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얼그레이스콘 Mar 16. 2021

米山知 _ 요네야마 토모

#마흔여섯 돌아보기 03.

토모씨는 내 일본 친구다.  나는 그녀를 '토모상'이라고 부르고, 그녀는 나를 '연정씨'라고 부른다. 나보다 한 살이 많고 둘 다 외동아들을 키운다. 아이들 나이 터울도 두 살이라 어울리기 딱 좋다.      


지금의 동네로 이사오기 전, 우리는 '언어교환친구'로 만났다. 원래 하고 있었던 일본어 스터디 모임이 선생님 사정으로 중단되었을 때 누군가 소개해주었다. 3년 근무기한으로 남편을 따라 한국에 온 지 1년쯤 되었다는 것과 한국어가 좀처럼 늘지않아 대화할 친구가 필요하다고 전해들었다. 나도 일본어 연습상대가 필요했었기에 반가운 의뢰가 아닐 수 없었다. 서로의 언어로 반반씩 대화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바빠서 한 달만 계획했었으나, 토모상이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계속 이어졌다.     


만나는 곳은 서로 공평하게 두 사람 집에서 중간 거리에 있는 카페. 만나는 시간은 오전10시30분. 각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나와 1시간 반을 이야기하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에 좋은 시간대였다. 토모상과 만나는 날엔 나도 12시반쯤 연구실에 나갔다. 풀타임 박사였기에 약간 눈치가 보였지만 다행히 교수님께 한번도 들키지 않았다. 아이키우는 엄마는 아이 상태에 따라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하루살이 인생인지라,  헤어지면서 매번 다음 요일을 확정하진 못했다. 그래도 언제 끊어질지도 모르는 스터디의 인연을 가늘고 길게 끌어갔다.     


1년 반을 격주에 한번씩 만났으면 꽤 자주 만난 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끝까지 서로 다메구치(ダメ口)를 쓰지 못했다. 일본어의 반말은 우리말처럼 나이와 연배에 따른 것이 아니라 친밀감의 정도에 적용되는 것임에도, 이상하게 서로간에 항상 존칭을 썼다. 친하지 않아서가 결코 아닌데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리 친해도 한 살이라도 많은 건 많은 것이라, 내 정서로는 반말패치가 도무지 탑재되지 않았다. 그녀도 나를 선생님처럼 대했다.     


우리의 수업 원칙은 30분 한국어, 30분은 일어, 나머지는 적당히 대화하는 것이었으나, 대부분 일본말이 더 많았다. 대화 주제는 지극히 사소한 것이었지만 언제나 재미있었다. 내게는 지극히 당연한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 것은 언어교환을 애초 시작할 때엔 예상치 못했던 신선함이었다. 예를 들면, 한국마트에는 마늘을 왜 그렇게 대량으로 파는지, 계란노른자는 왜 선명한 노란색이 아닌지(그러고보니 일본에서 파는 달걀의 노른자는 거의 주황색에 가까울 정도의 노란색이다), 방울토마토는 왜 '방울'이라고 부르는지, 마트에 파는 상추는 왜 포기로 팔지않고 잎사귀 듣은 것을 담아 파는지 등. 한번도 이상하다 생각해본 적이 없던 일이었다. '방울'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예쁜 작명인지도 새삼 깨달았다.     


우리의 주제는 주로 양국의 문화에 관한 것이었지만 항상 마무리는 '육아'로 끝났다. 타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니 나보다 더 힘들었을텐데, 그녀는 오히려 나의 만학라이프를 칭찬했다. 반대로 나는 그녀의 적극적인 성격이 부러웠다. 아이와 단둘이 말레이시아 한달살기를 하고 오기도 하고 북유럽 탐방을 떠나기도 했다. 육아와 내 공부 때문에 항상 마음의 여유가 없던 나는 토모상의 긍정적 성격이 늘 부러웠다. 나에게는 마치 건너편 전철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남편을 따라왔다고는 하지만 본업은 원래 공무원인지라, 휴직을 내고 지내는 한국에서의 3년 동안 철저하게 재충전의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내 인생도 그렇게 온앤오프가 분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재원 기간이 끝나 그녀와 가족은 일본으로 돌아갔고 벌써 4년이 지났다. 그동안 내가 도쿄에 한번, 그녀가 서울에 두번 왔었다. 친언니와도 일년에 한두번 볼까말까한 나로서는 그 정도면 상당한 절친 행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린 서로 말을 놓지 못했다.     


그 사이 나는 박사논문을 마쳤다. 공무원인 그녀는 보직을 바꾸었다고 했다. 작년 겨울 내 책이 나와, 한 권을 도쿄로 보내주었다. 두꺼운 학술서라 별 재미는 없을 테지만 그래도 제일 먼저 주고  싶었다고 편지를 썼다.  그녀는 답례로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와 만화책을 보내주었다. 박스안에는 각종 레토르트, 그리고 어깨 찜질팩도 들어있었다. "연정씨는 항상 책상 업무가 많고 밥차릴 시간도 부족하니까요"라는 메모를 덧붙였다. 참 따뜻한 문장이었다.     


어쩌면 그녀에게 내가 좀처럼 말을 놓지못하는 것이 우리가 각자 '엄마'라는 자격으로 만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엄마들의 친목도모는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전제한다는 암묵적 룰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간격을 조금 좁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그녀의 旧姓(결혼 전 본래 성)도 알지 못한다. 다음 편지에는 꼭 물어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집의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