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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May 13. 2016

[포토에세이] 옛날에는 그랬어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옛날에는 그랬어>


연일 낯 뜨거운 소식이다. 진료대기실에 앉아계신 어르신들이 TV를 보며 하나같이 혀를 찬다. “저 인간은 도대체 뭘 먹고 살아서 저리 독하까잉? 생긴 건 멀쩡하구마. 참 불쌍하네. 이자 저 놈아는 인생 조졌구마잉.” 피의자를 향하여 분노를 쏟았다가, 피해자를 향하여 애도를 쏟았다가, 마치 옆에 앉은 사람과 이야기하듯 주거니 받거니, 아침 뉴스를 시청한다. 팔순이 넘은 김 씨 할머니가 진찰실로 들어왔다. 감기에 걸렸는지, 며칠째 목이 컬컬하고, 기침이 심하다는 증상과 함께 속시원한 약과 주사로 한 방에 낫게 해달라는 요청을 덧붙인다.


“소장님! 저런 사람은 종자가 다르다고 하더만요!” “그그···글쎄요.” “소장은 모르는가베, 옛부터 말이 있었네!” “무···슨 말이요?” “태어날 때 말여, 몸에 핏자국이 있으면 그 사람은 커서 살인자가 된다는 거시기가 있었당께.” “에이, 설마요.” “어렸을 때 어른들한테 다 듣던 얘기여. 나 젊었을 때 말인디, 옆집 새댁이 산기가 있어서 산파를 했었어요. 시어른은 모두 들밭에 가고, 새댁을 혼자 두고 나올 수 없어서 이래저래 아이를 받았는데, 아이 엉덩이에 도장으로 콱 찍은 것 같은 핏자국이 있는겨. 그걸 보는 순간 그 말이 딱 생각나는 거라.” “핏자국이야 출산하는 산모나 아가들에게 대부분 있는 것, 아닌가요?” “아녀, 그건 달라! 아주 또렷하게 도장을 찍은 것 같았다니께!”


처음 듣는 이야기라 귀를 쫑긋 세웠다.


“할머니가 산파 역할을 하셨던, 그때 그 아이는 훗날 정말 나쁜 사람이 되었나요?” “하하하~ 소장님도 참 순진하기는. 그런 경우는 말여, 방책이 있었지. 말하자면 액운을 없애는 비상 말이여.” “그게 뭔데요?” “산파가 갓난아이를 안고 마루에 나와서 고함을 지르는 거라!” “뭐라고 소리 쳐요?” “동네 사람들! 동네 사람들! 이 집에 살인자가 났소! 동네 사람들! 동네 사람들! 이 집에 살인자가 났소!” “어머나, 그래서요?” “그러면 밭에서 일하던 사람, 논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죄다 호미랑 괭이랑 들고 산모 집으로 달려오는 거라. 막 태어난 것이 뭘 알어? 산파가 아이를 안고 마당 가운데로 내려가면 사람들이 둘러서서 호미랑 괭이로 땅을 뚜드림서 하늘보고 막 소리를 지르는 것이여. 그것이 액땜이여!”


지난 1월에는 안산 다세대주택 인질극 살인범의 실명과 사진이 공개되었다. 며칠 전에는 대부도 토막살인 사건 가해자의 민낯과 이름이 알려졌다. 범행수법이 잔인하고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는 만큼, ‘특정 강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신상을 공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흉악한 범죄자가 아니겠는가라는 추측은 빗나갔다. 피의자 얼굴은 매우 평범하고 살아온 행적도 평범하여 사람들이 더욱 놀라고 있다. 뜨악한 뉴스 앞에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서 누군가는 범죄자가 될 운명을 가지고, 누군가는 선행자가 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믿는 우리 어르신들의 예정설을 듣는다.


호미와 괭이로 땅을 두드리고, 고개 들어 하늘을 향해 외친 주문으로 액운(厄運)을 쫓아내려 했던 것, 삽작문 위에 짚으로 엮은 새끼줄에 숯덩이와 솔가지 등을 매달아 만든 금줄로 삿된 액운을 막고자 했던 것, 이것들은 악(惡)을 거부하고, 선(善)을 수용하고자 했던 그들만의 종교의식이었을 것이다. 안산에서는 범행 동기가 소명되지 않아 수사기관에서도 피의자를 계속 조사 분석 중이라는데. 붉은 핏자국을 지니고 태어나는 사람은 악인이 될 소지가 크고, 악인은 평범하지 않고, 살아온 행적도 비범할 것이라는 생각은 어찌 보면 편견일 것이다.


“다음 분 들어오세요!” “소장! 아까 그 김 씨 할머니 이야기도 많이 들어온 말이긴 하지만 말여, 내가 어른들한테 들은 얘기는 이런 것이네. 옛날에는 스님들이 시주를 많이 받아 갔잖아요. 좋지 않은 사주를 타고나거나 나쁜 액운을 받았다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잘라서 쌀독에 잘 묻어두었다가 쌀과 함께 시주하면, 액땜이 된다는 것이지요. 지금이사 누가 이런 걸 믿겠습니까마는, 옛날에는 그랬어.”


애도하고 분노하고, 날마다 쏟아지는 뉴스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의 삶 속으로 미세먼지처럼 날아든다. 창문을 열고 물을 마셔도, 진기침 헛기침을 하여도 여전히 가슴과 목은 답답하다. 지울 수 없는 선명한 시류(時流)의 핏자국들, 이 증상에는 무슨 약과 주사를 처방해야 속시원한 액땜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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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포내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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