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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Jun 07. 2016

[포토에세이] 피어라 꽃 중의 꽃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피어라 꽃 중의 꽃>


쌍떡잎식물이면서 국화과에 속하는 두해살이 풀이라는군요. 저는 이제야 그동안 알고 있었던(알고 있기나 했었던가 의심이 들지만) 것이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국화꽃 모양이기는 하지. 아, 그래서 국화과인가? 두해살이 풀이라고? 어째서? 그해에 피었다가 내년에 씨앗이 아닌 뿌리에서 싹이 나온다면 한해살이가 아닌 거지요. 의심 많은 사람처럼 품고 있던 호기심이 풀리더니, 초여름부터 여름이 다 갈 때까지 피고 지는 그것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에 길을 지나다 만만하게 본 것인지, 꽃모가지 뜯어 장난 많이 했었어요. 비틀어보라지, 자석이 잡아끄는 쇳가루 같은 검은 씨앗이 얼마나 빡빡한지. 이들이 모두 싹을 틔운다면 아마 지구를 덮어버리고도 남을 걸?

 

가을에 씨앗이 떨어진 곳에 새싹이 돋습니다. 이들은 얼어 죽지 않고 웅크린 채 한겨울과 마주합니다. 눈이 오면 오는 대로, 강풍이 불면 부는 대로, 때로는 가랑잎처럼 갈색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뿌리는 든실히 살아 있지요. 봄이 오면 뿌리 옆으로 새순이 마구 돋아 식구를 늘립니다. 녹아드는 흰 눈 속으로 보란 듯이 싱싱한 초록 얼굴을 내미는 꽃, 개망초입니다.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하기 위해 흙을 갈아엎기 전 파릇하게 자란 그것들을 뿌리째 뽑습니다. 망태에 담아 집으로 돌아옵니다. 마당에 쏟아붓고 빗자루를 깔고 앉아 다듬기 시작합니다. 한 가닥 한 가닥 잎줄기 사이로 아기 순을 다듬다 보면 어느새 한 소쿠리가 넘어가죠.


@적상면 포내리, 2016


끓는 물에 소금 한 줌 넣어 데쳐냅니다. 참기름과 마늘, 깨소금으로 조몰조몰 무칩니다. 고추장의 붉은 색감과 어울려 맛깔스러운 나물 반찬이 되고, 데쳐낸 것을 쑥대 발에 잘 펴서 말리면 쩔깃쩔깃한 정월 대보름 나물 반찬이 되기도 합니다. 어려서는 시금치 같은 모양과 색감으로 잃었던 입맛을 돋우어주는 나물이지요. 키가 자라 꽃이 피면 노란 꽃술과 가장자리 흰색 꽃잎 덕분인지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계란후라이꽃이라고 불렀습니다. 듣고 보니 그럴싸하여 아하! 정말 그러네! 맞장구를 치기도 했었지요. 개망초는 요즘 동네에서 흔히 보는 들꽃입니다. 일손이 모자라 모내기를 포기하여 메마른 논에, 돌보는 사람 없어 묵혀둔 팔밭에,


한가득 꽃 무리가 피어나면 마치 흰눈이 쌓인 듯한 풍경이 만들어집니다. 모내기가 얼추 끝나가는, 찔레꽃과 산딸나무꽃이 자취를 감추는, 멀리서 매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개망초는 서서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이 귀여운 ‘계란후라이꽃’이 왜 하필이면 이름이 ‘개망초’일까. 세상 물정을 알아가는 나이에 이른 탓인지, 생각도 없었는데 말이죠, 왜 망초일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망초(望草), 저 작은 꽃에서 무슨 희망을 발견 하였을라고. 망초(忘草), 전설이 되어버린 물망초(勿忘草)에 얽힌 루돌프 기사와 벨타 처녀의 뜨거운 사랑, 너도 그런 비슷한 사랑 가졌단 말이더냐. 도대체 무슨 사랑이 깊었었기에 보아달라 애원을 바람 잡아 호소하는 것이더냐.


꽃이 무성하거늘 쓸데없는 잡초에 불과하니 망할 풀이라고 개망풀, 망초(亡草)인 것인가. 보아하니 이름이 환영받지 못했음이 분명하구나. 망초도 모자라 '개-'라는 접두어를 머리에 쓴 것을 보니 틀림없어. ‘야생의’, ‘마구 되어 변변하지 못한’, 즉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 ‘헛된’, ‘쓸데없는’, ‘값어치 없는’, 개망풀 ‘개망초’.


명숙 씨 어머니는 폐암으로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집 앞 텃밭에 고구마를 심어 가꾸셨습니다. 이제 그 밭은 돌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돌보지 못합니다. 그곳까지 신경 써야 할 만큼 명숙 씨는 한가롭지 않거든요.


마늘과 고추, 버섯과 오미자 농사로 명숙 씨는 늘 땀에 젖어 있습니다. 개망초를 사진에 담고 있는 나를 보더니, 저희가 그동안 어머니 덕분에 살찐 고구마를 먹었더라고요. 쟤들 좀 보세요. 어머니가 안 계시니 온통 즈그 세상입니다요. 망초꽃을 바라볼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더 간절해요. 가까이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멀리 있는 사람을 가까이 다가오게 합니다. 꽃말을 읊조려 봅니다. 무심하게 지나갔을 터인데 꽃 바람에 흐느끼며 발목을 잡더라니. 밭둑에 올라서게 만들더니 눈까지 맞춰 달라 합니다. 불어오는 황토 바람이 훅훅 달아올라 목덜미까지 후끈합니다.


지천으로 흐드러진 개망초 위로 한낮 뜨거운 뙤약볕이 엎질러집니다. 어쩌다 이들에게 나라를 망하게 한 풀이라는 억울한 누명까지 덮었을까요. 사람들이 너희에게 생각을 묻더냐. 의지와 상관없이 망초(亡草)에서 개망초로 되었어요, 원망하지 않아요. 작디작은 들꽃에 얽힌 전설이 이러할진대. 우리에게 붙여진 이름이야, 그 사연 어찌 다 말하리오. 피어라. 꽃 중의 꽃,


피어나라! 사람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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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포내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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