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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그레이스콘 Mar 16. 2021

코마바토다이마에_駒場東大前

#마흔여섯 돌아보기 06.

시부야(渋谷)에서 전철로 두 정거장을 가면, ‘코마바토다이마에(駒場東大前)’라는 역이 나온다. 코마바(駒場)가 지역명이고, 토다이(東大)는 동경대학교, 그리고 ‘~앞’을 뜻하는 마에(前)가 합쳐진 역이름이다. 우리말로 치면 ‘신림동서울대앞’쯤 되겠다. 그렇다고 진짜 ‘서울대입구역’처럼 터무니없이 학교와 동떨어져 있진 않다. 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동경대학교 코마바 캠퍼스가 있다. 동경대의 교양학부가 있는 곳이라 붙여진 역명이다. 줄여서 ‘코마토’라고도 부른다.     


나는 이곳의 ‘코마바유학생회관(駒場留学生会館)’라는 곳에 살았다. 스물일곱 가을부터 스물여덟 여름이 끝날 때까지 딱 1년이었다. 일본국제교육협회(AIEJ)에서 설립한 기숙사로, 주로 동경대와 동경공업대학(東京工業大学)의 유학생들이 생활한다. 언젠가 토모상에게 이 시절에 대해 얘기했던 적이 있는데,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이라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어렸고, 밝았고, 인생에서 가장 날씬했다.  

   

나는 동경공업대학의 연구생으로 머물고 있었다. 서울에서 다니던 석사를 휴학하고 AIEJ의 단기유학지원사업에 선발되어 오게 된 경우였다. 연구생은 일본 대학의 독특한 제도인데, 학위 취득과 관계없이 대학원 수업을 듣는 과정을 말한다. 수업을 청강할 수 있고 도서관이나 어학당 같은 학교 인프라를 모두 이용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연구실에 소속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석박사 입학 이전에 특정 연구실을 체험해보고자 지원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수업료와 항공료 외에 매달 생활비로 8만엔을 지원받았는데, 넉넉하진 않지만 턱없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도시락 싸다니며 주중 생활비를 조금 아끼면 주말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나는 매 주말 홀로 카메라를 들고 도쿄의 건축물 곳곳을 답사했다. 당시 디지털카메라가 그리 좋은 편이 못돼서 해상도가 별로인 점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정말 다양했다. 거의 50개국의 학생들이 모여 살았는데, 한국 유학생이 단연 많았다. 내가 살았던 1호관은 주로 아시아계 학생들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한국 학생끼리도 부류가 나뉘어있었던 점이다. 일본 문부성 장학금, 한국 국비 유학생, 그리고 나처럼 특정 재단의 장학금을 받는 그룹으로 나뉘어있었다. 같은 한국 학생이어도 소속이 다르면 거의 말을 섞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있던 그 시절만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해외 나오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 기숙사에서 한국인들끼리 뭉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덕분에 일본어를 더 많이 배우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내게 이득이었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워낙 다양한 나라의 학생들이 모여 살았던지라 에피소드도 많았다. 방은 모두 1인실이었지만 부엌을 공용으로 사용했다. 관리인 아저씨가 부엌을 항상 깨끗하게 청소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아침이면 완전히 초토화되어 있었다. 한바탕 전쟁이 휩쓸고 간 것 같았다. 기숙사 부엌에서는 매일 저녁, 거의 세계 음식의 각축전이 펼쳐졌다. 단연코 1등은 중국이었는데, 그중 동경대 물리학과 박사과정이라던 중국인 ‘아줌마’(남편과 아이를 중국에 두고 유학 온 분이었다)가 제일 유명했다. 매일 저녁 만두를 쟁반 한가득 빚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만두를 다음날 하루 동안 다 먹고 저녁에 다시 빚는 것이다. 아침에는 만두를 튀겨 점심 도시락까지 싸고, 저녁에는 주로 탕으로 먹는 것 같았다. 만두를 튀기는 소리가 어찌나 요란했던지, 부엌에서 꽤 떨어진 내방까지도 그녀의 요리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취이......!!!”하는 튀김 소리가 거의 매일 아침의 알람이었다.      


인도네시아 출신의 ‘야티’도 잊을 수 없다. 스펠링을 물어본 적이 없어 그게 본래 이름인지는 모르겠다. 인도네시아 국비 장학생으로 온 그녀는 꽤 수재였는데, 어눌한 일본어 때문에 항상 손해를 봤다. 그녀에게 더 큰 문제는 ‘난생 처음 겪어보는 겨울’이었다. 본국에서 가지고 온 옷을 레이어드하며 버티기에는 더이상 불가능한 날씨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행히 학교 바자회에서 ‘솜 잠바’ 한 벌을 건져 그것으로 겨울을 나게 되었다. 학교 바자회는 유학생을 위해 대학 본부에서 열어주었던 것으로, 말이 바자회이지 기부품을 거의 그냥 받아가는 것이었다. 먼저 집으면 임자! 나는 거기서 획득한 그릇 세트를 한동안 잘 사용했다. 기숙사를 나오면서 야티에게 통째로 넘겨주었는데, “도상, 아리가또!” 하던 해맑은 웃음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숙사 방에는 화장실과 욕실이 유닛베스로 달려있었다. 화장실을 빼면 채 두 평도 되지 않았지만, 책상과 침대, 작은 냉장고도 있었다. 전기와 수도세는 선불제여서, 미리 충전하면 한번 쓸 때마다 차감되는 방식이었다. 각 방에는 계량기 대신 요금 미터기가 있었다. 샤워 한번 하고 나오면 100엔, 에어컨 한 시간 정도 켜면 200엔씩 내려가는데, 이게 은근히 스트레스인지라 그 위에 포스트잇을 붙여 가려놓기도 했다. 당시엔 꽤 심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귀여운 압박감이었다.     


철길에 얽힌 사연도 있다. 기숙사 대지는 철길과 동네 주택가의 골목길에 둘러싸여, 하늘에서 보면 큰 삼각형 모양이었다. 마침 이 무렵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치즈 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チーズケーキのような形をした僕の貧乏)>을 읽고 있었는데, 내가 사는 곳이 하루키가 말한 ‘삼각지대’의 대형 버전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가 살았던 집처럼 완전히 철길로 둘러싸였던 것은 아니었지만, 열차가 지나가는 소리는 확실히 시끄러웠다. 처음에는 지독히도 적응하기 어려웠던 그 소음이 나중에는 향수처럼 그리워졌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나는 결혼 후 한동안 이촌동 철길 옆에 살았는데, 하루키의 ‘가난’과 같은 일상은 아니었지만 그 소음을 내심 즐겼다. 남편은 시끄럽다고 했지만, 건널목에 기차가 들어올 때 울려대는 경고음이 나에게만 낭만적으로 들렸던 것은 모두 그때의 기억 덕분이다.   

  

‘코마토’는 꽤 위치가 좋은 편이었다. 걸어갈 수 있는 정도 거리에 ‘시모키타자와(下北沢)’가 있었고 ‘시부야(渋谷)’와도 가까웠다. 시모키타자와는 홍대 입구와 비슷한 분위기로, 언더그라운드 소극장이나 마니아층을 대상으로 하는 독특한 점포들, 그리고 세계 다양한 식재료를 파는 식료품 가게가 유명한 동네이다. 나는 그곳에 종종 장을 보러 가곤 했다. 특히 4월은 매일매일 유채꽃 잔치였다. 좁은 골목길을 걸어 나오면 철로 옆으로 노란 유채꽃이 선로와 같은 방향으로 만개해, 장 보러 가는 길이 꼭 소풍날 같았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기숙사에서 여섯 정거장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매일 아침 등교할 때면 시부야까지 두 정거장을 타고 나와서 다시 지하철로 갈아탔다. 시부야역에는 환승 지점에 상주하는 노숙자 아저씨가 한 명 있었는데, 긴 머리가 곱슬하고 눈이 부리부리한 사람이었다. 달마를 연상키는 기이한 외모였다. 환승역의 각 갈래로 갈라지는 길의 교차점에 정승처럼 서서 아침마다 바쁜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곤 했다. 내가 도쿄를 떠나던 날도 변함이 없었는데, 그날은 나도 멀리서 손을 흔들어주고 싶었다. 혹여 눈 마주칠까 움찔하며 아주 소심하게, 작별 인사를 했다. 안녕, 시부야. 안녕, 코마바. 안녕...도쿄.


도쿄에서의 일을 글로 적어둔 적이 없어 이 기억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세월이 지나 약간 핑크빛으로 바뀐 것일 수도 있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지만, 뒤늦게 시작하는 기록은 그 반대를 만들어낼 수도 있겠다. 때때로 힘들었던 순간은 쏙 빼고 좋은 추억만 적어 놓는다. 시부야의 그 아저씨는 이제 없겠지, 코마바는 어떻게 변했을까, 외국 유학생 챙겨주시던 동네 아줌마들은 이제 할머니가 되셨겠지. 언젠가 유채꽃 핀 코마바 동네를 다시 가보는 상상을 한다. “덜컹덜컹, 땡땡땡” 철길 옆 동네 소리를 추억해보려, 오늘은 아이와 함께 이촌동이라도 한 바퀴 돌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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