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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Sep 30. 2015

[포토에세이] 빈말이라도 괜찮아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빈말이라도 괜찮아


- 아가야. 전화 통화할 수 있지? 바쁘겠지만 내 말 좀 들어 다오.

- 네, 어머니!

- 방금 병원에 다녀왔는데, 느그 아버지 말이다. 입으로 밥을 못 먹응게 목에다 호스를 넣어야 된다는디. 허야것냐, 안허야것냐? 젊고, 깨어날 가망이 있다면야 호스 아니라 큰 수술이라도 해야겠지만 말이다. 동네 사람들한테 물어봉게 그거 끼웠다가 환자가 나대믄 손발을 묶고 난리라는디. 환자가 고생만 한대요. 낼 모레면 아흔인디. 그만큼 살았으면 됐제.... 네 생각은 어쩌냐?


연휴가 끝난 뒤라 진료대기실에는 열 명도 넘는 환자가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고, 전화벨이 울렸을 때 나는 다리를 다쳐서 오신 어느 할머니의 드레싱을 막 마친 상황이었다. 근무 시간에는 거의 전화를 하지 않는 시어머니. 입원 중인 시아버지의 병환을 설명한 후 주치의로부터 들었다는 설명을 나에게 전하신다. 전화기 너머로 어머니의 불편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쌍둥이를 데리고 아버님이 계신 노인요양병원으로 달려갔다. 달리는 차 안에서 아이들에게 할아버지의 병세를 설명한 후 지난 주보다 더 많이 아파하실지도 모르니 손을 꼭 잡아 드리고, 할아버지  힘내세요!라는 말을 하라고 당부하였다. 병실에 들어섰다. 침대에 누워계신 아버님은 지난 주보다 훨씬 야위어 있었다. 쌍둥이를 보시더니 어떤 놈이 형인가? 하고 물으신다. 나는 아이들에게 차 안에서 당부했던 문안(!)을 드리라는 눈짓을 보냈다.


못 이기는듯 아버님 곁으로 다가가 손을 잡은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쳐다보더니 눈길을 옆으로 돌린다. 그러고는 병실 밖으로 나가버린다. 아버님은 졸린 듯 무거운 눈을 감으신다. 아버님의 목덜미와 어깨를 주물러 드리고, 침상을 살핀 후 병실 밖으로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는 아이들에게 왜 할아버지에게 힘내라는 말씀을 드리지 않았느냐고 은근히 다그쳤다. 둘이 아무   고개만 숙이고 있다. 작은 녀석이 등을 돌리더니 말했다.


- 엄마! 할아버지 말인데요, 더 이상 힘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이제는 없는 것 같아.


'힘내세요!’는 짧은 말이 할아버지에게 힘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이들도 알아버린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두 녀석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우리는 음식을 삼키기 어려워진 아버님께 며칠 후(언제일지 확실히는 모르지만)면 다가올 위장관 영양공급을 위하여 Tube를 끼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결정해야만 한다. 며칠 전 어머니의 전화를 받으며, 아직 의식이 있는 아버님을 제외하고 왜 이 결정을 우리가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물어보았다. 아버님은 어떤 결정을 내리실까.


- 어머니, 힘드시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결정을 못 내리겠어요. 만약에, 만약에, 어머님이 아버님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 야야~ 두말할 것 없다. 나중에 혹시 나한테 그런 일이 생기거든 절대 끼우지 마라.


임종을 바라보는 환자를 앞에 두었을 때 가족이나 의료진은 보호자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다. 의료진과 가족에게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과 의무 밖에 없어 보이지만, 그것이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고 바라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하든 결과는 항상 후회와 죄의식만 남길 것이다.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환자, 의식이 있다 하더라도 입원을 거치는 동안 심신이 쇠약해진 환자를 의사결정 과정에서 제외해야 하는 현실 앞에서 환자에게 ‘죽음’을 연상시키는 그 어떤 것을 언급한다는 일은 불가능을 넘어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눈이다.


의식은 점점 희미해지고, 그를 대신한 가족들의 최종적인 어떤 결정들은 결국, 안타까운 자책만 남기게 될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품위를 유지하는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의료 상황의 의사결정 과정에 환자가 참여할 때 이루어질 것이므로 의료기관에서는 절차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환자의 의식이 명료할 때 사전의료지시서를 제도화하여 가족과 함께 ‘엔딩노트’를 기록하는 일 등. 환자의 권리와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는 일은 과연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일까. 아버님이 그러한 상황에 있고 보니 결정해야 할 일들이 하나 둘 현실로 다가온다. 무척 힘들고 혼란스럽다.


아들과 며느리로서 어버이 섬기기를 다 하지 못한 부끄러움도 커져만 간다. 나는 점점 자신감이 없다. 자꾸 머뭇거린다. 망설여진다. 빈말이라도 괜찮아. 나에게 말해주오! 힘내라! 고.




@적상면 괴목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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