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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Dec 01. 2015

[포토에세이] 첫눈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여보! 잠시만! 이 분에게 보낼까 말까. 글쎄, 당신 욕먹을 일 한 건 없나? 그분에게 혹시 서운하게 한 일 있나 잘 생각해봐, 괜히 미움 받지 말고. 그럴 리가. 그런데... 있잖아, 만약에 말이야, 그분에게서 이런 초대장이 온다면 당신 기분 어떠할까? 당연히 축하해드려야지. 됐네. 그럼 보내드려! 아마 그분도 좋아하실 거야.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사진전시회 경험은 온라인 사진동호회에서 회원들과 가진 것이 전부이다. 십여 년 가까이 매년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사진동호회가 있고, 한두 해 걸러 진행되는 사진전시회도 있다. 그런 내가 요즘 <포내리 사람들>개인사진전시회, 더구나 <갤러리 개관기념 초대 사진전>을 위하여 여러 준비를 하고 있다.     


경험도 없는데다가 개관기념사진전시회니까 사진을 골라서 보내기만 하면 관장님과 관계자들이 알아서 하시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전시 일정 결정에서부터 개회식의 식순, 사회자, 축하의 인사는 누구누구에게 부탁할 것인지, 초대장 디자인, 오신 손님들의 접대는 무엇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하나에서 열까지 결코 사소한 것이 없다.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전주에는 오랫동안 사진을 사랑해 오신 원로 작가님도 많이 계시고, 소위 잘 나가는 인기 작가님도 많이 계신데 부족한 내가 선배님들과 갤러리 측에 누가 되면 어쩌나 하는 것이다. 사진 인화 전문 작업을 해 오신 황찬연 선생님을 만난 것은 내게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구절구절 설명드리지 않아도 척척 알아들으신다. 감성과 이성의 촉수가 예리하시고 날카롭다. 게다가 따뜻하시다.     


박 선생님이 주신 사진 중 인물 사진의 임팩트가 살아 있다. 사진 촬영 기술과 기술적 표현력이 아주 우수하다. 탁월하고 감각적이다. 어르신들의 표정에서 카메라를 거부하거나 저항하며 불편해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이런 사진을 담기란 쉽지 않다. 박 작가님만이 가능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회에 어떤 사진을 선택하든 모두가 '작품'이다. 특히 인물사진의 경우 동일 기종의 카메라와 동일 렌즈로 촬영한 것, 게다가 미놀타 렌즈를 선택한 것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프로들도 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인간의 시각과 가장 근접한 표준 렌즈를 사용한 것, 반열에 오른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다. 찬사를 보낸다.     


흑백사진으로 처리한 것도 아주 잘 한 일이다. 고민할 문제는 전시회 전체적인 디자인이고, 스토리의 구성이다. 작가의 의견을 말해달라. 평소 인화지로 갈 것인가, 다음 전시회를 생각하고 있다면 다르게 할 수도 있다. 사진의 최대 크기는 16*20, 필요에 따라 작게  갈 수도 있다. <포내리 사람들>에 나와 있는 카테고리를 모두 펼쳐보이기에는 어렵거니와 한계가 있다. '인연'으로 콘셉트를 잡고 그 인연을 어떻게 펼쳐갈 것인지 스토리를 구성하면 좋겠다. 사진 서른석 장 셀렉팅. 분에 넘치는 과찬을 들은 후 갤러리를 나섰다. 눈발은 점점 굵어진다. 어두워지니 서둘러 무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완주 소양에서부터 진안휴게소 부근까지 앞이 안 보인다. 공포러운 첫 눈이라니. 폭탄이다. 벌벌벌 기어 왔다.     


12월 9일 오후 5시, 사진공간눈 갤러리에 작품을 설치하러 간다. 프린트 방법과 기술에 관한 논의는 선생님들께 맡기고 돌아왔다. 계단을 올라가듯 한 단계  한 단계 일이 진행 중이다. 시간이 되는 대로 초대장 받으실 분의 주소를 적고, 라벨을 붙이는 중이다.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눈이 감긴다. 머리도 아프다. 전시회란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구나. 결국 ‘나’ 자신을 보여주는 작업이었구나. 부끄러움 없이 다수에게 사진, 아니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용감함, 죄송함 없이 초대장을 보낼 수 있는 용기, 그것은 쉽지 않은 일임을 새삼 느낀다. 눈이 그쳤다. 바람도 쉬는, 나도 너에게 그대로 기대어 쉬고만 싶은 오후.      


첫 눈 오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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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포내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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