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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 박도순 May 02. 2017

[포토에세이] 사랑의 기술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사랑의 기술


주삿바늘을 찌르자마자 강 씨 몸빼 바지 속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 “누구냐? (나는 바늘을 뽑고 알코올 솜으로 어르신 엉덩이를 문지르고 있었다)” “엄마! 어디세요? (전화기 밖으로 들리는 소리)” “허리가 너무 아파서 진료소 좀 왔다.” “그랬구나. 엄마가 안 보여서 어디 가셨나 했어요.” “별일 없다. 끊자! (퍽)” “호랭이 물어갈 것들이 시도 때도 없이 전화질을 해싸서 귀차나 죽것당께요.”


나는 바지를 추켜올리며 진찰실 밖으로 나오는 어르신에게 “자식들이 자주 전화하니 얼마나 좋으세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강 씨는 그렇지 않다며 두 손을 가로저었다. 지난가을, 이 어르신의 남편은 안방에서 쓰러졌다. 앉아있다 일어서는데, ‘퍽 주저앉더니 그만’ 고관절 골절상을 입었다. 급히 응급실에 실려 가고, 수술을 받고, 재활치료까지 받았으나 석 달도 못 되어 돌아가시고 말았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다.


홀로 남은 어머니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라고, 객지 자녀들은 고향 집에 CCTV를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강 씨의 일상은 전국에 흩어진 자녀들 핸드폰 앱 속으로 노출되었다. 뒤꼍, 안방, 주방, 거실과 마당에 설치된 붉은 눈동자는 오늘도 깜빡거린다. “소장님! 요새는 쓰마리(스마트폰)로 손금 보드끼 훤히 디다볼 수 있담서요? 곶감만 널어도, 엄마! 곶감 널었네요? 메주만 걸어도 엄마! 메주 걸었네요?”


‘하여간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며 어르신은 바지 안주머니에 휴대폰을 넣으셨다. 다음 날 아랫마을에 사는 박 씨가 보건진료소에 오셨다. 목이 아프고 기침이 심하다며 진료를 청하셨다. 어르신은 나에게 약을 짓는 동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하셨다. “우리 집에 네모난 신기한 물건이 있다네. 라면 상자보다 조금 큰디, 개똥벌레맨치로 깜빡깜빡 불이 와. 불이 꺼졌다 켜졌다 하면, 신기하게도 상자 속에서 편지가 쏙 나온다네!” 


뒷얘기를 잇자면 ‘닭이 알을 낳듯’ 상자가 편지를 낳는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팩스였다. 며칠 후 감기가 더 심해져 도무지 보건진료소까지 걸어갈 수 없을 정도로 몸져누웠으니 왕진을 와달라는 요청이 전갈(傳喝)되었다. 가정방문 길에 올랐다. 열을 재고 주사를 놓는 등 처치가 끝나자, 어르신은 그동안 네모 상자가 낳은 것이라며 수북하게 쌓인 알(!)들을 보여주셨다. 딸이 보낸 편지였다. 


대구 사는 셋째딸이 기계를 설치해줬는데 갸가 얼마나 영특한지 모른다고 딸 자랑까지 곁들였다. 박 씨 얼굴에는 이미 싱글벙글 행복 꽃이 피어 있었다. - (편지) 11월 28일 오전 10시. 아버지! 큰언니가 토요일 저녁 6시쯤에 집에 갔었는데 아무리 문을 뚜드려도 아버지가 몰라서 그냥 갔다네요. 동창회에 갔었대요. 잔치도 보고 한다고요. 냄새나는 거는 우리가 일요일날에 사가면 안되요? 며칠 더 참아 주세요. 아셨죠? -


심장마비로 갑자기 부인이 떠난 뒤 홀로 남은 박 씨. 아내와 어머니의 부재(不在)로 일상이 바뀌어 버린 어르신과 딸들. ‘네모난 신기한 물건’은 청각 장애를 가진 아버지의 안부를 묻고, 당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선(線)이 되어주고 있었다. 반짝이는 소리는 부녀간 메신져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안방으로 들어온 첨단 기술에서 사랑의 향기가 풍겨나고 있었다. 나는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코끝이 찡해지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안방에서 속옷을 갈아입으려다 CCTV에 화들짝 놀라 화장실로 옷가지를 들고 갔다는 강 씨. 밥상까지 보았는지, “반찬이 그게 뭐냐”는 딸의 간섭에 카메라 눈을 피하여 밥상(床)을 들고 화장실로 간 적도 있었다는 강 씨. 어르신의 말씀을 듣고 나니. ‘아, 그런 불편함도 있겠구나.’라고 생각되었다. 한편으로는 첨단 기술이 빚어내는 두 얼굴에 씁쓸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안녕한 이면에 숨은 벌거벗은 부끄러움은 누가 지켜줘야 할까. 

멀리 있는 자녀들은 부모님이 염려될 것이다. 그러나 CCTV 화각(畫角) 안에서만 쓰러지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모두 열심을 다한 사랑일진대, 달갑지 않은 기분이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안방을 지나 손바닥까지 들어온 이기(利器) 앞에 선 우리. 그것을 다룰 사랑의 기술이 지나치게 과한 것일까, 아니면 적잖이 부족한 것일까. 왕진 가방 챙겨 문을 나서는데, 박 씨가 부르신다. - (편지) 아버지! 밤새 잠을 못 주무셨다면서요? 하늘에 계신 엄마가 꿈에 보여서요? 엄마가 아버지 무척 걱정되나보다. 식사 잘 챙겨 드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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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언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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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면 포내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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