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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Apr 15. 2016

[포토에세이] 오랑캐꽃을 보며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오랑캐꽃을 보며>


마을 언덕이나 길가에서, 잔디밭 주위에서 봄이면 흔히 볼 수 있는 제비꽃입니다. 이 사진을 모 갤러리에 포스팅했더니, 어느 회원이 '어머! 제가 좋아하는 오랑캐꽃이네요!'라고 댓글을 적었더군요. 저는 그 답글을 보면서 오랑캐꽃? 어머나, 이거 제비꽃 아닌가? 내가 잘 못 알았나 보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곧 신문 기사와 백과사전 등을 검색하여 보았습니다. 저는 제비꽃을 이르는 또 다른 이름이 그렇게나 많은 줄 몰랐습니다. 장수꽃, 병아리꽃, 오랑캐꽃, 씨름꽃, 앉은뱅이꽃이라고도 한다는군요. 이 꽃이 필 무렵이면 어김없이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노략질한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기사가 있고요, 이완근의 문학, 이용악 시인의 <오랑캐꽃> 시도 있었습니다. 그 시에는 긴 세월 오랑캐와 싸우며 살아온 우리 민족의 정서를 읊고 있었습니다.


힘없는 민족의 비참한 운명, 힘없는 민족이 느끼는 침략자의 무서움, 수난당하는 민족의 연민과 슬픔을 제비꽃에 투영하였으니, 아름다운 보라색 색감을 가지고도 슬픈 꽃으로 기억되는 데에는 나름의 역사적 반영과 투사가 있었구나, 오늘에서야 새삼 배웠답니다. 오랑캐가 우리의 적이었다면, '오랑캐꽃'은 적이 아닌 우리 민족을 말함이라는 역설이 성립되겠지요.


키 작은 야생화 앞에 무릎을 꿇고, 셔터를 누르기 전, 내가 이 녀석에 대하여 아는 것이 무엇인가 돌아보면 십중팔구, 나는 너의 이름도 모르고 있구나. 그러면서 낯짝도 좋지, 사진을 찍겠다고 엎드렸으니, 네가 나를 볼 때에 내가 얼마나 같잖을까나. 누구는 서른다섯 살에 애기똥풀을 알았다는데. 나는 마흔아홉이 넘어서야 네가 오랑캐꽃인 것을 알았으니.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 애기똥풀, 안도현




사진은 세상을 보는 마음과 인식의 창이다. 그 창을 통해서 내가 세상에 끌려가고 세상이 내게로 끌려오기도 한다. 사진에는 이렇듯 세상과 내가 하나 되는 소통의 매듭이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나쁜 사진이란 게 없고 하잘것없는 사진이라 해도 찍은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으니 소중할 따름이다(한장의 사진미학, 진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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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포내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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