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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Sep 30. 2015

[포토에세이] 엄마능력 자격시험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엄마능력 자격시험>



- 쌍둥아! 창밖의 풍경을 보아라. 단풍이 어찌 이리 아름다우냐?

- 얘네들 회초리를 맞았나 보다! 너무 아파서 울고 있는 것 같아.


아침 등교 길에 호숫가를 지난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 담긴 액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비 내리던 아침이었다. 차창밖으로 풍경을 보던 쌍둥이 중 동생이 붉은 단풍이 회초리를 맞아서 빨갛다고 이야기한다. 매를 맞아 잎들이 모두 빨개졌고, 낙엽에 흐르는 빗물은 마치 눈물 같다고 말한다. 며칠 전이었다.


[유료] 송예빈님 한자능력 자격시험 발표 중, 확인은 06070****(수신 거부 080707****)

[유료] 송예찬님 한자능력 자격시험 발표 중, 확인은 06070****(수신 거부 080707****)


같은 내용으로 두 통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쌍둥이가 응시했던 한자능력 자격시험(漢字能力資格試驗) 결과를 발표하는 날의 아침이었다. 밥을 먹으며 메시지를 읽어주니 쌍둥이 중 동생은 기대된다는 눈빛으로 생글생글 웃는데, 형은 숟가락을 놓더니 관심 없다는 듯 가방을 메고는 나가 버린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뒤 해당 사이트를 열어 결과를 조회하였다. 마치 내가 시험을 치른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동생은 합격, 형은 불합격이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돌아오면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주는 것이 좋을 지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결과가 모두 합격이라면 기쁜 일이고,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을 것이다. 시험을 보기 전에는 그런 마음이었다. 앎의 영역이 확장되고 한자(漢字)의 의미를 깨닫는 즐거움까지 누린다면 더 무엇을 바랄까. 시험이라는 통과 의례는 실력을 점검하는 기회가 되고,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되어 더 정진하는 기회가 되니 성장의 계기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쌍둥이의 합격과 불합격 소식이 동시에 들려오다니. 당황스럽다.


선배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의견을 물었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원래 크게 될 그릇은 서서히 되는 법이지. 쌍둥이 성적이 서로 비교가 되어 마음이 불편하겠구나. 낙방한 녀석에게 합격한 동생보다 더 잘하는 부분을 크게 칭찬해 줘야 할 듯! 무엇보다 엄마의 위로가 최고지! 기를 살려줄 수 있는 말을 잘 해 줘! 실패도 공부잖아. 둘 다 합격했다면 엄마가 교만해질까 봐 좋은 소식 안 좋은 소식을 나눠주신 것 같다. 인생이란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법. 결과를 조용히 묵상하면서 기쁨으로 변화시켜 갈 수 있기를! 수고! 사랑한다.


전류의 세기가 점점 커지면서 몸속으로 퍼져가는 것만 같았다. 둘 다 합격했으면 엄마인 네가 교만해질 수 있으니 그렇게 나누어 주신 것 같다는 글귀가 가슴을 울린다. 합격과 불합격이라는 결과 앞에 순간적으로 내 앞을 스쳐 지나간 것은 아이들이 자란 후의 모습이었다. 만약 대학 입시에서 한 아이는 합격, 한 아이는 불합격한다면? 취업시험에서는? 결혼에서는? 등등 아직 보이지도 않는 아이들의 미래에 이미 나는 도착해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동생에게 네 합격의 기쁨을 형 앞에서 내색하지 말라고 이른 뒤 쌍둥이를 불러 앞에 앉혔다. 다음 번 시험에서는 이번에 떨어진 급수에 응시하지 말고, 두 급수(級數)를 상향하여 응시할 것을 주문하였다. 합격한 동생은 그렇게 하겠다며 흔쾌히 받아들이는데 불합격한 형은 이제 다시는 시험에 응하지 않겠다며 화를 내는 것이었다. 나는 그까짓 일로 새로운 도전을 포기하면 되겠느냐며 형의 종아리에 회초리로 붉은 선을 그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동생이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비 내리는 아침 학교 가는 길,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붉은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정작 회초리를 맞은 형은 말이 없고, 옆에서 지켜보았던 동생이 창밖 풍경을 보더니 단풍이 회초리를 맞은 듯 빨갛다고 말한다. 너무 아파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며 손가락으로 차창에 빗물을 따라간다. 나는 오래전 그 기억이 떠올라 말없이 웃고 말았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달아올랐다. 만약 날마다 감정의 담금질을 해야 하는 엄마능력 자격시험이 있다면 나는 지금 몇 급일까. 오늘따라 호숫가 단풍은 어찌 저리 곱단 말인가. 아프냐, 나도 아프다.


@적상면 괴목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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