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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Apr 24. 2016

[포토에세이] 다 늙어빠진 얼굴은 찍어서 뭣허게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다 늙어빠진 얼굴은 찍어서 뭣허게>


폐렴으로 대학병원에 두 달 정도 입원했던 김 씨가 보건진료소에 오셨다. 머지않아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어르신이다. 그 해 겨울에 마을 사람들이나 나도 김 씨가 건강을 회복하여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것이라고는 희망하지 않았다. 노환에 폐렴이었으니 건강해질 가능성에 무게를 두지 않을 까닭이었다.


김 씨에게 어디가 아파서 오셨는지 문진(問診)부터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인데, 나는 반가운 마음에 물부터 끓였다. 김 씨가 좋아하는 커피를 저어 건네며 퇴원을 축하하였다. 두 손으로 공손하게 컵을 들고 마시는 어르신의 모습은 말로 표현 못 할 경건함 그 이상이었다. 혼잣말처럼 김 씨가 말씀하셨다. ‘살아나서 이것을 다시 마시다니!’


어쩌면 이 어르신을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조바심이 나의 마음 가운데 일어났다. 책상 위에 있던 카메라를 들었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버님, 얼굴 사진 좀 찍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김 씨의 귓가에 손을 모아 큰 소리로 양해를 구하였다. ‘다 늙어빠진 얼굴은 찍어서 뭣허게? 아무 쓰잘 때기 없는디’ ‘아버님이 다시 건강하게 돌아오셔서 감사해요’ ‘그럼 어디 한 번 찍어보시게’. 파인더 속으로 김 씨가 들어왔다.


후후 불어가며 마시는 커피가 허물어진 치아 사이로 흘러나온다. 눈을 감기도 했다가 뜨기도 했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기도 했다가 숙이기도 했다가. ‘어이쿠 이게 나여? 내가 이렇게 늙었나’. 보건진료소에 오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그렇게 사진에 담기 시작하였다.


왕진(往診)을 위하여 마을에 출장을 나가는 경우에도, 논두렁 밭두렁에서도, 낮잠을 즐기는 정각에서도 촬영은 계속 되었다. 처음에는 카메라를 부담스러워하기도 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어르신들은 결과에 즐거워하셨고, 누구는 찍고 나는 왜 안 찍어주느냐며 은근한 항의를 하는 분도 계셨다.


이백 여명이 넘는 어르신들의 얼굴과 오래된 생활용품들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다. 다 늙어빠진 얼굴에서 삶을 읽을 수 있었다. 고목에서 연한 순 같은 꽃이 피는 것을 보았다. 그 후 ‘포내리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사진전시회를 열었고, 살아온 이야기와 함께 책으로 묶었다. 그것이 사진집 ‘포내리 사람들’이다.


아름다운 풍경, 아름다운 꽃, 아름다운 모델, 먹음직스러운 음식 앞에 서면 마치 국민의례라도 된 것처럼 누구나 사진을 찍는다. 즉석에서 결과를 보며 환호하고 공유하기도 한다. 그만큼 사진은 일상 속으로 깊이 들어왔다.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듯 의미 있는 사진을 담아내는 일, 그것은 어쩌면 늙어지도록 사진가로서 이어가야 할 나의 사명이 아닐까.                 


이 글은

<좋은 생각, 5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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