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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Jun 03. 2016

[포토에세이] 드러난 듯 아니 드러난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드러난 듯 아니 드러난>


사람들은 왜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일까, 글쓰기란 무엇인가, 글쓰기를 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사람들은 글을 쓴다. 날마다 쓴다. 이왕이면 잘 쓰고 싶어 한다. 시인이나 소설가로 등단하려는 목적도 아닌 것 같다. 글쓰기 이론을 배우고 경험을 넓히고자 책을 사고 따라 해 본다. 두 권을 읽고, 열 권을 더 읽어봐도 결론은 한결같다. 이제 나는 잘 쓰게 되었다, 쓰기에 관하여 더 배울 것이 없다, 글쓰기라면 무엇이든 물어보라, 자신 있게 답해주마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것이 진실이다. 결국, 어떻게 해야 좋은 글을 쓰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니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 읽고 쓰고 생각하며 따라 걸어왔건만 종국에는 글쓰기에 길이 없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옷을 입는다. 날마다 입는다. 이왕이면 잘 입고 싶다. 집에서는 평상복, 여행에서는 여행복, 격식 있는 자리에 입어야 하는 예복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옷을 놓고 고민한다. 패션 잡지를 읽고, 연예인의 스타일을 탐색하고, 제시된 것들을 따라 해 본다. 아이 시절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입는 것이 옷이다. 그런데 나는 옷을 잘 입는다, 패션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물어보라, 자신 있게 말해주마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입으면 입는 것이 옷이니, 입는 것이 뭐 어려운가. 쉬운 듯 어려운, 패션에도 길이 있는데 딱히 정해진 길이 없다니. 국내 패션 큐레이터 1호라고 한다. 현대미술과 패션을 결합한 독창적인 작업을 왕성하게 이끌어 가는 사람이다. 나는 역사나 미술, 패션에 문외한이기도 하거니와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더욱 생소하다.


그는 패션 전문잡지에 칼럼을 쓰고(브뤼트, AVENUEL 등), TV 강연도 한다. 내가 시청한 방송만 해도 서너 편이다. 패션의 깊고 다양한 의미와 역사 속의 패션과 미술 작품 속의 패션, 보석과 명품에 이르기까지 글과 강연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이 패션을 말한다. 참으로 독특하고 이색적인 사람이다. 패션 전시와 기획을 만드는, 김홍기 작가가 그 사람이다. 그의 페이스북에 새 소식이 올라왔다. 그는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보낸 후, 허전한 마음을 뒤로하고 바쁜 일정들을 소화하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의 유언(遺言)조차 듣지 못한 안타까운 이별이었지만, 일상을 감당하기 위하여 일어나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가 링크한 공유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의 패션 철학을 글쓰기로 고민하는 나와 다른 사람에게 적용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글쓰기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많이 쓰는데 실력이 안 늘어요. ‘작가의 글쓰기’ 클럽에 게시된 몇 가지 질문을 옮겨보겠다. 안녕하세요. 대학 새내기입니다. 인문계통의 학과를 다니고 있어서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던 중에 이곳을 알게 되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김**). 항상 작가님들의 좋은 글 많이 감상하고 정보도 얻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입니다. 학교에서 양성평등 글짓기 대회에 작품 하나를 냈는데, 저의 글에 대하여 평가와 조언을 받고 싶어 글 올립니다. 「극단적 페미니즘이 혐오 문화를 조성한다」(신**).


서울에 사는 열일곱 살 작가 지망생입니다. 독서를 좋아합니다. 대입 논술도 있고요, 특히 시(詩)를 좋아하는데 국어를 좋아하는 여러분과 온라인 학습을 통하여 글쓰기 모임을 하고 의견 나누고 싶습니다. 서울에 거주하면서 저와 비슷한 상황인 분이나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분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정**). 저는 편지 쓸 때 고민이 많이 됩니다. 특히 어른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친구에게 이메일을 보냈더니 그 글을 읽고 나서는 저의 글이 너무 딱딱하다고 조언해주었습니다. 부드럽게 써보고 싶은데 어른과 친밀하지 않아 조심스럽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편지를 쓸 때는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을까요? 의견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김**).


@경남 함양군,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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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큐레이터의 이야기를 옮겨보겠다. 사람은 각각 서로 다른 체형과 다양한 몸매를 가지고 있다.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패션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고대인들도 현대인들과 똑같이 패션에 대하여 고민했다는 사실이다. 어느 날 아리스토텔레스가 갑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를 찾아갔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여보게! 디자이너여, 도대체 옷을 어떻게 입어야 가장 멋지게 입는 것인가. 타고난 몸매가 좋아야 멋진 것인가. 갑옷 디자이너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고 한다. 타고난 몸매가 좋아야 멋진 것이 아닙니다. 모든 옷이란 그 사람에게 딱 맞게 입을 때 최고의 비례가 나오고, 가장 멋진 아름다움이 나오는 것입니다. 죄송합니다만 철학자님이 잘 못 알고 계셨군요.


사람의 몸매를 어찌 더 아름답다,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체형, 외모 등 모든 것이 다른 것은 신(神)이 인간을 각별한 존재로 창조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육체란 다 아름다운 것이다. 그에 걸맞게 안으로부터 아름다운 비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진정 좋은 스타일이다. 스타일이란 오랜 훈련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것이고 만들어 가는 것이다. 스타일은 곧 인간이다. 이것은 매우 뜻깊은 철학적인 말이다. 단순히 옷뿐 아니라 그 사람의 몸짓,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말투 등이 총체적으로 통합되어 나타나는 모습이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스타일링이란 평생을 가다듬어야 한다.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실패담과 성공담을 누적시켜가면서 결국 자신에게 어울리는 패션 스타일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바꾸어 보겠다. 선생님! 도대체 글은 어떻게 써야 가장 좋을까요? 글쓰기에 관하여 타고난 소질이 있어야 좋지 않을까요? 작가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고 하자. 타고난 소질이 있다고 멋진 글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글이란 그 사람에게 딱 맞게 쓰일 때 최고의 글이고, 멋진 감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질문자님이 잘 못 알고 계셨군요. 갑옷의 디자이너 대답과 별반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옷 태’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답답하지 않고, 능치 못함이 없는, 자신감이 있을 때 나오는 어떤 느낌, 그것이 ‘태’이다. 자신감이 스타일로(혹은 글로) 드러날 때 신념, 가치관, 메시지가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설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글 태’와 ‘옷 태’가 무엇이 다르랴. 차별화되면서도 적절하게, 한 듯 아니 한 듯 무심한 그.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는 좋은 옷에는 그만의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좋은 옷이라고 평하고, 칭송하는 패션은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다르다고 했다. 옷감의 소재, 바느질, 겉감과 안감의 부드러운 이음새. 매끄럽게 재단되어 드러난 듯 아니 드러난! 탁월하고 남다른, 잘 만들어진 한 벌의 옷은 견고한 영성(靈性)과 같아서 좋은 옷은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켜준다. 멋진 코트나 슈트는 튼튼한 안감에 감추어진 한 땀 한 땀의 바느질이 매우 꼼꼼하고 정교하다. 좋은 심지를 사용하여 어깨선이 무너지지 않도록 잡아준다. 겉감 또한 좋은 원단을 사용하여 옷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어깨의 심지는 삶의 무게에 지친 우리를 안아준다. 패션은 상처받은 마음을 봉합해주고 어루만져 준다.


아! 이 얼마나 시크하고 멋진 말인가. 한 번의 만남, 한 번의 강의, 한 편의 글마다 최선을 다하였다는 작가의 삶의 자세에 감동하고 말았다. 내로라하는 유명 패션잡지사에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나만의 색깔 있는 경험이 쌓였기 때문이었다는 고백에서, 아! 글쓰기의 답도 저기에 있었구나. 나는 무릎을 쳤다. 작은 경험이 누적되고, 경험이 쌓여가면서 생긴 확신, 확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재확신, 남이 걸어가지 않은 길을 가면서 만들어낸 새로운 길, 두세 번 영상을 반복 시청하였다. 망설임 없이 ‘댄디, 오늘을 살다’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글쓰기에는 정답이 없어요. 글은 마치 인격체와 같아요. 글쓰는 이의 개성이 들어가게 마련이죠.


모름지기 글은 그래야하지요. 단순히 주입식 교육의 결과처럼 일률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으니까요. 본인만의 필체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봅니다(작가의 글쓰기, 신동진). 글쓰기는 왜 어려울까. 정확히 말하면 글쓰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두려운 것이다. 두렵다고 ‘느끼는’ 거다. 그 두려움에 가려 놓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바로 글에 관한 원칙이다. 세 가지만 기억하라. 쉽게, 짧게, 그럴듯하게(기자의 글쓰기, 박동인). 좋은 글과 좋은 옷의 특성이 짜릿할 정도로 유사하다. 많은 사람이 좋은 글이라고 칭송하는 글은 소재가 좋고, 이음새 없이 매끄럽게 이어져 흘러내린다. 드러난 듯 아니 드러난 옷과 같지 않은가. 잘 쓴 글은 견고한 영성(靈性) 같아서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우리를 지켜준다. 우리를 안아준다. 상처받은 마음을 봉합해주고 어루만져 준다.

글쓰기는 삶이고 본능이다.

그러므로.


[CBS 새롭게하소서]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

https://www.youtube.com/watch?v=SIBq6kXM6J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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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군,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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