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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May 16. 2016

[포토에세이] 이팝나무 아래에서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이팝나무 아래에서


창문을 열 때마다 바람이 싣고 오리라는 것을 안다. 오월이 온 것이다. 라일락도, 찔레도 아닌, 그렇다고 아카시아도 아닌, 이 향기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나는 그것이 이팝나무에서 휘향된 것이라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니다. 내 키를 넘기고도 석 자는 더 웃자랐을, 어김없이 오월이면 그 자리에서 피고 지며 나를 쳐다보았을 텐데.


떠올려보니 눈꽃축제 거리를 거닐다가 만난 적이 있었어. 그때 네 이름이 그냥 ‘눈꽃나무’에 피는 ‘하얀꽃’ 인 줄 알았다. 이팝나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더 다가섰었지. 사월이면 전국은 벚꽃축제로 몸살을 앓는데 오월에 뜬금없는 눈꽃이라니. 벚꽃과 차별된 품격에 감탄했었지. 묵은 곡식은 떨어지고 햇곡식은 아직 여물지 않아 먹을 것이 궁핍한 오월,


멀리서 보면 작은 꽃 뭉치들이 이파리 위에 함박스럽게 앉은 모습이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쌀밥 같아서 쌀밥축제, 눈꽃축제에서 오월의 크리스마스를 연상한 것이 비단 나뿐일까. 크리스마스가 음력 사월 초파일과 맞물리는 불편함을 피하려고 눈꽃축제로 명명(命名)하였다니 사려 깊은 종교성의 배려까지. 싱그러운 신록과 흰꽃이 잘 어울리는 눈부신 도심의 가로수.


햇살 아래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 속에 하늘거리는 이팝나무 꽃은 풀을 먹여 고실고실하게 잘 말린 하얀 모시옷 같았어. 나무에 다가서 꽃을 들여다본 적이 있으신가. 까만 밤하늘을 수놓는 축포의 불꽃처럼 하얀 꽃잎은 우주에 퍼져나갈 듯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지. 바람에 흔들리는 춤사위는 바라보기만 해도 한 편의 멋진 공연을 보고 난 충만함이!


@적상면 포내리, 2016

어느 부부의 이야기도 생각난다. 서울을 벗어나 귀촌할 곳을 찾던 그들의 발목을 잡은 곳에 이팝나무가 있었다고 했다. 달밤에 하얗게 핀 꽃을 바라보면 튀밥을 흩뿌려놓은 듯, 쌀밥을 고봉으로 담아주던 이웃의 후덕한 인심에 반하여 이팝나무가 있던 곳에 정착하기로 마음을 정하였다는 부부. 마음을 휘어잡은 한 그루의 나무에 부여된 권력이 어찌 작다 할까.


하얀 뭉게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이팝나무를 보노라면 배고프던 시절, 기약 없는 풍년을 기다리던 것조차 희망이었노라던 그들의 고백 즈음에서는 눈언저리가 뜨거워졌었다. 이팝나무 꽃이 풍성하게 피면 풍년이 온다고 믿었다니, 올가을 이팝나무 아래에는 풍성한 그들의 이야기가 탐스러운 꽃송이처럼 펑펑 쏟아질 것이다. 그날 밤이었다. 읽다 만 소설 속에서 이팝나무를 또 만날 줄이야.


자본주의 사회의 비애를 다룬 박범신 선생님의 ‘비즈니스’에서 이팝나무는 시어머니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죽은 며느리 무덤가에 영혼의 쌀밥이 흰 꽃으로 화(化)했다는 전설로 소개되고 있었다. 한쪽 세상에는 아직도 사랑과 밥을 굶은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대언하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팝나무의 배경 이야기를 조금 더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무슨 나무요?" 내가 무심코 반문했다. "이팝나무요." "이팝나무요? 하얀 꽃이 무더기 피는?" 내 목소리에 서기가 드리웠다. "알아요, 그 나무?" "알다마다요." "아내가 살던 집 앞에 그 나무가 있었대요. 누가 다세대주택을 짓느라 베어버려 지금은 없는데요, 아내는 그 나무를 너무 좋아했었어요." "어쩜······." 나는 중얼거렸다. 내게도 가장 추억이 많은 게 이팝나무였다.

나는 기일 전날, 전을 부치고 나물 몇 가지를 해주었다.

다음 날 아내의 기일에 가져갈 수 있도록 과일과 북어포도 챙겨 보자기에 싸놓았다. 아름다운 이팝나무의 흰 꽃이 두서없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다닌 여고의 후문 옆에 서 있던 나무. 백 년쯤 된 나무에 꽃이 피면 폭설이 내려 덮인 것 같았고, 하얀 꽃구름이 나무 위에 내려와 있는 것도 같았다.

"꽃이, 사발에 소복히 얹힌 쌀밥 같아 이밥나무가 됐대."

그렇게 설명해준 것은 그 시절 고시 공부에 여념이 없었던 법대 4학년, 남편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남학생들과의 시비에 말려들어 싸우다가 피를 흘리고 있던 남편이 서 있던 것도 그 나무 밑이었고, 내가 피를 닦느라고 손수건을 그에게 건넨 곳도 그 나무 밑이었으며, 다음 날 두 개의 손수건을 들고 그가 나를 기다린 곳도 바로 그 나무, 이팝나무 그늘이었다. 그리고 '인권 변호사'를꿈꾸었던 가장 젊은 날의 법학도인 그가 전인미답의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갬으로써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던 곳도 바로 이팝나무, 푸르른 그늘에서였다(비즈니스, 박범신, p. 107-108).


이팝나무를 모르고 살았다면 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축제와 부부와 소설 속 여인의 이야기에 이토록 빠져들 수 있었을까. 카메라를 챙겼다. 마을 안길 이팝나무에게 다가섰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인다잖아. 파인더 속 꽃 뭉치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엉킨 춤을 춘다. 너희가 축제를 하거나 말거나 나는 상관없다는 듯 무아(無我) 무념(無念)의 팝(pop)에 오래토록 흐느적거린다.


@적상면 포내리, 2016


땀 흘리고 있을 귀촌 부부의 모습을 상상한다. 추억을 보듬던 ‘비즈니스’ 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잠시 멈춘 이 아침. 그동안 이팝나무도 모르던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코딱지 같은 꽃이 나를 비웃고 있을 것이다. 날마다 보고 만나고 느끼는 것이 나의 언어가 되기를. 진지하게 사물을 바라볼 수 있기를. 그리하여 보면 볼수록 소중한 것들이 지천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알아지기를.


다시 창문을 연다.

라일락도 아닌, 찔레도 아닌 그렇다고 아카시아도 아닌, 너는 어느 오월의 별을 떠나 나의 창에 이르렀더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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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선생님의 시

‘애기똥풀’에서 일부 인용함.

@적상면 포내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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