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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Sep 30. 2015

[포토에세이] 지푸라기와 운동화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지푸라기와 운동화>

 


- 엄마! 신발을 신을 때마다 발가락이 아파. 진짜 아프다니까요.


쌍둥이가 신발이 작다고 투정이다. 아이들은 내게 몇 번이나 발가락이 아프다면서 새 신발을 사달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조금 더 신어도 될 것 같아 아이들의 요구를 흘려 들은 것이다. 며칠 후 짜증 섞인 말투를 들으며 발을 만져보니. 얘들아! 신발 가게에 가자! 형형색색의 신발들은 가게의 바닥과 벽면에서부터 천정까지 진열되어 있다. 슬리퍼와 고급 기능성 신발까지 신발의 ABC가 총망라되어 있었다. 나선 김에 아이들 신발과 함께 물에 젖어도 쉽게 물이 빠지고, 금방 말려서 신을 수 있는 여름용 아쿠아 운동화 한 켤레를 덩달아 추가하였다.


물건을 구경하는데 어린 시절 운동화에 얽힌 추억이 떠올랐다. 검정고무신 뒷부분이 갈라져 무명실로 꿰매어 신었던 시절, 그것도 모자라 구멍난 곳에 다른 천을 덧대어 기워 신던 시절, 운동화 한 번 신어보는 것이 소원이던 시절. 어머니가 장에 가려고 며칠 전부터 짐을 챙기신다. 나는 어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새 신발을 사달라고 떼를 쓴다. 어머니는 지푸라기를 가지고 와서 발 뒤꿈치부터 엄지발가락 앞까지 발 치수를 잰 후 그것을 쌈지에 넣으신다. 장에 가신 어머니가 돌아오기만을 온종일 기다린다. 산모퉁이를 돌아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버스가 가장 잘 보이는 언덕에 앉아 있다가 버스가 보이기 시작하면 앞 마을 정류장으로 뛰어갔었어.


그런데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왜 그리 서러운 눈물이 나던지. 늦게 돌아온 어머니는 서둘러 보따리를 푸는 나에게 조용히 말씀하셨다. 야야, 운동화 가게에 들렀더니 그 댁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더라. 글쎄 사람들이 모두 건(巾)을 쓰고 있는데 어찌 운동화를 살 수 있었겠느냐. 신발은 다음 장날 사다 주마. 나는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운동화 가게에 초상(初喪)이 났다는데 신발 운운하는 것은 왠지 해서는 안 되는 일처럼 느껴져 더는 조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장에 가시려면 적어도 열흘, 아니 그 이상을 기다려야 하니. 시간이 지나면 운동화 생각은 서서히 잊히게 마련.


어머니가 다시 짐을 챙기신다. 엄마! 이번에는 꼭 사올 거지? 그 사이에 발이 얼마나 컸나 보자. 어머니는 다시 지푸라기를 가지고 와서 발뒤꿈치부터 엄지발가락 앞까지 또 치수를 잰다. 지푸라기를 잘라 지갑에 넣으신다. 종일토록 어머니를 기다린다. 장에서 돌아온 어머니를 다시 만나면, 야야, 오늘 운동화 가게에 들렀더니 이번에는 그 댁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더라. 글쎄 사람들이 모두 건(巾)을 쓰고 있는데 어찌 운동화를 살 수 있었겠느냐. 다음 장날 사다 주마. 길지 않은 시간에 연이어 일어난 초상집의 슬픔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제야 나는 안다. 내 낡은 검정 고무신이


어머니 보시기에 아직은 신을 만하다는 나름의 판단을 하고 계셨다는 것을. 어머니는 자꾸만 보채는 어린 것들을 달랠 방법이 없어 지푸라기로 발의 치수를 재고, 신발가게에 들려보겠다는 약속으로 우리의 고집을 달래셨던 것이 아니었을까. 한 뼘도 안 되는 어린 발을 만지며 우리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것을 손에 쥘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모자람이 없는, 아니 모든 것이 넘치는 세상이 되었다. 한편에서는 요즘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결핍, 그 자체라는 역설도 있다. 아이들은 모자람 없이 키우니 ‘모자람’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란다고 한다. 가난과 결핍이 남긴 추억이 어찌 이뿐이랴마는.


산모퉁이를 돌아오는 버스를 기다리고, 어머니를 기다렸던 시간 속에 부족함이 빚은 추억이 깃들어 있음을 본다. 운동화 한 켤레를 갖기 위해서는 장날을 여러 차례 기다려야 하고, 본의 아니게 어린 것들에게 선(善)한 거짓말로 여러번 장례를 치러야만 했던 어머니. 집으로 돌아온 나는 신발장을 열어보았다. 계절 따라 바꿔 신을 수 있는 구두와 등산화, 남편과 나, 아이들의 신발까지, 신발장에 신발이 가득하다. 용도에 따라 골라 신을 수 있는 구두와 운동화들. 나를 보며 말을 건네는 듯하다. 우리 사는 세상, 넉넉함도 모자람도 신발 넓이만큼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아이들은 신났구나. 엄마! 신발이 정말 멋지고 좋아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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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괴목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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