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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Jan 14. 2016

[포토에세이] 속 아는 사람 프리미엄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속 아는 사람 프리미엄>


구석구석 쌓인 먼지가 새집을 지었구나. 오후 세 시쯤 되었을 것이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청소를 시작하였다. 커튼의 먼지를 털고, 엎드려 바닥을 닦기 시작하였다. 소독비누액을 풀어 화장실까지 물청소가 거의 끝나갈 무렵, 양말은 젖었고 머리는 흐트러졌는데 문 여는 소리 있어 현관을 바라보니,


안녕하세요? 박도순 소장님인가요? 맞습니다만, 어디가 편찮아서 오셨나요?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급하지 않으시면 청소를 마무리한 후에 봐드리겠습니다.     


배낭을 메고 모자를 눌러쓴 당신이 들어섰다. 덕유산 여행길에 다리가 아파 왔다면서, 시간이 충분하니 천천히 봐주어도 좋다고 양해하셨다. 대기실 의자에 앉지도 아니하고 서있기만 하시던. 나는 청소도구를 정리하고 옷매무시를 고친 후 진료실로 들어왔다. 당신과 의자에 마주 앉았다.


연락도 드리지 않고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몸이 아파서 온 것이 아니라 지난주에 작가님이 나오는 방송을 보았습니다. 오늘 마침 쉬는 날이라서 무주에 오게 되었습니다. 덕유산은 핑계이고요, 작가님을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전주에 살고 있는 S라고 합니다.


당신은 배낭을 벗으며, 쉰세 살을 넘긴 직장인이라고 소개하였다. 펜탁스를 시작으로 니콘 D80, D800, D3, D4와 소니(Sony)의 미러리스 카메라에 이르는 사진사(史)를 풀어놓았다. 삼각대와 묵중한 세로그립, 각종 컨버터와 필터의 이야기는 제쳐두자. 당신은 10여 년 동안 사진 활동을 하였다고 했다.


월급을 받으면 카메라와 렌즈에 올인하였다고 했다. 카메라의 장비로는 최고의 경지에 닿아보았으며, 브랜드별 카메라와 렌즈의 성격에 대하여 누군가가 묻는다면 꿀리지(!) 않을 자신감도 있다고 하였다. 해마다 주행거리가 10만 키로를 넘을 정도로 전국의 산과 들과 바다를 돌아다녔다고 하였다.


‘국민포인트’는 물론이거니와 남들이 가지 않는 자신만의 ‘포인트’를 개척하였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포인트에서 어렵게 건진 몇 장의 작품은 공개하기조차 아까워 그대로 하드에 소장하고 있다고. 나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그런 당신에게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당신은 퇴근 후 소파에 반쯤 누워 ‘문화 향’을 시청하였다.


‘사진작가’에 대한 소개라는 멘트에 몸을 일으켜 방송에 집중하였다. 방송이 끝나자 둥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당신의 지나간 사진 생활이 허송세월이었다는 좌절스러운 생각에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 저것이 진정 사진인데. 카메라 장비와 사진에 그토록 많은 것을 투자한 당신.


한 장의 사진을 위하여 열정을 쏟아부은 당신이 ‘남은 것이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의아하게 생각하며 말없이 당신의 이야기를 들었다. 장비가 남았고 사진이 남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다고 당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떻게 하면 작가님 같은 시선으로 사진을 담을 수 있는지 가르쳐주십시오.


새로운 성능으로 중무장하여 나타나는 카메라 장비를 볼 때면 나의 카메라와 몇 안 되는 렌즈를 모두 처분하고 싶을 정도로,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굴욕스러운 적도 있었다는 경험부터 나의 지나간 사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신은 펜탁스에서 디포까지 이르렀으니 장비에 관한 이야기라면 3박 4일,


아니, 열흘도 모자랄 것이다. 1.5에서 풀프레임으로 진화한 광학계의 전설과 신화는 지금도 창조 중이다. 끝이 있을 수 없다. 당신이 가진 장비와 열정이 부럽다. 사진가에게 얼마나 비싼 카메라가 필요한가에 대한 답은 없다. 인간이 욕망한 결과는 욕망의 전쟁에서 돌아오다 죽어버린 자신의 몸을 눕힐 한 평 땅이었다는 오래된 글이 이미 깨우침을 주지 않았던가.


나는 당신이 될 수 없고, 당신 또한 내가 될 수 없다. 서로 다른 경험으로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충돌하고 얻어진 것들이 모두 달라서 감수성이 다르고, 사진의 결과도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이렇게 찍었더니 이렇더라는 기술적 조작의 값을 제시할 수는 있을 것이나,


나와 피사체와의 마주함은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향에서 오랫동안 어르신들과 삶을 부비며 살아온 ‘속 아는 사람 프리미엄’을 당신에게 전수할 수 없음이 매우 안타깝다. 당신만의 경험이 있고, 사유(思惟)가 있을 것이다. 계절, 시각, 값으로 ‘국민포인트’에서 얻은 결과물이 즐겁다면 당신은 그 길을 계속 가면 될 것이다.


당신만의 사진이 없다고, 그동안 해 온 사진 생활이 허송세월이었다고 생각하지는 마시라. 당신만의 사진 세계를 찾지 못한 것 때문에 고뇌하다 먼 길을 나섰다면 당신은 이미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는 역설이 아닐까. 좌절할 일이 아니라 이것은 진정 축하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방을 챙겨 현관을 나가는 당신을 배웅하였다. 다른 작가의 사진을 보는 것, 작가의 숨은 생각과 뜻을 간파하는 일,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의심하고 대답하기를 반복해야 하는 사진가로서의 철학적 발문(跋文)은 계속되어야 한다. 지금은 세 살 아이도 사진을 찍는 시대가 되어버린,


그야말로 사진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홍수에 마실 물이 없다는 말이 크게 들려온다. 사진은 기능이 문제가 아니라 감성, 영혼, 철학, 표현이 선행되어야 한다. 장비나 노출이나 핀의 문제가 아니다. 당신의 ‘목마름’에 내 경험이 한 방울의 물이 되었을까마는. 설편(雪片)이 나부낀다. 산바람이 차갑다.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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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남면 굴암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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