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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May 26. 2016

[포토에세이] 우리동네 음악대장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우리동네 음악대장>


지난주의 일이다.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가면을 쓰고 나와 노래 경연을 펼치는, 이른바 <복면가왕>의 녹화 현장에 다녀왔다. '어버이날' 선물이라며 딸이 보낸 당첨 카톡에, 딸아! 고맙기는 한데, 엄마는 복면가왕을 즐겨보지도 않거니와, 평일에 휴가까지 얻어 다녀와야 할 만큼도 아닌 것 같다고 답장을 보냈다. 엄마! 이렇게 당첨된 것은 스무 번도 넘은 응모 결과거든요! 아빠랑 무조건 무조건! 다.녀.와.야. 해! 알았지?


결국, 휴가를 얻었다. 녹화 당일 오후 2시까지 도착해야 한다는 제작진의 연락에 맞추어 세 시간을 달려갔다. 일산 <MBC드림센터>에 도착하여 지정된 곳에서 본인 확인 절차를 마쳤다. 다시 옆으로 가서 녹화 현장 사진 촬영 금지 약속과 녹화 내용을 SNS 혹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동의 서명을 마치니, 관계자가 핸드폰 카메라 눈에 스티커를 붙였다.


녹화가 시작되었다. 9승을 거둔 <우리동네 음악대장>의 인사가 있었다. 곧이어 각양각색의 가면과 옷을 입은 새로운 도전자들의 예선전이 시작되었다. 녹화 현장에서 듣는 음질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행운이 겹쳐 판정단에 선정되었다. 승자를 가리는 번호까지 누를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것이다. 출중한 개인기, 보기 좋게 매끄럽게 노래하는 사람보다는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부르는 사람>의 번호 위의 손가락에 잘못 눌렀을까 여러 번 힘을 더하였다.


다수의 판정단의 점수를 받는 쪽에 나의 번호가 더해지기도 했고, 내 생각과 벗어나기도 했다. 드디어 예선을 거치고 본선에 오른 복면 가수가 결정되었다. 9연승의 가왕, <우리동네 음악대장>과 결전이 이어졌음도 물론이다. 미안하고 안타깝게도 여기에 그 결과를 공개할 수는 없다. 제작진과의 약속이고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오후 3시에 시작된 녹화는 자정이 지나고 1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4시 반.


<우리동네 음악대장>은 전라북도 장수군 출신이다. 무주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옆 동네 장수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하니 마치 내 고향 후배인 것 마냥 귀엽고 정겹다. 어제 <전북일보>의 <오목대>에 실린 기사는 그래서 더욱 반갑다. <우리동네 음악대장>은 찬송가를 불러도 연승을 거머쥘 것이라는 우스개까지 있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10승 아니 11승 이상의 권좌에 앉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겠지만, 깊은 속내는 계속 그의 노래를 듣고 싶어 하는 것일 것이다.


http://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582929


많은 사람이 왜 <우리동네 음악대장>의 노래에 열광하는지, 첫 음악부터 찾아들어보니 영상에 답이 있었다(첫 대결 곡:토요일은 밤이 좋아, ). 장르 불문, 음고저 불문, 연령 불문, 성별 불문, 지역 불문, 넘나드는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음악의 힘을 재확인한다. 7승을 안겨준 '일상으로의 초대'를 꼭 들어보시길 바란다. 음악에 관한 한 그는 분명  대장이고 가왕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우리 동네>뿐 아니라 국내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음악 대장>이기를 바란다. 순진한 내 욕심이 너무 큰 것은 아닐 거야.


지난주 녹화 현장에서 보고 들은 풍경이 TV에 모습을 드러낼 이번 주말이 기다려진다. 딸의 카톡은 오늘도 계속된다. 어무이! 그냥 10승 했는지, 안 했는지, 고거만 갈챠주시믄 안대까요? 따님요, 아니되무니다! 방청석에 앉아 멍한 표정으로 복면의 주인공들을 주시하는, 안경쓴, 어느 시골 아지매가 보이거든, 결정된 가왕에게 마음으로부터 백만 송이 장미를 바치고 싶어 하는, 안경 쓴 어느 시골 아지매가 보이거든, 깜짝 아는 척이라도!


구(九)는 십(十) 보다 크다


<우리동네 음악대장>의 ‘백만 송이 장미’를 듣는다. 아홉에 대하여 생각한다. 하나에서 아홉을 지난 숫자, ‘열’보다 아홉이 크게 느껴진다. 뜬금없이 아홉(九) 자와 연결된 사자성어도 떠올려 본다. 얼른 생각난 것이 구절양장(九折羊腸)이다. 아홉 번 굽은 양의 창자. 구불구불하고 험한 산길, 어렵고 힘든 세상살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승자의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새로운 음악을 편곡하여 만들고, 연습하는 것이 힘들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 사이로 체중이 빠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혈변(血便)까지 쏟았다는 음악대장의 고백을 들으니 마음이 짠해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eyy_sgpxWs8


편안한 소파에 반쯤 드러누워 화면으로 편히 만났던 이면에 숨어 있는 그의 음악은 어쩌면 땀이요, 피요, 생명이었구나. 그래서일까. 다음에는 반듯하게 앉아서 바른 자세로 봐야겠어. 고지를 눈앞에 둔 <우리동네 음악대장>의 9승이 10승보다 더 크게 보이고, 열보다 아홉이 더 완전한 숫자로 다가옴은 이제야 그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지. 구중궁궐(九重宮闕)의 구(九)를 본다. 십중(十重)이 아닌 구중궁궐이다. 왜 십이 아니라 구일까. 아홉 번 거듭 쌓은 담 안에 자리한 대궐이라니. 임금의 처소에 이르기까지 성의 입구에서부터 궁궐까지의 길은 끝도 한도 없지.


하나로 묶이는 십(十)이 주는 뉘앙스보다는 굽이굽이 아홉이 주는 뉘앙스가 훨씬 더 많고 길고 험한 것 같다. 그래서 구중궁궐(九重宮闕)의 구(九)도 십중궁궐(十重宮闕)의 십(十) 보다 훨씬 더 많고 길고 험하게 보이는 것이 아닐까. 구중심처(九重深處)라는 사자성어에도 구(九)가 있다. 아홉 겹으로 둘러싸인 깊은. 이 또한 깊은 곳에 자리한 궁궐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구중궁궐과 비교하면 궁궐 대신 ‘깊은 처소’라는 뜻의 심처(深處)를 사용한 것만 다르다. 어원을 보니 광해군 치하에서 인목대비의 폐모를 반대하다가 함경도로 귀양 가면서 지은 시조에서 언급된 말이라는데.


고신원루(孤臣寃淚)는 임금으로부터 버림받아 외로운 신하가 흘리는 통한의 눈물. 십(十)보다 아홉(九)이 더 크고 많아 보임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10승 고지에서 <우리동네 음악대장>은 시름을 접었을까 폈을까. 구곡간장(九曲肝腸) 애간장을 쥐었을까 놓았을까. 굽이굽이 이어진 고갯길 따라 넉 달 가까이, 하루도 쉼 없이 열심히 달려온 대장에게, 또한 앞으로 열심히 달려나갈 대장에게 아낌없는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높은 산을 넘어야 할 음악대장이 부디 산과 계곡을 지나며 가시덤불과 물결에 휘말려 고통당 한 것이 아니라 높은 산의 시원한 바람을 몸에 두르고, 굽이굽이 계곡의 물결에 몸을 맡겨 흥겹게 즐긴 시간이었기를, 또한 그런 시간이기를!(어원의 출처 :네이버,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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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포내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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