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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Jan 15. 2016

[포토에세이] 마음 처방전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마음 처방전>


선배님! 방송 잘 봤어요. 그동안 연락도 없이 대체 또 무슨 일을 만드신 거랍니까. 하여간 대단해요. 사진전에 못 가고 죄송하고만요!


점심 시간 조금 지나, 너는 전화를 했지. 병원에서 10년 가까이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지금은 섬에 있는 보건진료소에서 근무한지 3년 차. 잘 나가던 대학병원을 그만두고, 아이들을 시부모님께 맡겨두고, 정말 다부진 각오로 공부하더니. 합격하여 발령을 받았지. 전화가 어찌나 반갑던지, 그동안 밀린 안부가 속사포처럼 날아가고 날아왔어.


선배님! 이곳 섬에 있는 보건진료소는 여객선 타고 1시간 걸려요. 저쪽 섬에서 2년 반 근무하다가 이곳에 발령받은 지 이틀 됐어요. 이전 근무지 섬은 육지랑 연결되는 다리가 놓여서 더 이상 섬 취급도 안 하지만요. 제비뽑기 해서 이곳으로 결정이 나버렸네요. 우리 지역은 섬이 많아서 그렇게 근무지 바꾸고 있어요. 하필 3번 제비를 뽑을 게 뭐예요. 나 참! 하하하~


섬으로는 하루에 한 번 배가 들어와요. 아침 9시 배를 놓치면 출근도 못 해요. 6시까지 근무이긴 하지만 6시 이후에는 배가 없으니 3시 배를 타고 퇴근해요. 이곳 현실이 그러니까, 일찍 퇴근할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위로가 됩니다. 주민들도 그런 생활에 맞춰서 오전에 보건진료소를 주로 이용하시고요, 일찍 퇴근하는 것이 조금은 용납되는 그런 분위기입니다. 어제는 섬을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뒷동산 느낌이 나는 산이 있더라고요. 놀라지 나세요, 등대도 있어요. 산에 올랐다가 내려오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어쩌다 이런 곳까지 오게 되었나, 정말이지, 기분이 되게 이상하더라고요. 첫 근무지와는 느낌이 많이 달라요. 나는 언제쯤 육지로 나갈 수 있을까요? 그렇게 지긋지긋하던 병원 생활이 부질없이 그리울 게 뭐예요?


선배님! 저는 어르신들의 삶을 듣는 것 자체가 너무나 피곤해요. 그런 면에서 선배님은 정말 타고나신 것 같아요. 듣는 것도 모자라 그것을 받아 적어 책을 내지 않나. 기가 막혀서!(웃음) 처음 섬으로 발령받았을 때에는 섬 생활의 모든 것이 신기하고 신기했어요. 어르신이 오시면 어느 동네에서 오셨어요? 그쪽은 무슨 생선이 많이 잡히나요? 어떻게 잡나요? 어머나! 세상에! 그것은 어떻게 요리해서 먹나요? 등등


보건진료소장으로서 마땅히 환자에게 물어야 할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라는 말씀을 가장 나중에 여쭐 정도로 깨알같은 질문을 많이 드렸었어요. 섬에 대하여 하나라도 더 많이 알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섬 생활에 적응하고 싶어서요. 업무에 그리 필요하지도 않은(아마 그것은 정말 업무에 필요한 질문이었을 수도) 질문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렇게 1-2년 지나고 차츰 섬 생활을 알게 되면서 말이죠, 선배님! 이제는 어르신들의 이야기 듣는 것이 정말 너무 피곤해요.


왜냐면 어르신들의 힘겨운 삶에 눌리는 기분이 들어요. 물에 젖은 솜처럼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정말이지 제가 우울증 걸려 죽을 것 같아요. 초심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잖아요? 근래에는 대화법이 바뀌었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어르신이 진료실에 딱 들어서면, <어디가 아프세요?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딱 두가지만 물어요. 나는 더 이상 당신과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 뭐 그런 방어진을 치는 거죠. 제가 이렇게 바뀌었어요. 선배님! 제가 나쁜 년이죠?


그래, 많이 힘들겠구나. 나쁜 년이긴, 나라도 그랬을 거야. 나도 어르신들의 아픈 주증상을 듣는 것보다 삶을 듣고 공감하는 일, 그건 정말이지 매우 힘들어. 어르신들의 힘든 삶이 내 탓도 아니고,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내가 마음이 아픈지 말이지. 서너 시가 되면 나도 어깨가 내려앉는 것 같고, 젖은 낙엽처럼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 무거워서 그냥 이불 둘러쓰고 무조건 디비 잔 적도 많다.


간호사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  병원에서 근무할 때에는 선배가 있고 동기가 있고 후배가 있어서 환자의 아픔을 보거나 듣는 경우, 커피를 마시며 수다로 풀거나 때로는 토론도 할 것이고, 그러는 사이에 고통은 분산 배치되었었겠지. 그런데 보건진료소는 혼자 근무하다보니 쏟아 부을 곳이 없어. 이입된 암울함이 온전히 내 몫이지. 그 기운에 눌리는 것 같더라. 나도 그랬어.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는다는 것, 인내력이 필요하고 에너지가 필요한 것 같아. 젖은 감정을 햇볕에 수건을 널어 바삭바삭하게 말리는 것처럼, 하루 쯤 날을 정하여 감정을 세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 우습지? 선배님도 그러셨군요. 이곳은 육경, 해경, 자가발전소 직원을 빼면 모두 어부들이예요. 도시에 나가 대학을 다니고, 온갖 시험 다 치루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것이 그렇게 고상한 학문이고 직업이었나, 요즘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이렇게 선배님한테 퍼붓고 나니 속이 좀 시원하네요.


정리하고 3시 배를 타야해서요. 서둘러야겠어요. 다시 전화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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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님!

이것 좀 드셔보시라고 갖고 왔구먼요.

올 가실은 날씨가 영 안 좋아서 곶감 말리기가 쉽지 않아서.

깨끗한 걸로 골라왔으니, 심심할 때 잡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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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야, 보고 있나. 나는 오늘,

아침부터 곶감을 먹는다.

바지락젖갈은 곰삭고 있것지?

봄에는 얼굴 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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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포내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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