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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Dec 17. 2015

[포토에세이] 보이지 않는 사진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보이지 않는 사진>


날씨가 추우면 어쩌나, 갑자기 폭설이라도 내리면 어쩌나 염려하였는데 강추위가 오지 않은 포근한 날씨 속에서 오늘의 이 개회식을 갖게 된 것에 대하여 하나님과 이 자리에 참석하여 주신 손님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결혼 후 남편이 거래처에서 받아온 ‘미놀타 다이낙스 7000i’가 저의 첫 필름 카메라였습니다. 조리개와 셔터 값의 의미를 모르니, 그런 것이 있는 것조차 모르니 모든 권한을 카메라에 맡긴 채 사진을 담다가, 카메라의 주도권을 사진가가 쥘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카메라는 마치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알라딘과 같습니다. 사진가가 의도한 대로 결과물을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따라 흐르는 밤하늘의 별 자국과 황홀한 도심의 야경, 밤하늘 도화지에 물감이 엎질러지듯 순식간에 그림을 그려내는 불꽃놀이, 황홀한 여명과 일출, 바닷가 일몰에서 만나는 오여사와의 숨 막히는 랑데부, 이 모든 것은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보다 백 배는 더 황홀하고 아름다운 사진 놀이 최고의 환희요, 기쁨입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초록의 신록과 곡선의 패턴이 아름다운 보성다원에 사진을 담기 위하여 여행을 갔습니다. 잠자는 남편과 아이들을 뒤로하고 민박집을 나섰습니다. 장비를 챙겨 새벽길을 걸었습니다. 율포리 바닷가 위로 솟아오르는 태양과 다원의 아침이 어울린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습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는 왜 이 사진을 찍는가? 이 사진의 목적은 무엇인가? 왜 이런 질문이 앵글 속으로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설치했던 삼각대를 조용히 접고 민박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아름다운 풍경을 찍고, 가족과 친구들과의 일상을 찍습니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이제 전 국민의 국민의례라도 된 것처럼 흐트러지기 전에 사진을 담습니다. 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옆 사람과 공유하고, 때로는 알지 못하는 가상공간의 사람들과 공유하기에 분주합니다. 카메라와 스마트폰을 안 가진 사람이 없을 정도라서, 이미지를 생산하고 지우는 일이 너무나 쉬운 일상이 되었습니다. 혹자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가치 있는 사진 작업이 목마른 시대라고도 합니다. 사진은 넘쳐나는데 정작 의미 있는 이미지를 만나기가 어려워졌다는 역설일 것입니다.


사진작가에게 가장 괴로운 것은 <왜 사진을 찍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얻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 없이 많은 작가의 작품집, 단체 혹은 개인 전시회, 사진 관련 책들은 이 질문에 대한 작가들만의 짧은 답이자 안내서 일 것입니다. 파인더 속에서 세상과 끝없이 소통하며 얻은 결과일 것이며, 작가들만의 괴로운 질문에 대한 답의 일부일 것입니다. 사진마다 감탄입니다. 작가님은 무슨 카메라로 찍었습니까, 처음에는 칼라로 찍었다가 흑백으로 전환했습니까, 아예 처음부터 흑백으로 촬영하였습니까, 색상을 빼고 흑백으로 전환하는 방법은 열 가지나 되는데, 작가님은 무슨 방법으로 전환하셨습니까, 구도가 정형화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것은 작가의 생각이 아직 거기에 머물러 있다는 증거이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등등 전시장에서 2-3일 동안 머물며 관람객들에게 들은 단소리 쓴소리들입니다.


바라옵기는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작가의 심정으로 보아주십시오. 사진가의 작품은 작가가 현상에서, 풍경에서 느낀 것을 사진 속에 반영한 결과물입니다. 이미지가 성공하느냐, 성공하지 못하느냐에 영향을 주는 것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사진가의 지식과 기술일 것입니다. 정확한 노출을 설정하고 균형 잡힌 사진을 만들어내는 일, 이것이 성공적인 사진의 99%를 좌우한다는 이야기에 공감합니다.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가 저를 보며 드는 생각이, 저는 아직도 멀었다는 결론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 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 한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무가치하다.

그러나 이해하는 자는 또한 사랑하고 주목하고 파악한다.

한 사물에 대한 고유한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랑은 더욱 위대해진다.

모든 열매가 딸기와 동시에 익는다고 상상하는 자는 포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페라켈수스라는 사진가의 말입니다.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최고의 권좌에 앉아 권력을 쥐었던 대통령들도, 한 때는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던 스타들도 고인이 되고 시대의 장막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서 셔터를 눌렀던 사진가가 남긴 기록, 즉 사진은 남았습니다. <포내리 사람들>은 권력도, 인기도 없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손바닥 만한 땅과 희로애락의 감정입니다. 순박하고 정직한 땅의 청지기입니다. 저는 그분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지는 간호사로서 보건진료소장으로의 삶을 삽니다. 대학을 나오고, 대학원을 졸업했어도 언제 고추씨를 심어야 하는지, 마늘은 언제 심어야 하는지, 고추장 담글 때에 왜 엿기름을 고아 메주가루와 함께 담는지 아직도 알지 못하는 것이 부지기수입니다.


자연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연과 함께, 자연의 일부처럼 살아가면서 겪는 몸과 마음의 아픔을 보건진료소에 오셔서 호소할 때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들어주고 공감하는 일입니다. 이곳에 전시된 <포내리 사람들>은 보건진료소에서 근심을 털어내고 웃고, 아픔을 쏟아내며 울거나 웃는 모습입니다. 간호사였기에 그분들의 마음을 열 수 있었고, 장롱의 빗장을 열 수 있는, 사진가로서 좋은 명함을 가진 것에 대하여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굴 사진을 제외한 모든 사진들은 포내리 사람들의 생활 도구입니다. 포내리 사람들과 생활 도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사진에 담지 않은 <보이지 않는 삶>에 여러분들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주십시오. 더욱 큰 이야기가 들려올 것입니다. 들꽃 같이, 때로는 강인한 소나무 같은 포내리 사람들의 삶이 보일 것입니다. 마치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어머니가 바쁜 일상에 지치고 힘든 여러분 곁으로 다가와서, 야야 밥은 먹고 댕기냐? 말을 걸어올 것입니다.


하마터면 외장하드에 저장되어 잠들어 있었을 파일을 꺼낼 수 있도록 저를 불러주시어 '개관기념 초대 개인전'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에 사진을 걸게 해주신 박찬웅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가진 오래된 경험과 기술은 결국 오늘 이 <포내리 사람들>의 사진을 위함이었군요, 황찬연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세상 참 좁습니다. 평소 사소한 것일지라도 자주 베풀며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보건진료소장 직무교육 동기생인의 친척이라네요, 작품을 걸어주시고, 행사를 도와주신 권경로 선생님 반갑고 감사드립니다.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모든 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포내리 사람들을 대신하여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십시오.     


2015년 12월 13일


사진작가 박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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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포내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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