 성격, 삐죽하고 모난 성격이 글에도 묻어난다는 사실에 소스라쳤다. 정보 전달이라는 방패 뒤에 나를 잘 감추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너무 적나라해서 무서웠다. 어떤 식의 글쓰기이든 사방팔방 나를 복사하여 비추는 거울상자 같았다. 이런 식의 성찰이라면 차라리 제대로 마음먹고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글쓰기로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이 글쓰기 챌린지이다. 부담없이 주절거리고 싶었다. 자판을 두드리고 있자니 아이가 와서 뭘 그리 쓰냐고 묻는다. 아이 눈에도 익숙해져 버린 이제까지의 논문 포맷이 아닌 게다. 성급히 노트북을 덮었다. 아직은 이 글쓰기가 한가한 여가활동처럼 느껴져 마음이 편치 않은 건 사실이다. 소심증. 하루 아침에 나를 바꾸기는 힘들다.      


점차... 내가 주로 읽는 책들에도 변화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절대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것, 글을 읽고 장면을 상상하는 연습을 해보아야겠다. 활자로 인쇄된 그림을 읽어내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면 내 마음과 생각도 언젠가는 그림처럼 그릴 수 있겠지. 그렇다면 나는 더 자유로워질 수 있겠지. 이렇게 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 좋겠건만, 어쨌든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이제는 소설을 좀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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