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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Sep 29. 2015

[포토에세이] 노랑 별곡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노랑 별곡

아침에는 쌀쌀한 기운마저 감돌았는데요, 한두 시간 안에 낮 기온이 27-8도로 높아져 아침과의 기온 차가 15도 안팎으로 크게 벌어지겠습니다. 감기 걸리기 쉬운 날씨이니 겉옷을 잘 챙겨서 다니시는 게 좋겠습니다. 쾌적한 초가을 날씨가 이어지겠습니다. 뚜렷한 비 소식도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제보다 조금 덥게 느껴지겠고요. 밤에는 금세 쌀쌀해지겠습니다.

당분간 일교차가 10도 이상 벌어질 것이라는 날씨 예보가 나오면 귀가 솔깃해진다. 여름 무더위가 물러갔다는 반가운 소식이고, 가을이 다가온다는 뉴스이기도 하다. 산 아래로 구름바다가 펼쳐지는 운해(雲海)의 장관(壯觀)을 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소식이기도 하고, 다른 계절보다 더 황홀하게 밝아오는 여명(黎明)을 볼 수 있다는 뉴스인 까닭이기도 하다.

카메라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적상산에는 양수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산 정상 부근에 적상호라는 인공 호수가 생겼다. 상부댐이라고도 불리는 호숫가에 우뚝 선 전망대에 올라서면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은 물론이거니와 백두대간의 하늘금까지 볼 수 있다. 막힌 속을 뚫어주는 장쾌한 아침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좋은 기운을 듬뿍 느끼니 기분까지 상쾌하다.

점심시간에 동료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퇴근길에 겪은 일을 소개하였다.


"있잖아. 운전하고 가던 중 중 라디오를 들었어. 시각장애인에게 노랑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더군. 예를 들면 잔디밭을 맨발로 걷게 한 후 촉촉한 느낌과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느낌을 초록색이라고 말해주고, 토마토 맛을 보게 한 후 그것이 빨간색이라고 설명을 했다는 것인데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어. 나는 그 시각장애인에게 노란색은 어떻게 설명할까. 박 소장은 어떻게 설명할 거야?"


대화창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나는 즉각 떠오른 대답을 아래와 같이 적어 보냈다.


"글쎄요, 만약 그 질문을 받았다면 달맞이꽃을 따다가 손으로 으깨어 보라고 한 후 냄새를 맡아보라고 하겠어요. 그것이 노란색이라고 설명하렵니다." "그래? 그것도 괜찮겠군! 그럼 주황이나 파랑은? 흰색이나 보라색은? 아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을 설명하기로 한다면?"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SNS에 내용을 게시하고 친구들의 답을 기다렸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은 대학 면접시험에서 유사한 질문을 받았다는 경험을 답글로 적었다. 댓글을 옮겨본다.


'눈을 때렸을 때 느껴지는 것. 새 신을 신고 팔짝 뛰었을 때 순간의 느낌!' '개나리와 호박꽃 그리고 달콤한 단호박 죽의 맛을 보라고 하겠어요.' '겨울이 지나고 봄날 밝은 햇살, 그 햇살을 만질 수만 있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안타까운 상황 설정이네요. 창의력의 한계를 절감하게 하는 난감한 문제입니다. 단.. 무.. 지..(죄송합니다).' '무지개에서 세 번째 색깔. 그런데 그분이 무지개를 보았을 리가.'그중에 눈에 띄는 댓글이 있었느니, '저는 ‘똥’을 만져보게 하겠습니다.'

삶이 모두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게다가 잔디가 늘 초록색일 리도 없고, 토마토도 요즘은 빨강보다는 갈색이나 초록색이 더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상황 설명까지 덧붙였다. 색(色)을 경험과 언어로 설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중국 시진핑 주석 옆 박 대통령의 노랑 재킷을 만지게 해주고 싶다는 댓글까지 이어졌으니.

금방이라도 붉은 태양이 솟구칠 듯 변화무쌍한 하늘이 춤을 춘다. 새벽 여명은 빛의 향연이요, 신(神)의 연주이다. 붉은색과 파랑, 노랑과 보라색 광채들의 절묘한 협연. 묘사하기란 두 눈의 시력과 필력이 부족할 뿐이다. 손만 내밀면 닿을 듯 다가오는 운해, 그 위로 황금 햇살이 퍼지면 가히 숨이 막힐 지경이다. 빛과 색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무한한 축복이자 능력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노랑을 설명하기도 이리 다양한데 수백 수천에 이르는 색을 어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어찌 보면 볼 수 있는 자의 횡포일 수도 있겠다. 초록과 빨강을 보며 생각한다. 세상이 어찌 아름다울 수만 있나. 굳이 힘쓰지 않아도 더러움은 묻기 마련. 선택은 가진 자의 몫. 애써 아름답고 선한 것을 취해야 할 이유이다. 아침이 쌀쌀해졌다.


당신만의 노랑,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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