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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Feb 12. 2016

[포토에세이] 그런 사람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그런 사람>



그동안 잘 지내셨는가. 보건진료소에 오신 박 씨 아주머니가 설 연휴 동안 손윗동서와 겪은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전생(前生)까지 들먹이며 '갑질'을 하고 떠난 부자 형님에게 당한 서러움을 토로하고 있었다. 퇴근 무렵이었다. 나는 말 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시간이 길어지고 마음 문까지 열린 박 씨는 그동안 고였던 눈물을 왈칵왈칵 쏟고 있었는데. 인기척에 진찰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대학원 동기생 그(녀)가 들어선다. 아니, 이게 웬일이신가.

상담을 마무리하고 읍내로 나와 그(녀)와 저녁 식사를 함께 하였다. 읍내 반딧불시장 골목 안에 있는 단골 보리밥집으로 갔다. 푹 퍼진 거무퉤퉤한 보리밥 위로 모락모락 아지랭이꽃이 핀다. 쫑쫑 썰어 얹은 초록 봄동에서는 샛찬 봄기운이 느껴진다. 금방이라도 고개를 치세울 듯 싱싱한 콩나물, 고명으로 얹은 김가루, 그 아래에 감추어진 꼬신 참기름과 빨강 고추장. 무주식 보리밥이 푸짐하다.

쓱쓱 비벼 한 숟가락 떠먹으니 그(녀)와의 만남처럼 오래간만이라 참으로 해후가 구수하다. 멸치로 우려낸 육수에 금방 삶아 건진 삼단같은 굵은 국수를 적신다. 3년 전 나는 석사과정을 마쳤다. 지도 교수님의 추천과 동료들의 권유가 있었지만 여기까지 온 것도 내게는 할 수 없는 자가 해낸 기적같은 일이었노라고,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박사과정에 진학하지 않았다. 내 앞에 앉은 그(녀)는 며칠 후면 간호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녀)는 그동안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어 도저히 숨이 막혀 살 수가 없을 것 같아 무주에 왔노라고 했다.

굳이 속 깊은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가슴까지 컹컹 울리는 기침 소리와 초췌한 모습으로 그(녀)의 보이지 않는 몸 수고 마음 수고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녀)는 강의를 주업으로 삼으려 한다. 교수가 꿈인 것이다. 그런 그(녀)가 학위는 그저 어찌 보면 운전면허증에 불과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논문 쓰기 고군분투, 석사 학위 과정에서는 논문의 논자도 모르니 어벙벙하게 썼으나 박사 과정에서는 더욱 질적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심적 부담도 있더라고 덧붙였다.

연구 계획서와 무수한 고민, 지도교수님의 예리한 칼질, 계속되는 문헌 고찰과 통계 점검, 이어지는 논문 수정. 심사 과정에서의 좌절감, 일어서는 과정에서 밤새우기, 같은 길을 가지는 않았으나 충분히 공감한다고 맞짱 하였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데도 결과는 늘 만족스럽지 못하여 괴롭던, 나의 석사 과정의 공부와 논문 투고 과정들이 오롯이 되살아났다.

선생님, 무주는 내 고향도 아니고, 친척이 살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내가 왜 무주가 생각났을까요. 마치 고향에 온 듯 조용하고 가볍고 편안합니다. 바람도 좋고, 공기도 너무 좋아요. 무주 땅을 밟으니 주사 한 방, 약 한 알 먹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다 나은 기분이네요. 대전에 오시면 꼭 연락하세요. 다시 만나게요. 그(녀)와 나는 전생에 무슨 인연이었을까.

시댁의 조상 중에 무당질을 하다 죽은 어른이 있었다. 네가 지금 그들을 대신하여 죗값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해라. 너의 의지나 뜻대로 삶을 살 수 없다. 네 신랑이 알코올 중독자가 된 것은 그런 이유이다. 신랑에게 잘 해라. 소장님! 명절마다 동서랑 만나면 늘 이런 식입니다. 신랑과 살면서 얼마나 고통을 당했는지 아십니까? 왜 나의 힘든 것에 대한 위로를 받지 못 하는 겁니까.

내가 박사학위를 받으면 이유를 알 수 있을까. 아니, 박사가 아니라 박박사 학위를 받는다면 박 씨 아주머니의 삶에 위로를 얹어줄 수 있을까. 나는 내가 누군가를 위로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점점 알아가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간호사가 행사할 수 있는 묵비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가슴에 담아둔 이야기를 덜어내고자 하는 어르신들과 대상자들의 이야기를 말없이 그저 들어줄 뿐이다.

잘 익어 푹 퍼진 밥 위로 김이 솟구친다. 누군가에게는 금방 있다가 사라질 밥의 안개 같을지라도, 따스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쫑쫑 썰어 얹은 초록 봄동처럼 때로는 지친 누군가에게 생기(生氣)를 불어넣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금방이라도 고개를 치세울 듯 싱싱한 콩나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끔은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김가루 아래 감추어진 꼬신 참기름과 고추장 같은, 맛을 아울러 조화로 다스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렇게 오늘도 나는 가운을 입는다.

진료실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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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군 부남면,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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