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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Apr 05. 2016

[포토에세이] 사진은 폭력이다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사진은 폭력이다>


궁궐의 남쪽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했던가.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정원이었다는 것도, 그토록 넓은 것도, 키와 색이 다른 종류의 연꽃들이 흐드러지게 피는 곳인 줄도 사진을 배우기 전에는 몰랐었다. 한여름 땡볕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을 담느라 몰입하였다. 결과를 보며 눈(目)으로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구나 감탄하였지만 꽃 촬영을 위한 공부와 사전 준비가 충분하지 않아 겪은 한계 앞에서는 좌절하였다.


소위 ‘국민 포인트’라 불리는 곳을 다녀보면 알게 된다. 해외 유명 브랜드의 삼각대와 가방, 붉은 띠, 흰 띠를 두른 렌즈 테두리만 보아도 취미 이상의 전문 사진가라 불릴만한 중후함을 가진 사람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는 것을. 무엇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허둥대던 나는 사진가 옆에서 그들의 메타정보를 곁눈질하거나 그와 눈 맞추고 있던 연꽃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가 삼각대를 접으면 눈치껏 다가가 삼각대를 펼치곤 하였었다.


이듬해, 서울에 다녀오던 중 다시 그곳에 들렀다. 렌즈 속으로 궁남지의 포룡정(抱龍亭)이 들어왔다. 늦은 오후 야트막한 햇살이 날개를 접고 있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망원렌즈를 좌우로 옮기는데 모자를 눌러쓴 한 남자가 파인더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자신의 삼각대로 새하얀 연꽃을 잎사귀 뒤로 밀어 넣고 있었다. 꽃은 싫다는 듯 이내 고개를 치세웠지만 그의 삼각대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나는 그날 보지 말았어야 할 꽃뭉치의 참수형을 보고야 만 것이다.


그녀는 백일홍과 꽃 위에서 꿀을 따고 있는 박각시나방을 촬영하고 있었다. 나방이 이쪽에서 핀을 맞추면 저쪽으로 도망가고 저쪽으로 핀을 맞추면 이쪽으로 도망한다. 박각시나방에게 잠깐이라도 좋으니 제발 가만히 좀 있어달라는 주문을 되뇌었지만 날갯짓 하기에 바쁜 나방이 그녀의 마음을 알 턱이. 수백 장의 연사(연속 촬영)를 날렸지만 나방과 끝내 눈을 맞추지 못한 그녀는 화가 치밀었다고 했다. 촬영에 실패했고, 그녀의 손에는 에프킬라가 쥐어져 있었다고 하였다.


일 미터도 안 되는 백일홍과 렌즈 사이에 벌어진 전쟁의 결과 사체(死體)가 된 나방을 본 그녀는 도대체 사진이 무엇이길래 자신을 이토록 잔인한 폭력가로 변하게 만드는가, 자괴감에 빠져 꽃 사진 찍기를 접었다는 고백을 나누어주었다. 야생화를 찍은 후 남들은 찍지 못 하도록 촬영한 꽃을 뽑아버리거나 꺾어버린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때만 해도 설마 하며 나는 그런 뉴스들을 믿지 않았고 부정했다.


자신이 담고 싶은 사진 작품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유명 금강송 군락지에서 기백 년의 수령(樹齡)을 넘긴 소나무와 가지를 잘라내고 그루터기만 남긴 사진작가의 이야기가 기사화되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많은 사람의 지탄을 받았던 그가 이번에는 소나무 사진들을 모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작품전시회를 하려고 했다고 한다. 전시관 측에서는 부적절하다는 판단에 따라 대관을 취소하겠다고 했는데 그에 응할 수 없다는 작가의 입장이 상반되어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거나 꽃을 보면 환호한다. 사라지는 풍경이 아쉽고 지는 꽃이 안타까워 아름다운 모습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 카메라에 담을 것이다. 우리는 남보다 더 아름다운 사진, 남보다 더 매혹적인 사진을 담고 싶어 한다. 나도 그렇다. 그러나 촬영 대상을 학대하면서까지 얻어낸 사진이라면 그것은 과연 기쁨일까. 원하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하여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새끼를 유괴하고, 둥지를 노출시켜 결국 천적의 먹잇감이 되게 하고, 그것을 바라보고 어찌할 바 모르는 어미 새의 모성애까지 악용하는 낯 뜨거운 폭력.


산과 들의 나무와 풀이 겨우내 무거웠던 침묵을 깨고 지천으로 아우성이다. 사진 생활로 처음 방문하는 지역의 역사와 풍경, 꽃과 나무를 알아가는 즐거움도 많이 있지만 굳이 알고 싶은 않은 부끄러움들도 때로 눈에 띈다. 인간의 탐욕이 빚은 폭력이 아닐까. 한 송이 목련을 사진에 담기 위하여 삼각대를 펼친 자리, 혹시 내 발밑에 키와 색이 서로 다른 작은 꽃들이 짓밟히고 있지는 않은지, 조심스레 살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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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염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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