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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Apr 19. 2016

[포토에세이] 산 효자 죽은 효자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산 효자 죽은 효자>


“동서! 그동안 수고 많았어. 아버님 제사는 내가 모시고 갈게.” 장례식을 마치고 가족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형님이 말씀하셨다. “제수 씨! 아버지를 보내드린 것은 마음 아프지만, 하늘의 뜻이니 받아들여야지요!” 시숙어른이 말씀하셨다. 아주버니는 일어나더니 가족을 향해 인사를 하고, 어린 조카와 직장인이 된 조카들까지 악수를 한 뒤 수고에 격려해주셨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데 형님이 아버님의 제사를 모셔가겠다는 선포를 하신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이쿠. 아버님 살아계셨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내려오시지, 돌아가시니까 제사를 모셔가겠다고? 어이없군!' 그건 나도 예상치 못한 감정이었고 가시 돋힌 반응이었다. 시부모님은 줄곧 우리 부부와 함께 생활해 오셨다.


주말부부이었던 나와 남편은 아이를 맡긴 탓에 토요일이 되면 부모님을 뵈러 가거나, 부모님께서 우리가 사는 곳으로 내려오셨다. 주말이든 주중이든 부모님을 쉽게 만날 수 있었던 우리 형편과는 달리, 사업 관계상 주말과 명절이 더 바쁜 형님네는 추석에도 설에도 부모님 생신에도 우리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형님네 사업이 확장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만남은 더 간격이 벌어졌고 어려워졌다. 서울에서 대전이, 서울에서 무주가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울 것이다. ‘형님, 참 이상하시네요. 살아계셨을 때 자주 찾아뵐 것이지, 돌아가시니까 이제 제사를 모셔가겠다고요? 그러시면 안 되지요.’ 나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뭔가가 자꾸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꼬깃꼬깃 눌러가며 애써 고개를 숙였다.


“소장님! 자식이 많으면 산 효자가 따로 있고, 죽은 효자가 따로 있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 형님은 이제 평생 아버님의 제사를 짐으로 지게 된 것입니다. 덕분에 소장님은 짐 하나를 덜게 되었으니 형님보다 훨씬 복이 많구먼. 말씀을 듣고 보니 서운할 수도 있었겠다 싶지마는, 형님이 시아버지의 제사를 모셔간 건 소장님한테는 아주 잘된 일입니다. 암~ 잘된 일이고 말고!”


윗마을에 사는 김 씨 할머니가 보건진료소에 오셨다. 나는 감기약을 지으며 불퉁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김 씨 할머니는 자초지종을 들으시더니 산 효자와 죽은 효자에 대하여 말씀해주셨다. 김 씨 할머니의 말씀대로 나는 정말 짐을 덜게 된 것일까. 생전에 아버님을 모시기 어려웠던 형님네 형편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도 자꾸만 야속한 마음이 밀려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불치병에 걸린 어머니가 잉어를 먹고 싶었지만, 겨울이라 그것을 구할 수 없었다. 그의 아들은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기 위하여 며칠 동안 헤매었으나 잉어를 잡지 못하였다. 소년은 얼음 위에 무릎 꿇고 앉아 강을 향하여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얼음 속에서 잉어가 튀어나왔다. 소년은 그것으로 병든 어머니를 공양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마무리되는 설화(說話)가 있다.


효(孝)를 다하기 위한 지성(至誠)이 감천(感天)한 이야기로, 효를 다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효를 다 해야 한다는 마땅한 도덕을 강조한 이야기일 것이다. 설화 속 소년의 효성(孝誠)과 나의 그것을 어찌 비교할 수 있으랴마는, 형님과 내가 각자의 삶을 이유로 아버님 섬기기를 다하지 못한 일말(一抹)의 죄송함을 갖는 것, 효의 작은 시작이라고 변명을 억지해본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 곁에서 함께 지낸 자식이 산 효자요, 돌아가신 후에 제사로 모시는 자식을 죽은 효자라 부른다는 김 씨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보니, 산 효자요, 죽은 효자라 자처하는 효부(孝婦)를 둘이나 두셨으니 우리 아버님은 행복한 분이실까. 동서가 서울로 올라오든 아니 올라오든 나는 아버님의 제사상에 당신의 정성을 다하겠노라고 말씀하시던 우리 형님.


모양은 다르나 형님과 나의 마음이 아버님을 향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산 효와 죽은 효를 논하기보다 동서지간의 떨어진 선분(線分이 하나의 선(善)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형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년에 또 올게요.'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고, 형님과 다정한 포옹을 나눈 뒤 우리는 그렇게 아파트 주차장을 나설 것이다.


일시적인 서운함이 아버님을 향한 나의 사랑 표현이었노라 해석하며 그날을 꿈꾼다. 약 봉투를 받아 든 김 씨 할머니가 진료실을 나가려다 뒤돌아서시더니 한 마디 툭 던지듯 말씀하신다. “소장님! 그런데 말이지, 죽은 효자는 집집이 있어도 산 효자는 한 집도 없다는 옛말이 또 있어요!” 잔잔해지려는 호수에 돌멩이 하나가 던져진다. 소리없는 파문이 인다. 어머낫! 점점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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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포내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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