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얼그레이스콘 Mar 16. 2021

이율배반적 크로플

#마흔여섯 돌아보기 05.

“이게 그렇게 심각할 일은 아니잖아.” 참다못한 남편이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열 살짜리 아들은 이미 날 외면한 채 열심히 먹는 것에 집중했다. ‘엄마는 못 말린다’는 익숙한 표정이 나왔다. 그만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나는 이율배반적 크로플에 대해 30분째 열변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크로플. 크로아상과 와플의 합성어이다. 크로아상 생지를 와플팬에 구운 것으로 요즘 꽤 유행한다. 코로나 여파에 따른 ‘홈카페 열풍’의 일환이랄까. 유튜브에서는 이른바 ‘와플 빼고 다 눌러 먹는 와플팬’ 시리즈라는 걸 찾아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축에 드는 메뉴이기도 하다. 얼마 전까지 집근처 백화점 식품 코너에서 꽤 인기리에 팔았다. 여느 때처럼 아이의 놀이터 보초를 서는 동안 동네 엄마들과 나눠 먹기도 했다. 한 엄마가 줄 서서 사 왔다는 그것에 모두 감탄하며 먹었다. 그만큼 버터가 들어갔다면 풍미가 없을 수가 없다. 갓 구웠을 때 먹을 수 있었다면 바삭함이 더 좋았으리라.    

 

그런데 나의 몹쓸 사고가 또 방사형으로 뻗친다. 그저 디저트는 디저트일 뿐인 것에 대고, 혼자 ‘너는 이율배반적이야’하고 눈을 흘겼다. 다행히 입 밖으로 소리 내진 않았다. 하지만 이 존재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결을 살려 구워야 하는 크로아상과 팬으로 강제적 무늬를 만드는 와플은 본래 반죽의 목적부터가 다른 것이다. 각종 섬세한 과정을 기해야 하는 크로아상의 입장에서는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설사 공장제 대량 생산된 냉동 생지라 해도 너무한 대접이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크로아상은 돌돌 말린 층층의 겹이 특징인 빵이다. 반죽 사이사이에 버터를 넣어 만들므로 바삭함은 기본이다. 밀가루, 이스트, 달걀, 우유 등을 넣어 살짝 치댄 반죽을 ‘데트랑프’라고 한다. 사이에 넣을 버터는 별도의 커다란 판으로 만들어 데트랑프 위에 올리고 이를 감싸듯 접는다. 처음에는 반죽을 길게 밀어 세 번을 접고, 그다음 휴지 후 또 밀어서 세 번, 같은 과정을 다시 반복한다. 층 사이사이 들어간 버터가 녹지 않게 중간에 냉장고에서 휴지시킨다. 냉장고에 들어갔다가 나오니 조금 딱딱해져, 밀대로 다시 밀기에 그리 순탄한 과정은 아니다. 힘도 꽤 들어간다.


이렇게 해서 3, 9, 27, 81의 순으로 겹이 생기고, 최종적으로 긴 삼각형으로 자른 생지를 돌돌 말아 초승달 모양을 성형한다. ‘발효’를 전제하는 이스트 반죽이므로 기본적으로 습기와 온도, 치대기의 정도에 민감한 성질의 빵이 아닐 수 없다. 반죽을 너무 오래해서도 안된다.     

치밀하게 들어간 버터는 오븐에서 구워지면서 풍미와 수분을 발생시켜 층을 만든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크로아상은 단순히 버터가 사이에 발려 있어서 여러 겹이 생겨난 것이 아니다. 버터 속의 수분이 증발하면서 그 힘으로 반죽을 밀어 올리는 것이다.


크로아상의 성패 여부는 ‘내상’에서 결정되는데, 빵을 반으로 갈라 단면을 보았을 때 소용돌이 모양의 겹이 적당한 크기의 구멍 간격으로 잘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애초에 데트랑프 반죽이 잘못 되었거나 버터를 미는 과정에 실수가 있었다면 층이 한쪽으로 뭉쳐버린다. 간혹 2차 발효에서 자칫 시간 조절을 잘못하면 초승달 모양이 일그러지기도 하니, 웬만하면 돈 주고 사 먹는 편이 낫다.   

   

반면 와플은 간단하다. 팽창제로써 이스트가 아닌 베이킹파우더와 베이킹소다가 들어간다. 흔히 ‘빵’이라 통칭하는 베이커리의 세계에서 엄밀히 말해 ‘제빵’이 아니라 ‘제과’에 속한다. 베이킹파우더 반죽은 레시피에 충실하면 실패하는 법이 없어 비교적 쉽다. 반면 이스트 반죽은 난이도의 출발부터 다르다. 이스트의 용량과 계절, 온도에 따른 수분 투입의 차이, 치대기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므로 좀처럼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호떡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것을 같은 기계로 눌러버린다니! 모든 반죽을 격자로 눌러버리는 와플팬과 스스로 부풀어 내외부의 결을 살려내야 하는 크로아상의 생지는 본디 같은 목적으로 만날 수가 없는 게다. 서로의 명제가 다를 진데 이 둘이 만난다니 어찌 이율배반적이 아닐까.    

 

남편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고만하라는 눈치다. 이러다가는 퇴근길에 가끔 사오는 디저트도 다시는 얻어먹지 못하겠다. 빵에 무슨 전문가라고 이렇게 설이 길었나. 다만 나는 베이킹을 글로 배웠을 뿐이고, 늘 도전하지만 실패하는 크로아상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사실은 와플팬을 포기할 이유를 애써 찾는 중이라 고백한다. 슬금슬금 담았다 뺐다를 반복했던 장바구니를 비우기 위해, 쓸데없는 분석을 총동원 해보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을 읽어야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