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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Sep 30. 2015

[포토에세이] 어떤 소동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어떤 소동>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들을 때, 우리는 아침 식사 중이었다. 창밖으로는 무성한 초록 햇살이 반짝이고, 나슬나슬한 바람이 식탁 위를 넘나들었다. 입안 가득 상추쌈을 먹다가 잠시 조용히 해보라는 손짓까지 해가며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저 학생의 부모님은 얼마나 행복할까. 뉴스의 주인공과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이 이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하버드와 스탠퍼드대학교에 동시에 합격했고,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를 곧 만나게 될 것이라는 인터뷰에 우리 부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박수를 쳤다. 컴퓨터와 수학 분야의 ‘천재’라는 김정윤 양에 관한 뉴스이었다. 천재의 입학 허가를 위하여 기존의 교칙까지 수정한다는 선진국, 역시 그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남편과 나는 엄지까지 치켜세웠다.


미국 최고의 공립 과학고인 토머스 제퍼슨 과학고등학교 12학년(한국의 고등학교로 계산하면 3학년)에 다니고 있다는 김정윤 양. 우리 둘째 딸이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라 그녀의 이야기는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녀의 스펙은 진정 모든 부모의 로망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감히 오를 수 없는 나무만 쳐다보는 격인데. 미국 수학능력시험 (SAT) 만점, 수학경시대회 수상까지.


우리로 말하면 수능 만점, 내신 만점에 각종 경시대회에서 대상까지 받은데다가 작년 5월에는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주최한 프라임 USA 리서치에서 ‘컴퓨터 연결성에 대한 수학적 접근’이란 연구로 저명한 교수들의 관심을 끌었다더니.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뉴스에서 이 모든 것이 사실과 다른 거짓이었음이 밝혀졌다는 라디오 뉴스를 들을 때, 우리는 아침 식사 중이었다.


여전히 창밖으로 무성한 초록 햇살이 반짝이고, 나슬나슬한 바람은 식탁 위를 넘나드는데. 둔중한 망치로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 이러할까. 맛있게 음식을 씹다가 예상치 못한 돌을 깨문 것 같은 황망함이 밀려왔다. 이쯤 되니 아침마다 들려오는 뉴스에 일희일비( (一喜一悲)하는 우리의 가벼운 일상. 화장을 곱게 하고도 감추었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것 같아 부끄럽기만 하다.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한국인을 연결하여 인터뷰하는데 어디 학교뿐일까, 미국 전반에서 우리를 비웃는 조롱과 비아냥이 여기저기에서 들려 오는듯하다. 소장님! 우리 동네에도 메루치인지 뭔지 하는 염병에 걸린 사람이 드디어 생겼다면서요? 기침을 하도 해싸서 병원으로 갔다는디. 보건소에서 치료를 안 해주고 대전 큰 병원으로 내쫓았다고 하더만요. 에이~ 아니긴요! 다 아는 이야긴디.


보건소에서 그 집에 직원 여럿이 나와서 청소도 하고, 구석구석 소독까지 하고 가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던디요! 그 사람이 참말로 병에 걸린 거 맞아요? 누구예요? 감추지 말고 가르쳐주세요. 예민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날마다 듣는 뉴스가 메르스이다. 시각을 다투며 보도되는 내용을 보노라면 누구의 말이 옳은지, 누구의 말이 그른지, 누구의 말을 믿고 따라야 하는 건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정부의 발표가 앞뒤가 안 맞는다고 성토하고, SNS의 타임라인에서는 자신의 소견이 옳다는 양 바쁜 업데이트가 우왕좌왕이다. 김정윤 양의 이야기와 마을 어르신을 생각한다. 유별난 일류대병과 정확한 정보를 원하면서도 정작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면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 불신. 거짓말을 참말로 믿고, 참말을 거짓말로 믿어버리는 뒤바뀐 현실. 앞뒤 사정은 더 들어봐야 알 것이나,


정윤 양의 사태도 마을에 퍼진 소문도 처음에는 누군가의 작은 거짓말로부터 시작된 소동일 것이다. 사람들은 왜 스스로 거짓 상황을 만들고 그 안에 자신들을 가두는 것일까. 오보(誤報)를 생산한 언론도 탓해보고, 바람이 흘린 이야기를 사실인 양 믿어버리는 어르신들 탓도 해본다. 언론사와 부모의 사과, 아니면 말고라는 식의 생각이 거짓말을 정당화할 수 있는 도구일 리는 없다.


명문대 합격을 위한 비정상적인 방법이,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많아질수록 우리는 그만큼 황폐해질 것이요, 결국 피해는 우리의 몫일 것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침 뉴스를 무심하게 듣는다. 식탁에 둘러앉은 쌍둥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질문하였다. 얘들아! 엄마가 한 가지 물어볼게. 거짓말하는 것이 나쁠까, 공부를 잘 못하는 것이 나쁠까. 엄마, 뭐라고요? 엄마, 한 번 더 이야기해 주세요.


우리는 아침 식사 중이었다. 여전히 창밖으로는 무성한 초록 햇살이 반짝이고, 나슬한 바람도 여전히 식탁 위를 넘나든다. 아이들이 머뭇거린다. 뭐라고 대답할까. 쌍둥이의 눈을 바라보다 남편과 나는 말없이 된장국에 적신 보리밥을 한 입 떴다. 입안 가득 퍼진 구수한 된장국 속 두부 사이로 청양고추 한 조각이 씹힌다. 이런! 아침부터 눈물 돋게 하네. 이런 참사(慘事)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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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림공원,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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