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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May 31. 2016

[포토에세이] 아름다운 사람, 둘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아름다운 사람, 둘>


#1, 김해 김 씨


과거에 지가 뭐, 뭣을 했든, 금송아지 안 메 본 사람이 어딨어. 옛날에는 다들 잘 나갔지. 뭘 했던 그게 무슨 상관인가. 지금은 지금인 것이지. 금송아지 안 키워본 사람 있나. 왕년에는 한 가닥씩 다들 잘 나갔지. 나는 무슨 짓을 하든, 어딜 가든 떳떳해. 부산 내려가서 후배를 만나고 동기를 만나고 친구를 만나든, 보증 잘못 서서 돈 날리고, 가족 떠나 여기서 농사짓지만, 말이죠, 내가 도둑질을 했나 뭐 했나.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과거적 그거를 그렇게 거하대. 몇 년 전에 읍내 시장에서 아는 사람이 집을 고쳐 달라 캐서 수리한 적이 있었어요. 열흘 동안, 사람 서이 데리고 썼습니다. 일하다가,


밑에 내려가서 물건 좀 가져오라고 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 내려가면 즈그 아는 사람들 천지라고, 챙피하다고 안 간다는 거라. 거 참 이상하대. 명색이 오야지인데, 내 말을 안 듣는 것도 기분이 좀 상했고, 내가 왔다 갔다 하는 모양새가 좀 머 했지마는, 할 수 없이 내가 내려가서 물건을 가져왔지. 기가 막혀서. 나 참, 그런 사람들 여럿 봤어요. 일꾼들이 즈 아는 사람 있는 데를 안 갈라 캐. 김해에서도 봤어요. 벽돌 싣고 와라, 캤더니 거기 안 간다는 거라. 거기 즈가 아는 사람들 만난다고 안 간다 캐. 이튿날부터 니 고마 나오지 마라, 당장 그랬지.


노가다하면 어때. 지가 노가다 하면서 지가 노가다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다니, 나 참 우스워서. 아니, 그러면 뭐하러 일하러 오노. 내 제자가 김해우체국에 집배원으로 근무하는데, 야 욕본다, 우체국에 들러서 차도 한 잔 얻어 마시고, 들랑날랑 하믄서 어떻게 지내나, 안부도 좀 묻고, 다들 욕본다, 과장님 참말로 욕보십니다 카고 그랬는데. 그래 저래 인사도 하고 지냈는데 말이지. 길거리에 휴짓조각 줍고 돌아다녀도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 지가 왜 저를 천하게 여기냐 그 말이지. 노가다가 천하다고? 그것이 천한 일이가? 그거 싫다고 다 떠나버리면 누가 집을 짓고, 누가 길을 만드노.


높은 사람 되겠다고 다 설치고 돌아댕기면 세상이 어찌 되겠냔 말이지. 모두 대통령이면 국민이 그럼 뭐 전부 다 대통령 하지. 나는 거참 안 편하더라 그말이죠. 불만이라. 나는 무슨 일을 하든 만족해요. 농사일을 하든 뭐하든. 나는 그런 거 생각 안 해. 현재가 중요하지, 지나간 날은 다 소용없어요. 사람 일이라는 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고. 나는 그걸 자식들한테도 이야기합니다. 딸한테도 당부했습니다. 니 지금 아무리 똑똑하고 잘 나가는 공무원이래도 밑에 사람들 잘 생각하고 챙겨주라 말입니다. 청소하는 아줌마 만나면 꼭 불러가지고 쉬었다 하라 카고,


식사하시라 카고, 커피도 한 잔 드리고, 계단 청소할 때 무거운 거 있으면 좀 도와드리라 카고, 잠깐 쉬었다 하라 카고, 경비 아저씨들한테 인사도 잘 하라고 시키고. 음료수 같은 거 있으면 청소부나 경비 아저씨들과 서로 나눠 마시라고 우짜고 그 캅니다. 그 사람들한테 잘 그 해야 한다. 절대 사람을 낮춰보면 안 된다. 그 집 아들딸 중에 나중에 판사가 나올 수도 있고, 사람 일이란 거 참말로 모르는 기라요. 언젠가는 그쪽 사람들, 자손들한테 도움도 받을 수 있다 아입니까. 사람을 절대 낮춰 보면 안 된다 갈칩니다. 요새 뭐 기업 사장들 보니까 비행기 타고 가다가 여자를 건들지 않나,


즈그 손녀뻘 되는 여자들을 건들지를 않나, 그것이 참 나쁜 거라. 요새 화제 거리대. 어느 교수가 테레비 나와서 그러대. 그건 정말이지 잘 못된 거라. 세상 사람들을 죄다 자기보다 밑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말이지, 마치 완전 종 부리듯이 한단 말이죠. 사람을 친절히 대한다면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나중에 즈가 종노릇 당한다 아입니까. 대접받는 자리에 있을 때 아랫사람 잘 대접해야지, 안 그러면 더 아랫사람으로 떨어지는 것은 마 시간 문제라요. 요새는 특히 그런 일이 많드만. 세상이 어찌 될라고 그카는지. 이런 건 책에서도 못 배우는 거라. 주먹 자랑, 돈 자랑 한 번 안 해 본 사람 어딨노. 왕년에 했다는 거 그거 뭐 맬짱 소용없는 일이라. 지금이 중요하지.


그동안 혈압 때문에 소장님한테 신세 많이 졌습니다. 아들 내외가 집을 다 지었다고 내려와라 캐서, 모레 김해로 갑니다. 소장님이 김해에 올 일이 있겠습니까마는 혹시 오시거든 이놈 아가 사는 곳이다 생각해주시고, 저도 무주에 오면은 소장님 생각날 겁니다. 우짜든 지 간에 그동안 불편을 끼친 거 많은데 고마 용서하시고, 건강하게 잘 지내십시오. 살다 보면 요래 저래 인연이 또 닿지 않겠습니까. 이 동네 사람들은 참말로 복 받은 사람들이라요. 가차븐데 보건소 있지, 밤이든가 식전이든가 간에 맞아주시니께요. 이런 말 드리기 참 머 합니다마는, 소장님은 딴 데로 가지 마시고 여기 오래오래 계시소. 산골에서 불편한 것도 있겠지마는서도 도시 나가도 별거 없습니다. 사람 사는 기 다 오십 보 백 보라예. 참말로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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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포내리, 2016


#2, 이사벨 리


저는 미국에서 삼십오 년을 살다가 한국에 왔어요. 한국에 온 지는 오 년이 되었고요. 외교통상부에 가서 미국시민권 포기할 때 선서했습니다. 다시 시민권을 가지려면 엄청나게 힘들어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돈도 무척 많이 들어요. 직원이 마지막으로 다시 묻겠습니다, 정말로 미국시민권을 포기하겠습니까. 나는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한국 사람이니까요. 고향은 전주인데 세 살 때 서울로 이사를 하였거든요. 아홉 살 때 부모님과 미국에 이민을 갔었죠. 저는 독신주의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주까지 와서 살게 될 줄이야, 정말 신기해요. 친한 언니가 무주에 살고 있었는데 미국에서 한국으로 나올 때마다 무주에 내려왔어요.


저는 무주에 반해버렸어요. 미국으로 돌아가면 무주에서 보았던 구불구불한 논두렁, 밭두렁이 마음속에 날마다 떠올랐어요. 왜 그것을 잊을 수 없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노총각 만나서 우리 언니와 엄마가 반대하는 결혼을 했어요. 후회라니요, 전혀 후회 안 해요. 지금 저는 제 생활이 너무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뉴욕에서 살았는데, 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 근무했었고, 상원의원의 사무실에서도 일한 적도 있었어요. 어린 시절에 내가 다닌 학교에 동양인은 저 혼자였고, 눈이 찢어진 아이라고 놀림을 많이 당했어요. 날마다 울었죠. 우울증까지 앓았으니까요.


나는 미운 오래 새끼였어요. 언제쯤 하늘을 날 수 있을까. 미국에서 나는 눈에도 안 보이는 사람이더라고요. 열심히 공부했어요. 미국 사람도 일 년 반은 넘게 걸린다는 시험을 반년 만에 패스하기도 했었고요,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상원의원 소개로 은행에서 일할 때에는 최고 실적을 올린 적도 있었어요. 친구들 여섯 명이 육 개월 동안 열심히 돈을 모았어요. 벤츠를 타고 한 달 넘게 아메리카 대륙 횡단하는 여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가 내 인생 최고 빛나던 별 같은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 와서 깜짝 놀라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제가 일을 하면서 시골에 다녀보니 이런 보건진료소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워요. 미국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일이죠.


의료인을 만나 약국에서 약을 타는데 거쳐야 할 스텝이 너무 많고 복잡하거든요. 시간이 오래 걸려요.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의사가 되기도 너무나 힘들고요. 잠깐 상담만 받아도 몇십 불은 내야 하죠. 돈 없으면 미국에서는 아프면 죽는 거예요. 시간이 돈이죠. 기다리는 동안 보니까 어느 어르신이 소장님 먹으라고 상추를 갖고 오시네요. 저걸 그냥 드신다고요? 저분을 어떻게 믿죠? 상추에 나쁜 성분이 있는지 분석 안 하나요? 감기에 걸렸다고 즉시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니, 믿기지 않아요. 아무리 간단한 약이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마 세계인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제도가 한국의 보건소 제도가 아닐까 생각해요.


마을마다 있는 회관이나 경로당이 있는 시스템도 너무나 서프라이즈 합니다만, 그런데도 아직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지 못했구나! 생각되는 것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시간관념이에요. 약속 타임이 아침 여덟 시인 경우, 여덟 시 이전에 오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미국에서 시간은 철저하거든요. 오 분이 지나고 거의 십 분이 지나도 사람들이 모이지 않아요. 그것을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분위기는 더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르신들이 자식들에게 올-인하는 모습도 이상해요. 허리가 휘어지고 손가락이 닳아지도록 모은 돈으로 자식의 집을 사주는 모습, 정말 이해하기 힘들어요. 미국에서는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자녀에게 집을 사주는 일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자녀들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아요. 부모도 자녀를 의존하지 않는, 철저한 사생활의 나라죠. 라스베가스에서 일하고, 뉴욕을 거닐고, 캘리포니아를 여행하고, 많은 것을 누렸지만, 인간은 유한한 존재에요. 작죠, 아주 작아요. 너무나 작아요. 마당에 누워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보다 더 작은 존재죠. 아무리 세상이 넓고 크다 해도 인간이 그 모든 것을 취할 수는 없으니까요. 손톱만큼도 취할 수 없죠. 내가 왜 좋은 직장을 내려놓고 산골 마을까지 왔을까 생각해요. 나에게 미션이 있을 거라고 믿어요.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것, 나에게만 유일한 나만의 미션 말이죠. 이렇게 이곳 보건진료소에 와서 소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삶을 이야기하다니, 저에게는 소름 돋는 순간이네요. 어제 산에 다녀왔더니 피부가 몹시 가려워서 왔어요. 정말로 약과 주사 처방을 받을 수 있나요? 가능하다고요? 정말이지, 이건 믿을 수 없어요. 게다가 치료비가 900원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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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포내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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