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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Jun 24. 2016

[포토에세이] 행복의 필요조건

<행복의 필요조건>


“항암 치료만 마치면 소원이 없겠어.” “그렇구나. 그래도 큰아들이 대학에 합격했으니 힘내!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어렵다고 하니 걱정이야. 나는 우리 아들이 직업군인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이번 시험에 또 떨어져서 마음이 아파.” “그랬구나. 정말 속상하겠다. 기회가 또 있으니 준비하면 되잖아. 나는 말이지, 남편이 예전처럼 달리지는 못해도 걷기만 해도 좋겠어. 도순이 너는 걱정 없지?”


오래간만에 친구들과 점심을 함께 하였다. 냉면을 먹은 후 근처에 있는 찻집에서 주고받은 이야기이다. 위(胃) 반 이상 절제술을 받은 친구는 항암 치료를 잘 마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서너 숟가락만 먹으면 수저를 놓아야 한다. 가끔 ‘덤핑증후군’으로 힘들어 벽에 기대거나 바닥에 눕기도 한다. 그녀에게 밥 많이 먹으라고 권하는 인사말은 무색하다.


옆에 앉은 친구 아들은 대학 졸업 후 입대하였다. 그녀는 아들이 직업 군인이 되기를 소원하고 있다. 그 옆에 앉은 또 다른 친구의 이야기는 남편의 건강이다. 안개 짙은 새벽, 그녀의 남편은 사과밭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차가 고장을 일으켜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졌다. 트럭은 폐차되었고, 친구의 남편은 큰 부상으로 응급 수술을 받았다. 지금은 열심히 재활 치료 중이다.


남편을 간호하느라 병상을 지킨 친구는 남편이 달리지는 못해도 침대에서 일어나 예전처럼 두 발로 걸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소원이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하여 부부에게 많은 인내를 요구하는 시간이 흘러갔다. 귀농하여 농업대학에서 공부하고, 자신의 블로그에 농업일지를 기록하는 등 어엿한 농부로 성장하는 중이었다. 부부의 밭에는 블루베리가, 미니사과 나무가 자라고 있다.


직장도 있고, 남편도 아이들도 건강하니 도순이 너는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며 친구들이 나를 바라본다. 다들 무슨 대답이 나올까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이다. “친구들아! 나는 아무 걱정 없다. 잊을만하면 너희들이 이렇게 무주까지 와주니 고맙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눌 수 있어 즐겁고, 차를 마시며 그동안 밀린 수다도 마음껏 펼칠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작년에 만났을 때, 우리의 소원은 다음과 같았다. “큰아들이 삼수(三修)하잖아. 올해는 꼭 합격하면 소원이 없겠어.” “요즘 사진을 배우고 있어. 멋진 작품 사진 좀 찍어봤으면 소원이 없겠어.” “나는 요즘 인터넷에서 파는 도자기가 눈에 들어온다. 갖고 싶은 그릇들 좀 실컷 사봤으면 좋겠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소원이 충족되면 우리는 과연 행복할까를 생각하였다.


바라는 것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고, 우리의 삶은 매일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쌍둥이 아들의 아토피피부염이 완치되지 않았다. 수시로 등을 긁어줘야 하고, 여름이면 더욱 괴로워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일은 나를 더욱 괴롭게 만든다. 바쁘다는 이유로 제대로 아이들을 돌보지 못한 참회(懺悔)의 회초리를 맞고 싶은, 어미로서의 미안한 속마음을 친구들은 알까. 건강을 방해하는 아픔, 자녀의 진로를 방해하는 시험, 가족의 일상을 뒤바꾼 사고 등. 나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시련은 분명 괴로운 일이다.


채워진 소원의 그릇들을 헤아리기보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그릇을 더 크게 욕망하는 일을 자제하자고 다독인다. 시련 속에 숨은 뜻을 헤아려 보자고 나와 친구들에게 격려를 건넨다. 어쩌면 우리의 삶을 한 단계 더 성숙하게 여물게 하는 열매가 삶 속에 숨어 있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그분이 허락하신 행복의 필요조건일 것이다.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잠언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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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있는 사람(도서출판 생명의 양식, 2016. 07/0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적상면 포내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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