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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그레이스콘 Mar 19. 2021

글쓰기와 카리스마

#마흔여섯 돌아보기 07.

내 운전면허는 20년이 넘었지만, 실제로 운전한 기간은 겨우 절반에 가깝다. 그래도 십년은 넘게 차를 몰아본 셈인데 아직 크게 자신이 없다. 내 차에 누군가를 태우게 될 경우라면, 혹시 미숙하다 흉보지는 않을까 걱정부터 앞선다. 혼자 운전할 때보다 옆에 누가 탔을 때 더 자신 없어지는 증상이다. 모르는 길은 나서지 않고 좁은 골목길도 잘 들어가지 않는다. 옆에 누가 앉으면 갑자기 초보가 되는 마음. 일종의 트라우마와 같다. 아는 길도 괜히 조심스럽고 과감한 끼어들기도 시도하지 않는다. 웬만하면 직진이다.     


이러한 소심증은 모두 남편 탓이다. 운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무렵 남편에게서 들었던 무시무시한 비판에서 비롯되었다. 자만하다 사고날까 하는 우려의 잔소리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묘한 자격지심이 항상 운전을 어렵게 만들었다. 초보 시절, ‘한번 몰아보라’는 남편과 함께 길을 나섰다가 크게 싸웠고, 그날 나는 동작대교 한복판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내려버렸다. 파란만장했던 신혼 시절의 일화라고는 하지만 그 앙금은 아직도 남아있어, 이후로도 내가 모는 차에 절대 남편을 태우지 않는다. 셋이 하는 가족 나들이라면 운전은 항상 남편이 한다. 아무리 장거리라도 절대로 교대같은 건 하지 않는다. 참 둘 다 징글징글한 고집이지만, 솔직히 나 스스로도 그리 운전에 자신 있는 편이 아니다.  

   

이런 나에게 ‘글’은 운전과 같다. ‘자신감 없음’의 트라우마가 언제나 따라다닌다. 예전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글쓰기야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일기나 숙제처럼 몇십 년을 해온 것이고, 게다가 어릴 때는 글짓기상도 거의 개근상처럼 쉽게 받을 수 있던 게 아니었는가. 그전에는 제법 쓰는 줄 알았다. 내게 글쓰기란 박사과정을 들어오면서부터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일이 나의 본업 중 하나가 되어버린 순간부터 ‘글’은 내게 어려운 대상으로 변했다.     


박사 공부는 사실 글쓰기가 전부이다. 박사에서 ‘글’이란 내 연구의 수준과 정체성을 규명하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책 읽고 공부하는 게 돈 버는 것보다 뭐 그리 어려울까 싶었지만, 논문 실적의 스트레스는 졸업의 압박과 항상 붙어있었다. 웃기게도 논문 게재료로 ‘내 돈을 내고’ 쓰는 것인데도 말이다. ‘돈도 안되는’ 글쓰기로 논문 실적을 쌓아야 하는 현실을 버텨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항상 턱밑까지 차버린 생활이었다. 학술지에 게재되기까지는 몇 번의 혹독한 리뷰를 받아야 한다.     

 

“이건 아무리 호의를 갖고 읽어주려 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글이야!” 교수님은 내 첫 번째 투고 논문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이유에서 나온 평가였는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논문은 논문이 요구하는 구성이 있기 때문이다. 문장 하나하나의 수려함보다는 전체적으로 합당한 구성을 갖추었는가가 첫 번째 관건이 된다. 나는 기본적인 구성부터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그 뒤로도 학회에 논문을 제출할 때까지 스무 번 넘게 첨삭을 받았는데, 열 장짜리 내 글은 매번 시뻘건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다. 아니 그것보다, 초반 두어 문단을 읽다가 그냥 말없이 돌려주실 때가 더 비참했다. 볼 가치도 없는 글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학회 심사에 올렸지만, 이번엔 만만치 않은 피어 리뷰가 기다리고 있었다. 학술지 논문은 블라인드 심사로 이루어지는데, 3명의 심사위원 중 2명이 ‘수정 재심’, 나머지 한 명이 ‘게재 불가’를 내었다. 그 ‘게재 불가’의 심사평이 아주 잔인했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 논문의 가치도 없는 것’이라는 심사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행히 이후 재심에서 통과되어 게재되긴 했었지만, 칼이 되어 날아온 심사평에 이미 상처를 받을 대로 받은 이후였다. 첫 학술논문의 기억도 비참했을 진데, 몇 년 뒤 학위심사과정은 더 고통스러웠다. 구성은 구성대로, 문장은 문장대로, 단어는 단어대로 난도질을 당했다. 세상의 미움이란 미움은 다 받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미움받아 본 적이 난생 처음이라는 생각을 매일 했다.     


내게 글쓰기는 그런 트라우마이다. 칭찬과 격려가 아닌 비판과 호통의 분위기에서 시작한 글쓰기는 그런 부작용을 낳았다. 가끔 어느 블로그나 게시판에서 ‘거침없이 써내려간 듯한 글’을 볼 때가 있는데, 논리와 구성은 완벽하지 않다손 치더라도 ‘내뱉는 그 용기’가 한없이 부럽다. 어찌 그렇게 자신있는 글들을 써내려가는 것일까. 그럴 때면 ‘아마 이 사람의 글 배우기는 나와 달랐으리라’는 생각이 먼저 스친다. 지나친 나르시시즘도 위험하겠지만, 떨쳐버리지 못하는 자기 비하도 가까이 두어 좋을 게 없다.     

 

어쨌든 나는 박사가 되었고, 학위논문은 꽤 권위있는 학술상도 받았다. 부상으로 출판도 끝냈지만, 글쓰기의 트라우마와 열등감을 모두 극복한 것은 아니다. 책을 다듬는 동안에도 늘 마음은 괴로웠다. 심사장에서 녹음해두었던 심사위원들의 평을 다시 듣는 것은 마치 살을 쥐어 뜯는 것 같았다. 아마 출판 계약서에 명시된 마감이 없었다면 그대로 덮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글이 드러나는 것이 항상 무섭다.      


생각해보니 내게 이런 번뇌를 안겨준 사람이 지도 교수님과 남편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흥미로운 것은 내가 지독히도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나는 교수님의 통찰력을 존경하고, 남편의 의연함을 부러워한다. 얄미울 정도로 빼앗고 싶은 능력이다. 내가 갖고 싶은 걸 가졌다는 점에서 이 둘은 내게 ‘카리스마적 존재’인지도 모른다. 카리스마란 ‘내가 갖고 싶거나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라 했다. 트라우마를 떨치고 그 카리스마를 빼앗아 와야겠다. 글쓰기도, 운전도.


유학시절의 나. Avery 도서관에서. 영어나, 한국어나, 글쓰기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모국어라고 하여 글쓰기가 특별히 쉬운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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