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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Jan 18. 2016

[포토에세이] 그 이상의 채움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그 이상의 채움>



안녕하십니까/혹시괴목초등학교를1980년도에졸업한박도순님의핸드폰이맞습니까/포내리에살고계신김종석어르신의아들이자후배인김기철이에게서연락처를받았습니다/저는대전유성에살고있는신정택라고합니다/저를기억하실지모르겠으나/혹시박도순님의전화번호가맞으시다면/이번호로꼭연락주시기바랍니다/부탁드립니다.


신정택, 신정택... 정택 정택... 아하! 정택이~! 여보세요? 나야! 정말 오래간만이네. 신기해라.


정말 놀랍다. 잘 지낸거지? 무주에서 목회하고 있는 신태선 전도사님은 우리 고모님이시다. 우리 아버지 바로 아래 여동생이야. 신정혁라고 생각나지? 너는 오빠라고 불렀어. 바로 내 위의 형님인데, 그 형은 인천 부평에서 목회하고 계신다. 또 우리 누나 말이야. 기억하지? 누나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다. 가만있어보자, 거의 사십 년 가까이 지난 것 같은데?


이렇게 통화할 수 있게 된 것이 정말 놀랍다. 믿을 수 없을 정도야. 고향에 있는 보건진료소에 소장님이 되어 들어간 것도 놀랍고, 교회에서 귀한 직분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너무 놀랍구나.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하나님께서 포내리 교회를 통하여 여전히 일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어. 놀라우신 하나님이시네. 지난주에 출근하자마자 후배가 나한테 보내준 <포내리 사람들>을 읽었어. 정말이지 수고 많이 했더구나. 친구야! 정말 정말 잘했어.


그때 아버지 어머니가 포내리에서 목회하다가 순창으로 가셨잖아.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어. 전학을 갔지. 아버지는 순창에서도 고생을 많이 하셨어. 형님은 신학대학을 졸업한 후 목회를 하게 됐지.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빨리 돈을 벌어 아버지를 도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 그것도 생각처럼 쉽지 않다보니 힘든 세월을 보냈다. 다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목회자 가정에는 아픔이 있어. 나는 포내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이 인생 사는데 큰 힘이 되고 있어. 자랑이 된다.


가끔 아무 일 없어도 차를 끌고 포내리에 가보기도 했다. 만날 사람도 없고, 이제는 뭐 기억이 희미하기도 하지만 혼자서 우리 가족이 살았던 곳을 돌아보곤 해. 그런데 이제는 도순이가 거기 살고 있으니 만날 사람이 생겨서 좋다. 아버지는 작년에 급성중증혈소판감소증으로 쓰러지셨어. 곧이어 뇌출혈이 발생했고, 뇌사 상태로 40일간 병상에 계셨다. 어머니는 GIST(Gastro-Intestinal stromal tumor;위장관기질종양) 진단받고 치료 중이셨지.     


아버지 옆에서 간호하시던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셨어. 어머니 돌아가시고 사흘 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부모님이 병상에 계시는 동안 우리들은 너무나 놀라서 날마다 부르짖으며 기도했다. 그러나 하나님 뜻임을 알고 차분히 두 분의 죽음과 장례를 준비했어.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를 함께 보내드리는 합동 장례식을 치렀단다. 인간적으로는 무척 서운한 일이었지만 감사한 일이야. 나는 포내리에서 살았던 경험으로 농촌 사람들을 만나는 지금의 나의 일이 참 좋아.      


너도 그렇겠지만,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 더 보람이 있어. 너는 공부도 잘 했고 열심히 한 것도 기억한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이사한 후 중-고등학교를 순창에서 졸업했어. 대학에서는 수의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대전에서 생활하고 있어. 동생에게 사업 물려주고, 아산에 있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양계 수의사로 국내외 양계 농장에 기술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어. 해외 업무가 진행될 때에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고 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구나. 너희 부모님은 정말 거룩한 삶을 사셨어! 귀한 하나님의 일꾼이셨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존경스럽고 자랑스러워. 자식 입장에서 아버지에게 서운한 것도 있고, 인간적인 나약함도 보았겠지만, 그건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친구도 알아가고 있을 줄로 믿어. 이제 와서 생각하니 아버지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는 것을 알아줘야 하지 않을까. 그걸 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는데 말이야. 고맙고 고맙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앞을 보며 지금처럼 살자!


정택아!오래간만에소식듣게되어반가웠고/삶이란수없이많은변수가충돌하여빚어내는신의작품이아닐까라는생각이드는구나/우리의앞날을아무도예측할수없을것이나/나는기도그이상의것으로채움받을것이라는것을믿는다/사십년가까이안부도모르고지내다가오늘책한권이맺어준이연결의힘처럼말이지/무주에오거든연락해라/나도대전에갈일있으면꼭연락하마/봄처럼따뜻한겨울이더니/늦게서야철이드는지눈보라가거세다/바람이겁나찹다/감기조심하고늘건강해라/포내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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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포내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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