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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Mar 21. 2016

[포토에세이] 구치소에서 온 편지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구치소에서 온 편지>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생면부지의 모르는 분에게 용기 내어 편지를 드리는 것이 ‘누’와 ‘폐’가 되는 것은 아닐까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 그지없습니다. 큰 혜량으로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50대의 남성으로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40개월이 넘도록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지방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대기업 신입 사원으로 입사하였습니다. 25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전무이사로 승진, 수조 원의 매출실적을 올리는 등 나름 능력을 인정받아 일찍이 임원으로 승진하여 살아왔습니다.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사업 준비 중이었는데...


이곳 구치소에서 긴 40개월이 넘는 시간을 2.7평의 감옥 방에서 지내는 동안 저의 분노와 스트레스, 화는 극에 달하였고, 이제는 국가가 싫어졌습니다. 평생을 낮추고 봉사하며 정직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논어의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을 실천 덕목으로 살아온 인생의 후반기에 국가는 죄 없는 한 국민을 무참하게 짓밟아버린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 후 정치인, 교수, 기업가의 꿈을 접고, 조부님과 부친의 훈육에 따라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왔습니다. 봉급 생활하며 조용히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자본가의 탐욕과 국가의 폭력에 의해서 저에게 죽음의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날마다 무던한 인내와 끈기, 수련으로 묵상을 실천하고, 고전, 철학, 인문학, 종교서적을 탐독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날마다 전화를 하시는 부모님의 애정과 가슴 아파하는 친척들의 슬픔, 아흔을 넘어 백수에 이른 아버지가 한층 더 그리울 뿐 아니라 직접 뵙지 못하는 가슴 아픈 사연을 누가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겠습니까. 소장님의 신문기사와 사진을 보는데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나 깨나 자식을 위해서 가슴 졸이는 사진 속 부모님의 참모습, 시골에 계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내 가슴속에 불효자식의 한으로 다가왔습니다.


신문을 보니 소장님께서는 고향으로 돌아가 어르신들과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하며 체험하고 나누며 살고 계시는군요. 그렇게 살고자 했던 저의 희망도 꿈도 잠시 접어두고 이곳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고난 속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부모님에 대한 불효라고 생각합니다. 결과와 과정이야 어떠하든 현실의 몸은 여기 있으니 어찌 죄인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님의 마음과 시골마을의 향수 섞인 아름다움이 소장님께서 직접 체험하고 대담하며 담으신 <포내리 사람들> 에세이집에 가슴 저리게 담겨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장님의 에세이집 한 권을 구하고 싶어서 낯살스러운 줄 알면서도 용기 내어 편지를 드립니다.


다소 불편하시고 애로사항이 있으시더라도 소장님의 포내리 휴머니즘 에세이집 한 권을 저에게 보내주신다면 큰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꼭 한 때의 좌절과 절망에서 신음하고 있는 저에게 재판 결과에 관계없이 무죄가 선고되겠지만, 1심 형기가 거의 지나가버렸기에 곧 사회로 되돌아가서 부모님에 대한 불효를 다시금 효도하는 마음으로 개전할 수 있도록 사회공동체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관심과 배려를 베풀어주신다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끝으로 소장님의 항시 웃는 모습과 포내리 어르신들의 건강한 삶, 행복한 웃음이 날마다 가득하시기를 빌겠습니다. 2016.3.13., **구치소 3***번, *** 드림


업무 출장으로 마치고 사무실에 도착하니 우표를 붙인 한 통의 손편지가 도착해 있었다. 나는 편지를 끝까지 다 읽기도 전에 내용보다는 이 사람이 무엇을 요구하는 것인지에 더 관심이 쏠려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런 편지를 받았는데, 너(당신)의 생각은 어떠냐고 몇몇 지인에게 묻기 시작하였다. 결정은 내가 해야 하면서도 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던 것일까. 구치소에서는 책을 사서 볼 수 없나요? 인터넷 등으로 얼마든지 사서 볼 수 있을 텐데요. 책 값도 얼마 안 되는데 굳이 저자를 통해서, 그것도 무료로 얻으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군요. 편지 내용만으로는 사람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지하철 같은 곳에서 모르는 사람이 가슴에 호소할 때, 모르겠어요. 저는 그냥 거부감이 생기더군요. 세상에는 희한한 사람들이 많아요. 악연이 생길 수도 있으니 조심하세요. 안 보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라면 안 보내겠습니다(P**, 여/48세 외)


구치소는 무조건 보내주세요. 우리 출판사로도 이런 류의 편지가 많이 옵니다. 그분들은 엄청 상한 마음 상태이고, 어찌 보면 가장 겸손한 순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어떤 사람은 꼭 보내달라고 우표까지 동봉하여 보내기도 합니다. 글의 흐름으로 보아 2.7평에 묻어나는 감사가 보입니다. 정말 여러 가지 일을 겪는군요. 결론은 책 한 권 보내달라는 편지인데, 이렇게 길게 쓰다니. 포내리 어르신들 사진에서 늙으신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셨나 봅니다. 보내주세요. 이분은 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책을 읽을 것입니다(C**, 남/50세 외).


같은 질문인데도 의견은 다양하고 분분했다. 내가 구치소, 감옥, 교도소 등 그 낯선 곳에 대하여 아는 것이라고는 영화를 통하여 얻은 경험이 전부이다. 무섭고 두려운 곳, 따뜻함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곳이라는 편견을 갖게 되었다면 그것은 고른 선택을 하지 않은 나의 영화 편력이 낳은 오해일진대. 보내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이고, 보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자꾸만 물어본다. 길게 고민할 필요가 있나 하면서도 묻는다. 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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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선암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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