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호사 박도순 Jan 26. 2017

[포토에세이] 늙어간다는 것

그 어디나 하늘 나라

늙어간다는 


“소장, 딸네 집에 갔다 왔는디, 별로 기분이 안 좋네.” “아니, 왜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의자를 끌어당겼다. 월요일 아침이었다. 혈압약이랑 허리 아픈 약을 달라고 보건진료소에 오신 한 씨. 어르신은 평소 잘 웃는다. 매사 긍정적이다. 그래서 별명도 정월대보름이다. 때로 나의 고민을 듣고 지혜를 나눠주시는, 올해 나이 여든여덟 살 한 씨. 지난 주말 읍내 모 식당에서 ‘모녀(母女) 생일 잔치’를 하셨다고 했다. 막내딸과 당신 생일이 동월(同月)이라 가족이 모두 모였다고 하셨다.


“그러셨군요! 축하합니다. 가족이 함께 했으니 정말 좋으셨겠네요!” 나는 아들딸 손자까지 모인 자손 축복의 자리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부럽고 부럽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별로 기분이 안 좋다’며 털어놓는 속내를 듣고 나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수긍하였다. 한 씨는 막내딸을 이십 대 후반에 낳았고, 그 딸이 올해 회갑(回甲)이 되었다. 축하 케이크를 자르고, 한 씨에게 ‘즈 낳은 어미’라고 엎드려 큰절을 했다고 하셨다.


“새끼들 헌티 겉으로는 좋다고 했는디, 솔직히 속으로는 하나도 안 좋았어. 마음이 슬펐네. 언능 안 죽어서 야들한테까지 짐이 되고 있구나 싶은 것이 말이지. 소장도 늙어봐. 곱던 손도 꺼칠꺼칠해지고, 팽팽하던 얼굴도 쭈글쭈글해지고. 내 모습 내가 거울로 봐도 참 한심하게 드러워. 어쩌다 넘 공짜 나이(우리 마을에서는 여든이 넘으면 이후 나이는 젊어 요절한 사람이 흘리고 간 나이를 주워 먹는, 공짜 나이라고 하신다)를 주서먹드락 살아서 환갑이 된 딸래미 절을 받아 먹는가 말이지.”


“딸래미 머리에 흐연 눈 내린 것을 보니 마음이 몹시 슬펐네. 내년에 내가 다시 생일 떡을 먹을랑가. 고만 먹고 얼렁 죽어야는디. 다 늙어빠진 어미가 늙어가는 자식 모습을 본다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고말고.” 한 씨 한숨 속으로 허공 가득 새들이 날아 올랐다. 나는 다른 어떤 말을 할 수도, 거들 수도 없어 조용히 앉아 있기만 했다. ‘늙으면 죽어야지’, 어르신들이 흔히 하는, 진심 아닌 거짓말이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사는 것이나 죽는 것이 어찌 우리 권한일까마는 사람이 무슨 말인들 못 할까.


내가 어린 시절에 생각했던 늙어간다는 것은 무엇이었던가. 어른, 어른, 어른. 어른이 되면 뒷짐만 쥐고 걸어가도 젊은이들은 담벼락으로 몸을 붙여 낮추어 길을 비켜드리고, 우물가 젊은 아낙들은 떠들던 수다를 멈추고 고개를 숙이는, 그 어른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굳이 어른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권위와 위엄이 흘러넘치고도. ‘자네 밥은 먹었는가, 농사는 어찌 되었는가’, 소소한 안부로 아랫사람의 일상을 챙겨주는, 그런.


어느 간호사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녀는 영국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였다. 일흔다섯 살 할머니가 되었다. 임종 직전 선데이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늙는 것이 끔찍하다”고 말했다. 자연사가 아닌 안락사를 택하여 스위스로(영국에서는 안락사를 금지되어 있다) 건너가 생을 마감했다는 보도였다. 노인 돌봄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집필했고, 노인 병원에서 수많은 어르신을 환자로 돌보았을 것인데 정작 본인은 안락사 지원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다니. 도대체 그녀는 왜 그런 결심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노인들을 돌보며 항상 ‘난 늙지 않겠다. 늙는 것은 재미없다’고 생각해왔다”고 했다. 늙어간다는 것은 암울하고, 슬프고, 끔찍하기까지 하다고 했고, 보행기로 길을 막는 늙은이로 기억되기 싫다고 했단다. 자녀들에게 결심을 알렸고, 남편과 동행하여 라인강변에서 마지막 만찬을 즐긴 후 조용히 세상과 이별을 나누었다는 기사(그녀를 고통스럽게 한 배경에는 ‘대상포진’ 통증이 있었다는 것은 훗날 알게 된 사실이다).


‘겉으로는 좋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하나도 안 좋았다’는 한 씨 어르신의 고백, ‘늙는 것은 재미없고 암울하고 슬프고 끔찍하다’며 안락사를 택한 호스피스 간호사 ‘질 패러우’의 덧붙임까지. 어른이 되면 저러한 어른의 위엄이 수염을 타고, 옷깃을 타고 흘러 어른의 몸과 정신에 스밀 것이니, 나도 빨리 멋진 어른이 되고 싶어라 했던 어린 시절 추억. 그 시절 그 추억은 그때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었나 보다. 어쩌면 진정한 ‘어른’은 생각 속에서나 가능하고, 상상 속에서나 완성된 것이 아닐까.


그날 점심시간이었다. 글쓰기 모임 회원들과 식사를 함께 했다. 어느 회원이 진도리 여덟 번째 글쓰기 모임에서 발표(!)된 글을 모아 묶은 ‘글꽃뜨락’을 한 부씩 나누어 주었다. 한 장 두 장 넘기다 읽은 여덟 살 가람이 글이 그래서 더 눈에 들어왔다. /재목 : 생일/ 1학년 손가람/ 누나 누나 생일 언제돼? /난 개속 누나으 태생일이 언재 돼냐고 개속 물은다 /그대 엄마가 아직 마니 기달려야 돼다고 그러신다 /내일밤 오늘밤도 참을 수 업다 /재발재발 새월아 빨리 가라고 /기도를 해도 안돼다 /끝(소미네 집에서)

.

.

.

@무주읍 용포리, 2008


매거진의 이전글 [포토에세이] 알아들을 나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