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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Apr 25. 2016

[포토에세이] 개-에 대한 단상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개-에 대한 단상(斷想)>



“소장님요~! 쑥개떡 만들었습니다. 차 한 잔 하시게 잠깐 다녀가이소.” 우리 마을 산야초 효소 여왕 대구댁이다. 아침나절에 그녀가 보건진료소로 전화하셨다. 점심 즈음에는 “소장님! 이거, 거시기, 머시냐, 개두릅인디요, 만치는 안 해, 걍 한 번 잡솨보라고요.” 아랫 마을에 사는 천상 농부 여수댁이 보건진료소에 오셨다. 봄벹에 그슬리민 보단 님도 몰라본단디, 손등까지 까매진 여수댁이 쑥스러운 듯 꺼먹 봉지를 진찰대 위에 놓는다.


복숭아꽃 살구꽃이 몸써리 나게 슬프고로 화산(花山)이더만, 이자는 차차 청산(靑山)이고만이라. 진달래꽃 효소가 온수(溫水) 속으로 연분홍치마처럼 퍼지더라니, 머금은 찻물 사이로 성(盛)한 봄이 간드러지게 녹아든다. 대구댁의 손맨치로 투박하게 빚은 쑥개떡을 하나 집어 드니 내 앉은 곳이 천상(天上)이라, 천하(天下)에 무엇이 부러울까. 점심에는 봉지에 있던 그것을 다듬어서 데치가꼬 초꼬치장에 찍어 한 입 잡솨봉께,


쌉쌀달큰한 범우주적 엄나무 기운이 나를 덮는구나. 아찔하다, 봄의 절정! 참말로. 아쉬운 봄아. 너를 어이 보낼꼬 하였더니 내 이제 눈물을 삼키누나. 이만하면 되았지. 또 보자꾸나. 해마다 봄이면 이것들을 먹었을 것인데, 내 나이 쉰이 되어서야, 왜 하필이면 개떡일까, 개두릅일까. ‘개’에 대하여 ‘왜’가 이제서야 궁금해졌다. 떡이면 떡이지 왜 개떡인가, 두릅이면 두릅이지 왜 개두릅인가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뿐 아니다. 강력한 고미(苦味)로 잃었던 입맛을 살려주는 이른 봄의 그것은 ‘개미나리’이고, 진달래꽃 진 자리에 피어나는 늦은 봄의 그것은 ‘개꽃’이 아니던가. 미나리과에 속하면 다른 미나리이지, 왜 개미나리이며, 다른 꽃이라면 그냥 무슨 꽃이지 왜 개꽃인가 말이다. 나른한 오후였다. “남도로 꽃구경 떠난 갱수기 즈메가 개밥 주라고 전화를 했길래, 개막에 갔다가 느닷없이 개에 물렸다.”는 이 가 할매가 보건진료소에 오셨다.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지으며 여쭈었다. “엄니, 요새 제가 궁금한 것이 있는디요!” 묻자마자 할매의 답에 신세계가 열리는 거라. “아따, 소장님은 지금까정 그것도 몰랐단 말이오? 떡처럼 생겼는디 떡이 아닝게 개떡이지요, 진짜 두릅이 아닝게 개두릅이고. 그런 말도 안 들어봤능가 베. 옛날에 어느 선비가, 네가 참말로 나리꽃처럼 생겼구나. 어디보자. 그란디 자세히 봉께 참나리꽃이 아니더랴. 그 꽃이 뭔지 알어요? 그것이 개나리여! 아무튼 어릴 적에 어른들한테 들은 소리여!”


흘리듯 놓고 가신 말씀에 귀가 솔깃해진다. 먼지만 수북하게 뒤집어쓰고 있던 두툼한 우리말큰사전을 꺼내서는 문제의 ‘개-’에 대한 탐색을 시작하였다. 개ː-[접두] ‘야생의’, ‘마구 되어 변변하지 못한’의 뜻으로 쓰이는 말. 예) ∼살구, ∼죽음, ∼꿈(새우리말 큰사전, 삼성출판사). 개-[접사] 1. ‘야생 상태의’ 또는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2. ‘헛된’, ‘쓸데없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3. ‘정도가 심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국어사전, 네이버).


일부 명사 앞에 붙어서 ‘참 것이 아닌’, ‘좋은 것이 아닌’, ‘함부로 된’, ‘값어치 없는’ 등의 뜻을 나타내는 접두사(새국어사전, 동아출판사)라는 것도 재확인하였다. 먹는 꽃이라는 뜻으로 '진달래'를 다르게 부르는 말이 '참꽃'이다. 진달래와 상대되는 꽃이 '개꽃'인데 개꽃은 먹지 못하는 꽃이다. 즉, 개꽃은 다시 참꽃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다. 살구와 개살구가 그러하고, 미나리와 개미나리가 그러하다.


‘헛되고’, ‘쓸데없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하나로 상반되는 사물을 분별하여 인식했고,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구 되어 변변하지 못한’ ‘야생의’ ‘값어치 없는’ 것에게도 선조들은 관용과 사랑을 듬뿍 용납한 지혜의 아우름을 볼 수 있었다. ‘개살구도 맛들일 탓’이라는 속담이 그러하고, ‘음식 같잖은 개떡수제비에 입천장 덴다’는 속담이 그 예이다.


시고 떫은 개살구도 자꾸 맛을 들이면 그런대로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니, 모든 일은 자기가 하기 나름이라는 교훈을 시디신 개살구에서 건지셨고, 변변치 아니하다 하여 우습게 알고 대했다가는 뜻밖에 큰 손해를 입는 경우가 있으니 매사에 신중을 기하라는 가르침을 개떡수제비에서 건져 올리셨다. 쑥개떡과 개두릅을 먹으며 개ː-[접두], 개-[접사]의 참 뜻을 이제야 알았으니,


우리 집 아이들 표현대로,

오늘 나는 참말로

‘개-좋은’,

‘개-이득’!

.

득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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