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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Feb 28. 2017

[포토에세이] 넘어지지 않고서야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넘어지지 않고서야


침묵만 흘렀다. 남편도 말이 없었다. 시험을 마치고 나온 딸은 뒷좌석에 앉았다. “모처럼 바닷가에 가볼까?”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말을 남편에게 건넸다. “수고 많았다”는 말 외에 입을 다물고 있던 남편이 어색함을 없애려는 듯 “무엇이 먹고 싶으냐?”고 물었다. 딸은 대답 대신 눈을 감고 있었다.


이름이 또 없다. 세 번째 낙방이다. 딸은 영화영상 관련 학과에 지원하여 수시전형 시험을 치르는 중이었다. A 대학의 정원은 30명이다. 실기시험에서 17명, 특기생 2명, 정시 모집에서 11명을 선발한다. B 대학의 경우에는 1차에서 10배수, 2차에서 3배수를 선발한 후 최종 면접과 실기에서 정원을 선발한다. C 대학의 경우에는 실기 시험과 면접을 치르고 수능 최저점수를 반영한다.


논술 시험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나왔다고 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뭐라고 적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영화 도입 부문과 결말은 아래 내용과 같다. 하이라이트 본문을 완성하시오.”라든가 “아이러니라는 단어의 뜻을 설명하고, 그와 관련된 영화에 대하여 기술하시오.” 대학마다 입시 전형이 다르니 수험생 입장에서는 다양한 시험에 대비해야 하는 셈이다. 고단하지 않을 수 없다.


이튿날에 있는 면접을 앞두고 모처 숙소에 누웠다. 눈을 감으니 어둠 속으로 수험생 딸의 어린 시절이 클로즈업되어 다가왔다. 언니에게 자전거 타기를 배우던 날, 신나게 웃고 달리던 중이었다. 뒤 바큇살(spoke) 사이에 발목이 끼어 상처를 입었다. 우는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발꿈치 힘줄(Achilles건)에는 이상이 없었다. 상처를 봉합(縫合)했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다시는 자전거 안 탈 거야!” 하며 울먹이던 딸. 웬걸, 롤러블레이드까지 쌩쌩 달렸었지. 수시 전형 준비로 시간을 써버려서 수능 공부를 제대로 못 했으니 시험까지 망칠 것이라고 낙심 또 낙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남은 대학에서 ‘합격’ 소식이 날아왔다. 딸도 나도 울었다. 대학 입시는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여름방학이 다가올 무렵, 딸에게서 장문(長文)이 담긴 편지가 날아왔다. 


“한 달 넘게 고민하며 쓴 편지입니다.”를 시작으로 몇 번을 망설이다 보낸다는 편지글에는 “최선보다는 최악의 결과를 떠올리고, 결과에 대해 걱정까지 해야 하는 지금,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무언가를 계산한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대학에 와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공부보다 재수입니다.” 결론은 재수(再修)하겠다는 것이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도와달라는 하소연으로 가득했다. 나는 너무 화가 났다. 


대학을 결정하고 입학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선택의 결과였던가! 재수하겠다고? 정말이지 딸이 옆에 있었다면 버럭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기숙사로 실어 날랐던 이불과 옷들이 돌아왔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좋을지, 좌표에 서서 길을 찾고 있는 딸을 생각한다. 엄마라도 너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미안할 뿐이다. 


넘어졌다고 생각하자. 그래, 넘어질 수 있지. 넘어진 사람만이 아픔을 아는 법이지. 아플 때는 어떻게 어루만져야 하는지 배우는 법이지. 넘어지지 않고서야, 어찌 일어서랴.

.

.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잠언 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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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포내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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