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은 예술이다”라는 시노하라 카즈오(篠原一男)의 선언은 자칫 오해되기 쉽다. 어떤 이에게는 위험할 수도 있는 문장이라 생각한다. 예술을 아름다움의 가치로만 이해하는 경우라면, 주택 설계의 목적을 형태적으로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에 두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住宅は芸術である。
誤解や反発を承知の上でこのように発言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地点にわたしは立っている。
住宅は建築といわれている領土から離れて独立をすることを、それは意味している。
国籍は絵画や彫刻、あるいは文学等々同じく芸術という共同体に移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
주택은 예술이다.
오해나 반발을 각오하고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지점에 나는 서있다.
주택은 건축이라는 영토에서 떨어져 독립하였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주택의 소속되어야 할 곳은 회화나 조각, 혹은 문학 등과 마찬가지로, 예술이라는 공동체로 옮겨가야 한다.
본래 1962년 <新建築>에 발표했었던 이 글은, 이러한 발언이 나오게 된 일본건축계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한 다음에야 본뜻을 파악할 수 있는 시대적 선언과 같다. 주택 설계라는 활동이 이제 ‘건축이라는 영토’를 떠나 미술이나 문학과 같은 예술의 영역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기능주의 건축의 주류화에 대항한 주택 작가의 마음가짐과 주택설계의 가치화를 촉구했다. 주택은 본래 공장과 같은 기능 중심의 건축과 차별적임을 강조하며, 현시점의 주택 설계가 비록 주류에서 밀려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 가치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주택 설계가 문화 창조의 주체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한 가족의 주문에 응하여 특정한 조건에 맞추어 열심히 설계하고 또한 공사현장의 세심한 마무리까지 살피며 완성을 지켜보아야 하는 우리들의 일은, 어떻게 생각해봐도 ‘정당한 건축생산’이라는 것과는 동떨어져 있다. 고도성장을 이룬 일본 경제가 요청하는 건축생산은 최근 수년간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냈다. 활발히 전개되는 건축 생산의 주류에서 보자면 주택 설계와 같은 일은 흘러가는 물 위에 생기는 거품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건축가 한 명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서 사회의 생산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주택은 예술이라는 말이 단순히 기묘한 조형성이나 외형상을 미학적 가치를 추구함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앞서 위험하다고 했던 것도 바로 이런 점이다. 시노하라는 주택이 예술이 되는 순간 비로소 사회적 생산활동으로서의 건축을 떠나 ‘자유’라는 것이 주택 작가에게 주어진다고 하였는데, 여기서의 ‘자유’란 표현의 자유나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곧 진정한 예술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짚고 있다.
또한 주택 설계를 가치를 주장한다고 하여, 공장 설계에 대한 건축적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시노하라는 ‘주택과 공장은 서로 대립적 관계일지는 모르나 상호부정적 관계는 아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대립과 협동을 동시에 포함한 보다 고차원의 관계를 만들어감으로서 일본 건축계를 균형있게 지속할 수 있음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요란한 ‘이즘(ism)’의 유행도, 기묘한 조형도, 주택이 예술이라는 설계원점을 확인한 뒤라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주택설계는 사회적 생산과는 무관하다고 자인하고 있는 이상 이로 인해 사회의 진행을 저해할 염려도 없다. 이러한 설계 원점의 설정은 동시에 설계 방향의 자유성을 약속해 줄 것이다.
쓸데없는 콤플렉스에서 해방된 주택작가에게는 모든 시도가 허용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는 ‘자유’라는 것이 놓여진다. 이 글을 쓰게 된 목적이라 불러도 좋다. 주변상황에 대한 작가의 삶과 창작상의 문제를 동시에 보여주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택 설계의 문제는 「자유」의 문제로 이해될 수 있다. 예를 들면, 기묘한 조형도 자유의 표현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진정한 자유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주택 설계에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자유분방한 상상력이라고까지 생각하나 그것은 겉보기에 신기한 조형을 만들 것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시노하라에게 주택은 건축의 본질이자 나아가 일본의 문화적 정체성을 함축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일본 건축의 아이덴티티라 바꾸어 부를 수도 있다. 주택이 ‘가족’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 집집마다 특수한 조건을 공간으로 담아내야 하는 주택 설계야말로 일본의 전통건축과 현대건축을 잇는 방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궁극적으로 기능주의적 건축만이 건축계의 주류가 되고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시노하라는 ‘지극히 기능적인 것 중에서 또 다른 새로운 생명이 되살아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택은 예술이다”라는 그의 문장은 주택 설계의 원점(原点)을 조명하고 그 방향을 제시하려는 의도에 입각한다. 독자로서의 우리가 이를 확실히 이해하려 한다면 다시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시노하라의 주장에서 예술로서의 주택이 단순한 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뜻이 아님을 확실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주택은 예술’이라는 선언은 단지 미학적 형태만을 추구하거나 고매할 정도의 예술적 고립성을 의도하지 않았음을 알아두어야 한다.
이 글의 목적은 주택설계의 원점을 조명하고 그 방향을 선명한 이미지로 그리는 것에 있다. 그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원점을 지키기 위해서는 계속 가혹한 상황을 맞서는 데는 매우 강인한 의지가 필요하다. 진정한 예술에 이르는 길이 아직 멀다는 것을 통감하는 바이나, 더 이상 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