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재회

by 줄리엣 호텔

다음 날 저녁, 대학가 치킨집

진우는 일찍 도착했다.

익숙한 장소였다. 대학 시절 현석과 자주 오던 곳. 낡은 테이블, 벽에 붙은 포스터들, 튀김 냄새.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진우 자신이 달라졌다. 이제는 평범한 대학생이 아니었다. 호랑이의 기운을 받은 십이지신 계승자.

'어떻게 말하지?'

진우는 생각했다.

직접적으로 물어볼까? '너도 힘 받았어?' 아니면 돌려서? 조심스럽게 반응을 살펴보면서?

문이 열렸다.

현석이 들어왔다.

"진우야!"

"현석아!"

두 사람은 반갑게 손을 잡았다.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광화문 사건 이후 처음이었다.

"야, 괜찮았어? 광화문에 있었다며?"

현석이 먼저 물었다.

"응. 나도 거기 있었어. 너도?"

"응. 회사 일 때문에 근처 갔다가... 진짜 아비규환이었어."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치킨을 시키고, 맥주를 시켰다.

"다친 데는 없어?"

진우가 물었다.

"없어. 운 좋게도. 너는?"

"나도 괜찮아."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진우는 현석을 관찰했다. 뭔가 달라 보였다. 눈빛이 더 날카로웠고, 분위기가 더 강렬했다. 예전의 현석보다 더... 위압적이었다.

'느껴진다.'

진우는 깨달았다.

지영이 말했던 것처럼. 십이지신 계승자들끼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고. 그리고 지금, 진우는 현석에게서 뭔가를 느끼고 있었다.

강력한 기운. 황금빛. 용의 기운.

'역시... 현석이도 받았어.'

진우는 확신했다.

현석도 진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도 이상했다. 마치 뭔가를 알아챈 것 같은.

"진우야."

현석이 먼저 말을 꺼냈다.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지? 뭔데?"

진우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현석은 오랜 친구였다. 숨길 이유가 없었다.

"현석아. 너... 광화문에서 이상한 거 못 봤어?"

"이상한 거?"

"빛. 하늘에서 내려온 빛."

현석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잠깐, 아주 잠깐 놀란 기색이 스쳤다.

"...봤어."

현석이 조용히 대답했다.

"나도 봤어. 황금빛. 내 가슴으로 들어왔어."

진우는 안도했다. 현석도 솔직하게 말해줬다.

"나도야. 흰빛이었어. 그리고..."

"용이었지? 너는 호랑이였고."

현석이 말했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어떻게 알았어?"

"느껴져. 너한테서. 호랑이의 기운이."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치킨이 나왔지만, 둘 다 손을 대지 않았다.

"진우야."

현석이 먼저 말했다.

"우리... 뭘 해야 할까?"

"무슨 말이야?"

"이 힘 말이야. 우리한테 주어진 이 힘으로... 뭘 해야 할까?"

진우는 잠시 생각했다.

"균형을 바로잡아야 해. 태극진의 균열을 고쳐야 해."

"어떻게?"

"모르겠어. 하지만... 일단 다른 십이지신들을 찾아야 할 것 같아. 우리 둘만으로는 부족할 거야."

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열두 명이 다 모여야 해. 그런데..."

현석이 말을 멈췄다.

"그런데?"

"모인 다음에는? 뭘 할 건데?"

진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일단 모여서... 함께 의논하면 되지 않을까? 열두 명이 머리를 맞대면..."

"진우야."

현석이 진우의 말을 끊었다.

"너무 순진한 것 아니야?"

"뭐?"

"생각해봐. 열두 명이 다 다른 사람들이야. 다른 나라, 다른 문화, 다른 가치관. 그 사람들이 하나의 의견으로 모일 수 있을 것 같아?"

진우는 불편했다.

"그래도... 같은 목표를 향해서라면..."

"목표는 같을 수 있어. 하지만 방법은 다를 수 있어."

현석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예를 들어볼게. 세상이 혼돈에 빠졌어. 균형이 무너졌어. 이걸 바로잡는 방법은 뭘까?"

"서로 이해하고, 대화하고..."

"그게 통할 것 같아? 지금 사람들 봐. 이성을 잃고 서로를 공격하고 있어. 대화가 통해?"

진우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생각해봤어."

현석이 계속 말했다.

"지금 필요한 건 강력한 질서야. 누군가 나서서 확고하게 이끌어야 해. 혼돈을 제압하고, 규칙을 만들고, 사람들을 통제해야 해."

"통제?"

"그래. 통제. 자유방임으로는 안 돼. 지금처럼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세상은 계속 무너져."

진우는 현석을 바라봤다.

친구의 눈빛이 낯설었다. 확신에 차 있었다.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이 옳다고 믿고 있었다.

"현석아..."

"진우야, 오해하지 마. 나는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야. 나는 진심으로 세상을 구하고 싶어. 하지만 그러려면... 강해져야 해. 우리가."

"강하다는 게 무슨 뜻이야?"

"힘으로 이끄는 거야. 용의 위엄으로. 사람들이 우리를 두려워하면서도 따르게 만드는 거야."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야, 현석아."

"뭐가?"

"힘으로 사람들을 통제하는 건... 그건 균형이 아니야. 그건 지배야."

현석의 표정이 굳어졌다.

"지배와 질서는 다른 거야, 진우야."

"질서는 억압이 아니야. 질서는 조화야. 서로 다른 것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존재하는 거야."

"너무 이상적이야."

"네가 너무 극단적이야."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분위기가 차가워졌다.

현석이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진우야. 우리 의견이 다른 것 같네."

"그런 것 같아."

"그럼... 어쩔 건데?"

"각자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수밖에."

현석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각자 하고 싶은 대로. 너는 네 방식대로 세상을 구해봐. 나는 내 방식대로 할게."

"현석아..."

"괜찮아. 우리 아직 친구잖아. 의견이 달라도 친구는 친구지."

현석이 일어섰다.

"미안. 나 먼저 가볼게. 회사 일이 있어서."

"현석아, 잠깐..."

하지만 현석은 이미 돈을 테이블에 놓고 나가고 있었다.

진우는 혼자 남았다.

치킨은 식어가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어야 했는데...'

진우는 후회했다.

너무 직접적으로 말한 걸까? 좀 더 조심스럽게 접근했어야 했나?

하지만 동시에 알고 있었다. 어차피 결과는 같았을 거라고. 자신과 현석은 근본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호랑이와 용.

둘 다 강력한 동물이었다. 하지만 그 힘을 쓰는 방식이 달랐다.

호랑이는 보호했다. 숲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용은 지배했다. 하늘의 질서를 만들기 위해.

'우리... 결국 싸우게 되는 건 아니겠지?'

진우는 그 생각을 떨쳐냈다.

아니, 그럴 리 없었다. 현석은 친구였다. 20년 넘게 함께한 친구.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진우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같은 시각, 한빛그룹 본사.

현석은 회사로 돌아왔다.

하지만 일을 하러 온 게 아니었다. 생각을 정리하러 왔다.

옥상으로 올라갔다. 서울의 야경이 펼쳐졌다. 수많은 빌딩의 불빛. 그 아래 살아가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

'진우는... 이해하지 못해.'

현석은 생각했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얼마나 위급한지.'

세상은 무너지고 있었다. 균열은 계속 커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있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온화함이 아니었다. 강력함이었다.

'누군가 나서야 해. 강한 힘으로 모든 것을 바로잡아야 해.'

현석은 손을 펼쳤다.

황금빛이 번쩍였다. 용의 기운. 하늘을 지배하는 힘.

'이 힘으로... 나라면 할 수 있어.'

현석은 확신했다.

진우는 너무 착했다. 너무 이상주의적이었다. 현실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달라. 나는 현실을 알아. 이 세상이 얼마나 냉혹한지.'

현석은 어릴 적을 떠올렸다.

괴롭힘 당하던 시절. 약하고 무력했던 자신. 그때 필요했던 건 대화가 아니었다. 힘이었다. 강함이었다.

'진우는 처음부터 강했어. 그래서 모르는 거야. 약한 사람이 얼마나 힘을 갈망하는지.'

현석은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강해. 진우보다 더 강할 수도 있어. 용의 힘은 호랑이보다 위에 있으니까.'

그리고 현석은 결심했다.

'진우와는 다른 길을 가는 거야. 각자 하고 싶은 대로. 나는 내 방식으로 세상을 구할 거야.'

다음 날.

진우는 지영을 만났다.

"어땠어요?"

지영이 물었다.

"친구 만났다며? 그 사람도 십이지신이었어요?"

"응... 맞았어."

진우는 어젯밤 일을 이야기했다. 현석과의 대화. 의견 충돌. 그리고 헤어짐.

지영은 심각한 표정으로 들었다.

"용이라..."

"지영 씨는 용에 대해 아는 거 있어요?"

"조금요. 용은... 하늘의 지배자예요. 강력하고, 위엄 있고,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죠."

"호랑이랑은 다르네요."

"많이 달라요. 호랑이는 땅의 왕이지만, 숲과 함께 살아요. 용은 하늘의 왕이고, 모든 것 위에 군림하려 해요."

진우는 한숨을 쉬었다.

"그럼... 우리랑은 협력하기 힘들겠네요."

"지금은요. 하지만..."

지영이 진우의 손을 잡았다.

"포기하지 마세요. 친구잖아요. 20년 넘게 함께한.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정말요?"

"네. 저는 믿어요. 토끼는 중재자예요. 평화를 만드는 자. 그리고 언젠가... 호랑이와 용도 화해할 수 있을 거예요."

진우는 지영의 말에 위로를 받았다.

"고마워요, 지영 씨."

"천만에요. 우리 함께 힘내요."

두 사람은 악수했다.

그리고 계속 움직이기로 했다. 다른 십이지신들을 찾기로. 현석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같은 시각, 전 세계.

다른 십이지신 계승자들도 움직이고 있었다.

도쿄에서 미연(뱀)은 미래를 계속 보고 있었다. 그녀의 예지력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본 미래 중 하나에는... 황금빛 용이 있었다.

'저 사람... 강현석. 용의 계승자.'

미연은 그에게 끌렸다. 힘에. 위엄에. 확고함에.

'나는... 그 사람을 따를 거야.'

베이징에서 상우(쥐)는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십이지신 계승자들의 위치, 성향, 능력.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해. 너무 빨리 나서면 안 돼.'

뭄바이에서 민수(개)는 자신의 주인을 찾고 있었다. 개는 충성스러웠다. 누군가를 따르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헌신하고 싶었다.

'누구를 섬겨야 할까?'

파리에서 준희(닭)는 고민하고 있었다. 자신의 목소리로 무엇을 해야 할지. 정의를 위해 노래할지, 평화를 위해 노래할지.

'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곧... 알게 되겠지.'

열두 명의 계승자들.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생각을 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은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곧 모이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진짜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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